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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커피 Nov 01. 2020

Essay 2 - 여기까지 왔으니 신커피 한잔 어때요?

어느 날 낯선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셨는데

지금껏 마셨던 커피와는 너무나 달랐어요.


낯설었지만 신기한 경험을 하고 나니 다른 커피도 궁금해지는 거죠. 

그렇게 다양한 커피를 접하게 되었고, 커피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어서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요. 앞으로도 제가 커피로 느꼈던 감동과 매력을 손님들에게 전달해 드리고 싶습니다.’


왜 바리스타가 되었느냐 물었을 때의 모범답안 이랄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답을 합니다.

좋은 취지와 목표로 업을 택했다고 생각합니다.


네. 새로운 커피를 소개하며 매력을 전해주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다만 손님들이 맛있게 느낄 것을 주십시오. 내가 맛있어하는 것을 주려고 하지 마시고요.


제발 부탁이니, 처음부터 clean 하고 herval 하고 complexity 한 커피 좀 주지 마세요.

‘내가 이것저것 다 마셔봤는데 이게 진짜 좋은 커피입니다.’

라고 해 봤자, 고객들에겐 그저 ‘신커피’입니다.


(업계에 종사하는) 자신의 예전을 기억해 보십시오.

당신에게 처음 커피의 신세계를 보여준 것은 에티오피아 내추럴이거나 파나마 내추럴 커피일 껍니다.


기억나십니까?

‘우와 진짜네 커피에서 딸기 맛이 나’

‘안 믿었는데, 포도주스 맞네. 맞아’

‘오 그래~재스민. 자두, 그래’


대체로 맛과 향이 뚜렷하고 단맛도 좋으며

이 커피의 특징을 보여주려는 로스터의 의도가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그런 커피들이었죠.


아리송하거나 애매모호하지 않았어요.

딱 그 맛이 날 때 느껴지는 행복감,

그리고 이어지는 호기심! 이것이 커피를 찾아가는 첫걸음이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과정을 ‘미적 깨달음을 얻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경험이 쌓이고 업에서 연차가 높아지니

“내추럴은 뭔가 부담되고 피로감이 느껴져. 요즘에는 좀 깨끗한 게 좋더라고요”

“무산소는 너무 노골적이에요. 좀 뭐랄까 컴플렉시티 한 거 없나”


물론 계속 마시다 보면 깊이가 생기고 아는 게 많아지면서

자신만의 커피 취향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이전에는 느껴지지 않았던 디테일이 생기게 되죠.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취향과 기준이 있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는 고객들은 모두 바리스타 거나 로스터이거나 애호가가 아닙니다.


‘내가 다 해 봤는데, 이게 진정한 좋은 커피야’

네. 진정들 하세요.

미적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 그들에겐 모두 ‘신커피’ 일뿐이니까요.




이미 커피로스터스에서 낯선 커피 혹은 신커피를 권하는 방식


저희 매장에 오시는 손님들은 바리스타와 커피 애호가도 많지만 새로운 공간과 서비스를 경험하기 위해 오는 손님도 많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커피를 다양하게 접해보지 않은 손님들은 대체로 산미 있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으세요. 그래서 보통은 고소한 커피를 고르시죠.


그러나 저(희)는 간혹 사람을 살피고 

"기왕 여기까지 오셨는데" 새로운 맛에 도전해 보시라고 권해 드립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죠.


"이 커피는 조금 시긴 하지만, 계피향이 진하게 납니다. 이게 수정과인가 싶을 정도로 신기한 커피예요”

"이 커피에선 딸기향이 납니다. 딸기향이 나는 만큼 새콤하지만 라테로 마시면 이게 딸기우유인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이런 경험을 주기 위해서는 먼저 맛이 선명한 커피가 준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미 커피로스터스에서는 내추럴이나 무산소 발효 커피를 꼭 준비해둡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호불호가 덜하면서도 친숙한 맛과 향을 가진 커피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허브나 향신료 쪽의 맛보다는 과일과 꽃의 향, 그리고 공통적으로 단맛이 좋은 커피면 좋겠습니다.


이런 커피를 마셔보면 사람들이 커피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는 거죠. 

자신에게 익숙한 무엇을 통해서 낯선 것을 받아들이게 되고 이 경험이 긍정적으로 남게 되고 새로운 커피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져서 다양한 커피를 찾게 되는 동기를 부여해 주게 됩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이런 피드백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미 커피로스터스에서 신커피에 눈을 뜨게 되었어요.’

‘저는 여기서만 산미 있는 커피를 즐겨요.’


저는 저희 손님들께 커피를 가르치고 싶지 않습니다.

커피를 통해서 삶의 한 부분이 행복해지는 경험은 학습을 통해서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미적 깨달음’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느낀 커피의 맛과 향, 그 커피에 담긴 이야기와 그것을 온전히 즐길 때의 행복감을 공감받고, 공유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알아주는 분들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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