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도 쉬나요? 혹시 더치커피는 없나요?
저는 책과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예전에는 책 대여점이 있었어요. 다양한 신간을 저렴한 가격에 읽을 수 있었는데 제가 저희 동네 책 대여점 대여순위 부동의 1위였어요.
나중에 사장님과 친해져서 신간이 나오면 저에게 먼저 연락을 주시곤 했죠.
락밴드를 좋아했고, 인디뮤지션들의 음악도 즐겨 들었습니다. 음반도 많이 사고, 공연도 따라다녔어요.
‘의미'라는 단어도 좋아합니다.
어떻게 하면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을 오래 했었는데 어느 날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을 수 있다면 참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커피'를 하게 되었고, 카페를 열게 되었습니다.
제가 만드는 공간이 저나 손님들 모두에게 ‘의미'있는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가게 이름을 ‘이미’로 지었습니다.
카페 이름을 ‘의미'라고 하니까 너무 진지하고 무거운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의미'라는 한자를 일본어로 읽으면 ‘이미’라는 것이 떠 올랐고 제 첫 가게의 이름은 ‘imi’가 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단어로 가게의 이름을 짓고, 좋아하는 커피와 음악을 가까이할 수 있으니 ‘의미'있는 삶을 살고 싶었던 제 바람은 어느 정도 이뤄진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매장을 네 개나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어요.
그저, 동교동 골목 한켠에서 단골들과 정답게 지내는 작은 카페를 하고 싶었어요.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커피를 마시면서도 책도 읽고, 좋아하는 손님들과 대화도 나누는 그런 느슨한 행복을 누리는 그런 가게면 충분하다 생각했죠.
그런데 그런데 살다 보니 가게와 제 신변에 여러 가지 일들이 생기더라고요.
문제를 해결하고 생계와 생존을 고민하다 보니 어느덧 네 개의 매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 매장을 시작한 것이 2011년이었는데 당시에 저희 가게 주변에는 도보 5분 거리 안에 얼추 10개의 카페가 있었습니다.
그중에 이전한 한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없어진 것 같습니다.
카페가 사라진 자리에는 대부분 새로운 카페가 생겼고, 한 자리에서 10년을 버틴 가게는 없는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도 2011년 이후 만든 총 네 개의 이미는 모두 생존해 있습니다.
이미에 대한 기억 중에 인상적인 장면들을 소환해보려고 합니다.
카페를 운영하다 보면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지게 마련이죠.
카페마다 조금씩 다를 수는 있겠지만 카페이기 때문에 또 생기는 일이 있습니다.
‘이미' 역시 그런 일들을 겪어 왔습니다.
저희가 겪은 일들과 문제의 원인을 살피고 마련했던 해결책을 일반화해서 모든 매장에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힌트 혹은 교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의미’가 있을 겁니다.
patisserie x roastery imi
저의 첫 매장의 이름은 patisserie x roastery imi입니다.
patisserie는 ‘과자점’, roastery는 ‘커피를 볶는 곳'이라는 뜻으로
각각 직접 만든 디저트를 파는 제과점, 직접 볶은 커피를 파는 카페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가게를 열기 전 저와 제 동생은 시기는 좀 달랐지만 일본에서 몇 년간 살면서 각각 커피와 디저트 공부를 했습니다.
저는 주로 현장에서 일본의 커피와 카페 문화를 배웠고, 동생은 ‘일본과자전문학교'를 졸업 후 현장에서 경험을 쌓아가는 중이었습니다.
각자의 계획에 따라 저는 먼저 한국에 들어와서 커피 공부를 이어가며 창업 준비를 하고 있었고 동생은 더 많은 경험을 쌓고자 일본에 남아서 이직을 진행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해에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여 동생이 이직하려던 회사가 큰 피해를 입게 되어서 계획은 무산되었습니다.
파티시에로써의 경력과 경험도 중요하지만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이라서 가족들의 권유로 귀국하였고 이후에 저와 합류하여 첫 번째 이미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patisserie x roastery imi라는 다소 거창한 이름은 통상 ‘이미'로 불리게 되었고, 이후 총 네 개의 이미가 생기면서 ‘홍대 이미'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사장님. 커피도 쉬나요?
저는 첫 매장에서부터 커피를 직접 볶았습니다.
비록 작은 가게지만 제가 원하는 커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로스팅에서 추출 전반을 제 손으로 해내고 싶었습니다.
물론 모든 카페가 로스팅을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로스팅을 해야만 좋은 커피와 카페를 할 수 있다고 생각 하진 않습니다.
다만 커피로 인생의 진로를 정하고 난 후 저는 일본에 갔었고, 창업을 준비할 때 즈음 한국은 스페셜티 커피의 태동기였다는 것이 맛있는 커피를 하고 싶었던 저에게 영향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십수 년 전에는 한국에는 커피에 대한 자료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공부를 하려면 교육기관에 들어가거나 현장에서 들어가서 누구누구 유명한 사람 밑에 들어가서 도제식으로 배우곤 했는데,
과학적인 근거도 부족하고 체계적이지 못해서 돈 만 날리거나, 혹사만 당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행히 저는 출판문화가 발달한 일본에 머물면서 책을 통해서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일본의 카페 문화를 바리스타와 소비자의 입장에서 다양하게 접할 수 있었지요.
또 한국에 돌아왔을 때 과학적인 태도로 연구하고 노력하는 카페들이 생기면서 질 높은 커피를 커피를 접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러한 영향으로 저 역시 자연스럽게 좋은 커피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고, 재료의 질이 우선 좋아야 한다는 생각에 처음부터 비싼 생두로 로스팅을 시작했습니다.
아직 스페셜티 커피가 생소했던 시절이라서 원가 대비 적절한 가격을 책정하기 어려워, 말 그대로 ‘최저가’로 판매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제가 경험한 커피의 놀라운 세계를 전해주고 싶어서 최대한 많이 먹어보게 하려면 싸게 팔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나라와 품종에 따라 완전히 다른 맛과 향을 드러내는 커피의 매력을 손님들에게 소개하고 싶어서,
싱글 오리진 커피를 핸드드립으로 제공하는데 주력했고 커피는 다소 약하게 볶았습니다.
커피를 약하게 볶으면 나라별, 품종별, 가공방식별로 다른 커피의 맛과 향이 잘 드러납니다. 다만 신맛도 느껴지죠.
그래서 스페셜티 커피를 하는 매장들은 대체로 커피를 약하게 볶습니다.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관심과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 커피의 산미는 낯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커피는 구수하고 쌉쌀한 맛이라는 생각을 가진 분이 압도적으로 많았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손님들에게 ‘사장님, 커피도 쉬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 커피가 얼마나 비싼 건데, 이 커피가 얼마나 맛있는 건데. 이것의 가치를 몰라주는 것이 안타깝고 속상했습니다.
‘차라리 제값 받고 팔 걸’ 솔직히 이런 마음도 들더라고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소비자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강요한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게 좋은 거야. 커피 맛은 내가 더 잘 알아.’라는 우월감도 있었던 것 같고요.
그러나, 이제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좋은 건데 안 알아준다고 소비자를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요즘은 그때보다 더 다양한 신커피를 팔고 있습니다.
소비자를 존중하다 보니 무엇을 해야 할지가 보이더라고요. 이 얘기는 나중에 좀 더 자세히 하겠습니다.
더해서 드릴 말씀은
소비자에게 좋은 것을 많이 경험시켜주기 위해서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는 것이 무조건 능사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가격에 공감할 수 있는 가치를 만드는 만들어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가령 고가의 커피를 특별히 싸게 파는 것보다는 이 커피의 가치를 알만한 사람들에게 제공하되 가격에 충분히 수긍할 만한 맛과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겁니다.
예약을 받아서 이 커피만을 위한 특별한 잔에 제공한다거나 커피에 대한 정보나 코멘트를 상세하게 전달하는 카드를 마련한다거나 할 수 있을 겁니다.
꽤 높은 가격의 커피를 주문했는데 사전에 의향도 묻지 않고 테이크아웃 컵에 받은 적이 있는데, 먹기도 전에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가치 있게 전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더치커피 없나요?
‘여기는 더치커피는 없나요?’ 메뉴판을 유심히 보시던 손님께서 물어보십니다.
‘네 저희는 더치커피는 없습니다.’
‘아... 그래요? 다음에 올게요'
‘네, 안녕히 가세요'
‘야, 여기 더치도 없어. 커피 못하나 봐'
카페마다 없는 메뉴가 있을 수 있고, 찾는 메뉴가 없어서 다른 곳에 가는 것은 아무 문제없습니다.
손님 입장에선 으레 있을 꺼란 메뉴가 없으니 속상하기도 했을 겁니다.
그렇다고 커피를 못한다니… 좀 억울한 마음이 들었어요.
2011년 더치커피가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카페를 시작하면서 남들과 똑같지는 않더라도 트렌드를 무시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저는 더치커피를 싫어했기에 하지 않았습니다.
로스팅을 하는 입장에서 좋은 커피를 왜 산화시켜서 먹어야 하는지도 의문이었고
당시에는 제조방식과 시설에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매장 한켠에 더치 기구를 두고 장시간 공기에 노출된 상태에서 물을 떨어뜨려서 커피가 위생적으로 좋을 리가 없습니다.
게다가 당성분이 있는 커피, 실온, 햇빛이라는 제조환경은 미생물이 발생하기 좋은 환경입니다. (이후에 뉴스에서 몇 차례 더치커피의 위생문제가 다뤄지곤 했습니다)
또한 많은 매장들이 오래되어서 팔기 어려워진 커피로 더치커피를 만드는 일이 많았기에 신선한 커피에서 나는 다채로운 맛과 향은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당시에 커피계에 혜성같이 나타나 누군가의 입소문으로만 전해 지거나 소수의 사람만 접해본 게이샤를 볶으며 커피에 몰입하던 시기였는데
더치가 없다는 이유로 무시를 당하다니 너무나 속상했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소비자와 생산자 간의 인식 차이는 존재합니다.
그걸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것도 카페를 하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워터드롭 방식의 더치커피에서 위생적으로 안전한 침지식 콜드 브루 커피로 대체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더치커피도 제조방식에도 많은 개선을 하고 있으며, 공신력 있는 기관을 통해 품질검사를 받아서 판매하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