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영 Aug 28. 2023

여름을 정리하는 방법

강북 '아카데미 하우스'

아카데미 하우스의 옥상뷰


 여름과 가을의 사이 이음새도 없이 가을이 다가온다. 


최근에 강북구의 '아카데미 하우스'에 다녀왔다.  4.19 민주묘지역 근처에 419 카페거리가 있다는 사실도 신기했는데, 골목의 가장 위에 1만 평 규모의 대형 카페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주차 공간도 넓고 카페도 넓다. 건물 옥상에서 보이는 탁 트인 풍경이 절경이다.  


어떤 재벌이 서울의 북한산 자락에 이렇게 과감한 규모의 카페를 차린 것인가, 이 일대는 고도지구가 있다는 사실을 얼핏 주워들은 적이 있어 더욱 놀라웠다.


어느 기업이 운영할 거란 예상과 다르게 '아카데미 하우스'는 군부독재시대 한국의 노동과 농촌, 민주화 운동을 실시해 왔던 곳이다. 



아카데미 운동은 "현재의 비극은 대화를 잃어버린 데 있다. 폭넓은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해결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본다. 국내 아카데미 운동을 주도했던 고 강원용 목사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아카데미운동을 주창한 독일의 에버하르트 뮐러와 만난 것을 계기로 '아카데미 운동'이란 것이 한국에 도입되었다. 아카데미 하우스는 그 배경 속에서 1966년 11월에 건립됐다.


나는 무교라 풀네임인 '기장아카데미하우스'의 기장도 무엇인지 몰랐는데 강 목사가 속한 교단인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의 준말이라고 한다. 이후 2004년 기장은 아카데미하우스를 약 120억 원에 인수해 운영에 들어갔다. 이후 여러 운영난이 있어 서울시는 이곳에 영어마을을 세우고자 하고, 누군가는 도서관을 세우자 하고, 심지어 전혀 성격이 다른 전광훈 목사도 제3자를 통해 이곳을 매입하려 했다. 결국 지금은 숙박업소 겸 카페로의 면모를 다하고 있다.



카페에 들어서면 보통의 인스타그래머블한 카페에는 포토존이나 보이는 기념사진을 찍는 목적들이 대부분인데 여기는 다들 왁자지껄 수다스러운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데이트 코스라기보다 온갖 가족모임, 계모임의 성지인 것 같았다.


어떻게 북한산 자락에 이런 건물이 세워졌나 했는데 서울시가 최초로 고도지구를 지정한 시기가 1972년도였고, 북한산 주변 고도지구는 1990년 지정되었다. 아카데미하우스가 세상으로 나왔던 1966년도에는 고도지구 제한이 없었던 것.


개장한 지 1년도 채 안된 카페에서 서로 누구나 할 것 없이 열심히 대화의 장을 펼쳐간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건립한 자들의 의중을 아는 걸까. 쉴 새 없이 대화가 오가는 모습 속에 사람들은 각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궁금했다. 

작가의 이전글 과메기는 우리였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