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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영 Jul 04. 2022

사랑할 결심

시리야. 정훈희의 <안개> 틀어줘.


'결심(決心)'은 '할 일에 대하여 어떻게 하기로 마음을 굳게 정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영화 <헤어질 결심> (Decision To Leave, 2021)은 '결심'이라는 사전적 의미 위에 '안개'라는 예술적 장치들을 켜켜이 쌓았다.



 상암 메가박스에서 본 <헤어질 결심> 무대인사

바야흐로 정보 과잉의 시대라고 불린다.  많은 사람들이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디즈니 플러스'에 '유튜브 프리미엄'까지  꾸역꾸역 구독하면서도 볼 것이 없다고 한탄한다. 한탄하는 이유는 양적으로 부족한 게 아니라 질적으로 충족이 되지 못했던 것이겠지.


<헤어질 결심>은 마라 흑당맛 팝콘에 콜라를 들이켜던 관객 앞에 내민 30만 원짜리 오마카세다. 지금껏 먹은 것이 정말 영화였나, 시네마였나 돌아보게 만든다.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재료를 다루는 셰프가 차원이 다르다.


잔인한 영화를 싫어해서 평소에 박찬욱 감독의 작품들을 소비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쫄보인 나도 볼 수 있을 만큼  잔인함의 수위가 , 대중성이 가미된 영화였다. 아름다운 미장센과 숨 죽이고 듣게 되는 대사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리하고도 서늘하리만큼 정교한 감정들을 풀어낸다.


특히 매력적인 지점들을 고르면, 중국인과 한국인이 대화하는 장면을 자막으로 대체하는 게 아닌, 번역기라는 장치를 쓰는데 그 번역이 이루어지는 텀도 그대로 다룬다는 점이다. 이렇게 시공간이 존재하는 영화를 얼마 만에 보는 걸까.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아름다웠던 '송광사' 장면

제작진은 미디어 사랑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간파하고 있다. 극 속에서 남녀의 애틋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서로 바라본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일일 드라마로 훈련된 우리 생각엔 무조건 고백하는 씬이 등장해야 하는데, 이 영화. "사랑한다"는  한마디 없이 애틋한 눈망울과 호흡만 있다. 그런데 어떤 감정인지 오감으로 느껴진다.


관객이 예상하는 클리셰들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관객을 능동적으로 사고하게 만든다는 말이다. 관객의 상상 속에서 서래와 해준의 관계는 더 아름답게 포장된다. (추잡한 불륜을 이렇게 아름답게 포장하는 우리는... 감독과 공범이다.) 그래서 박찬욱 감독을 '터키 아이스크림 아저씨'라 부르기로 했다. 줄 듯 말 듯 <터키즈> 코미디언 이용진처럼 관객을 가지고 놀 줄 아는 감독이다.


제작진의 코멘트들 중 인상 깊은 것은 감독의 "사랑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결심이 필요하지 않지만, 헤어질 때는 결심이 필요하다." 명료한 설명이었. 헤어질 결심은 사랑하는 자만이 할 수 있다니. 그리고 작가님이 "멜로로 진행되는 플롯이 수사의 플롯과 일치한다."말을 하셨다. 그렇다. 이 영화 보는 사람에 따라 '수사물'이다가 '멜로물'이었다가 한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는데 나는 후자에 속한다.


감독은 영화 주제곡인 <안개>를 부를 송창식을 설득하기 위해 정훈희와 그의  공연장갔다. 그리고 안개를 신청곡으로 넣었다. 송창식은 원래 자기 노래도 아니기에 2절에서 버벅거렸는데 그때 갑자기 원곡 가수인 정훈희가 나타나 함께 노래를 불렀다고. 이 에피소드에서 보듯 그는 자신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람이다.


날도 습해서인지 <안개>를 들으면 회복이 안 될 정도로 여운이 밀려오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어쩔 수 없다. 서래와 해준을 보러 다시 가야겠다.


헤어질 결심 관람 2일 차의 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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