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칭하는 여러 직함이 생겨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직장인이 된 지 10년이 넘었다. 일을 쉰 적도 없었고 그다지 게을리한 적도 없었지만 마땅히 이루어낸 성취랄 것도 없는 게 현실이다.
춘천의 카페 감자밭 대표의 성공신화를 보면서, 뉴진스를 기획한 민희진을 보며 가히 존경스럽고 한편으론 많이 부러웠다. 나는 무엇을 했나 자책하는 시간도 종종 생긴다. 혹자는 이를 '껄껄무새'라고 한다. '그때 그 길로 갈 걸', '그때 어디에 투자할 걸'
반면에 한 가지 일을 한평생 해온 사람들이 있다. 신설동역 계란빵 아저씨는 약 35년 동안 계란빵을 구웠다.물론 힘든 일이라야 없겠냐만 코로나 팬데믹이 창궐하던 시기, 사람들은유튜브라는 창 너머세상을 구경했다. 사람들이 계란빵 아저씨에게열광하게 된 것도 그 이유였다.
신설동역 10번 출구 앞 계란빵
나도 유튜브를 보면서 언젠가 저 계란빵을 먹어보겠다며 벼르고 있었는데, 이제서야다녀왔다. 이곳의 계란빵은 핫케이크 반죽을 담백하게 구워내고 계란을 촉촉하게 익힌 맛이다. 심플 이즈 더 베스트. 단순한 맛 속에 상당한 내공이 담겨있다. 포장해서 집에서 먹는 것도 맛있었지만 그 자리에서 바로 먹는 게 가장 맛있었다. 사장님의 친절한 접객도 계란빵의 맛만큼 적당했다. 과하게 달지도, 친절하지도 않으나, 그러나 적당히 따뜻한 맛이었다.
여의도에 있는 나들가게딸기네 사장님도 40년간 라면을 끓였다. 숱하게 라면을 잘 끓인다는 가게들을 봤지만 이렇게 잘 끓일 수 없다. 4천 원짜리 일반 라면만 먹어보았다. 특별한 기교를 부린 것도 아니다. 본연의 레시피에 충실했는데 면발은 꼬들꼬들하고 풀어낸 계란은 절묘하게 익혀 보들보들하다. 라면에서 간결함이 느껴진다. 이 또한 상당한 내공이다. 참 그렇다. 남이 잘하면 쉬워 보이곤 하는데 사실 이런 내공은 절대 흉내 낼 수가 없다.
새해라고 하루아침에 달라진 것은 없다. 그저 계란빵을 먹으며, 라면을 우물거리면서 새해를 시작했다. 올해 어떤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지만, 템포가 짧아진 시대 속에 이분들처럼 한평생 끈기 있게 무슨 일을 해내고, 다음 날 또 새롭게 해내며 차곡차곡 내공을 쌓아가고 싶다. 그렇게 내 안의 키가 커지다 보면 나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