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폭우와 폭염 등 기상이변으로 몸서리를 치고 있다. 더위에 말라갔다가 폭우로 적셔지다가 정신이 없다. 아무래도 과메기는 우리였나 보다.
제 아무리 여름을 사랑해서 스타벅스 닉네임도 여름이었다 한들, 내가 사랑했던 것은 맥시멈 27도씨의 여름이지 38도를 말하던 것은 아니었다.
유엔 사무총장은 공식적으로 지구온난화 시대가 끝나고 '끓는 지구' 시대가 시작됐다고 천명했다. 나사 과학자도 올해 여름이 제일 시원하다고 말했다. 앞으로 남아있는 우리 인생 중에 말이다. 아무래도 여름을 좋아한다는 말은 이제 철회할 때가 되었나 싶다.
이번 휴양지는 서울이었다. 평소 직장인이 부러워하던 것들. 대낮에 놀면서 일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게 진정 짜릿한 휴가. 사실 너무 더워서 방에서 콕 쉬고 있을 수가 없어 휴가 내내 서울의 방방곡곡을 쏘아 다녔다.
#1 성수 뚝도시장
7월 초에는 희은이가 재밌는 전시를 기획했다. 내가 찍은 사진들도 함께 전시됐는데, 전시는 성동구의 뚝도시장 인근에 열렸는데 마침 휴가 초입기라 뚝도시장에 많은 가게들이 쉬고 있었다. 그러다 막 오픈한 해장국 집에 들어가 푸짐하게 한 그릇을 먹었는데, 사장님이 현직 배우라 신기했고 상당히 맛있었다.
배를 두드리며 우연히 가게 된 짜이 전문점 <높은 산>. 인도 밀크티인 짜이를 제대로 먹어 볼 기회가 없었는데, 팔각 등등 향신료가 들어간 짜이를 주문하면 즉석에서 끓여 내어 주신다. 진저 짜이, 짜이잼과 프레첼과 같은 개성 있는 디저트와 풍부한 맛이 인상 깊었다. 카공족이 오래 머물기엔 자리는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오롯이 짜이에 집중하기엔 충분한 곳이다.
성수와 뚝도시장은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지만 늘 그렇듯 위험은 도처에 깔려있다. 더워서인지 대낮부터 술에 취해 욕설을 내뱉고 손찌검을 하려던 할아버지가 있었다. 다행히 경찰을 불러 넘겼지만, 그 뒤로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이게 극악무도한 날씨와 사람들의 심리에 연관이 있는 것인지 여러 생각이 들곤 했다.
#2 신도림 테크노마트
영화 <바비>를 보았다.신도림 씨네Q는 영화배급사인 넥스트 엔터테인먼트가 망해가던 CGV를 인수해 운영하는 곳이다. 비교적 사람이 없고, 좋은 시설을 충분히 합리적인 가격에 즐길 수 있다.
예전에 브랜드 영화관의 프리미엄관과 비슷한 스위트관에서 영화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이번엔 약간 더 캐주얼한 리저브관에서 팝콘 콤보를 우적우적 먹으며 영화를 봤다. 리클라이너관인데 널찍하고 좌석도 편해서 굿굿. <바비>는 생각보다 가볍게 풀어낸, 그러나 돈이 많이 들어간 영화라 볼거리가 훌륭했다. 생각할 거리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테크노마트는 그 자체가 참 신기한 곳인데 올해 새로 입점한 곳 때문에 더욱 화제가 됐다. 이 복합빌딩의 한 층 전체가 경찰서다. 경찰서가 있으니안전한 느낌보다 더 을씨년스러운 건물로 완성이 된 것에 어떤 그로테스크함을 느꼈다.
씨네큐 영화관 아래층에는 10년 전으로 돌아간 물가와 감성의마치 한층 자체가 캔모아스러운 푸드코트가 있다. 이곳의 <또치>는 유명한 맛집이다. 히든 메뉴인 오코노미야끼와 열잡채를 먹었다. 또 먹고 싶을 정도로 중독적인 맛이 일품이라 그 맛을 잊지 못해 집에서도 흉내 낸 오코노미야끼를 해 먹었다. 서울스럽지 않게 정감 가고 가성비가 훌륭한 곳이다.
#3 용산구 보광동
<마하 한남> 은 동네 건물에 있던 폐목욕탕을 리뉴얼한 곳이다. '건축가의 서재'가 콘셉트이면서도 뷰 맛집이라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다만 위치가 상당이 당황스럽고 건물을 올라가는 순간에도 이것이 맞는가 고민이 들긴 했다.
남탕의 표시를 따라가면 시공간을 뒤집는 멋진 공간이 나온다. 향과, 분위기, 음악, 뷰가 사람을 압도한다. 마하 한남에서 보이는 뷰는 변전소와 서울의 고즈넉함이다. 내 상상 속 서울스러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 화장실조차 바이레도 등과 협업해여러 볼거리가 있다.
<마하 한남>이 너무 마음에 들어 혼자서 한번, 반차 낸 미나와 함께 총 두 번 들렀다.
한남동도 참 빈부의 격차가 큰 곳임을 느낀 게, 카페를 나와 요기하려고 한남오거리로 넘어가는 길을 잘 몰라서 카카오맵이 가리켜주는 대로 따라갔는데 정비촉진지구라나, 언덕배기에 상당히 인적이 드물고 낯선 동네가 나와서 한참을 당황했다.
약 10년 전에도 이슬람사원 뒤편으로 밤길 산책을 다니다가 이런 길에 당도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이제 서울에 달동네가 없어졌다곤 하지만 여기야말로 제일 높은 언덕에 위치하며, 한강뷰가 끝내주는 신기한 곳이다. 하지만 길거리에 개똥과 파리, 쓰레기가 들끓는 폐가들이 많았다. 한참 당황해 사진을 남기지도 않았네.
#4 양재천과 포이사거리
살면서 크게 가볼 일이 없는 동네. 이번 기회에 마음껏 탐닉했다. 서초역에서 매봉역까지 걸어가며 동네 임장을 했다고 하니 친구는 너 돈 있냐며 웃었다. 날이 좋아 양재천 위로 구름이 한껏 치솟았다.
건물 한 채의 규모의 투썸플레이스가 궁금해서 2층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모든 직장인이 꿈꾸는 그것, 남들 일할 때 우거진 녹음을 보며 한가롭게 커피와 디저트를 음미하는 것, 호사에 기분이 째진 지 10여 분이 지나지도 않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 거래처(?)에서 연락이 와서 어쩔 수 없이 잠시 근무타임을 갖기도 했지만 마음이 여유로웠다.
포이사거리에는 역을 만들어 달라는 현수막들이 가지런하게 붙어 있었다. 직장인, 거주민도 많고 또 강남이라 조만간 전철역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곳.
#5 종로와 동대문, 약국거리와 액세서리상가
종로는 역사가 깊은 곳인 만큼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게 참 매력적이다. 종로 5가는 전통적으로 약업과 연관이 깊은 곳이다. 구한말까지 한약재 도매시장으로 손꼽혔고 이후 '보령약국'이 생긴 후 이곳이 워낙 잘 되니 1970년대 이 거리는 '약국 거리'가 된다. 보령약국은 지금 우리가 아는 '보령제약그룹'의 시초가된다.
그러나 고객으로서보령약국은 다소 불친절하다는 말에 패스하고친절하다는 옆집'온유약국'을 찾아 들렀다. 이지엔식스, 마데카솔 같은 상비약들을 샀는데 확실히 저렴한 것 같다. 거의 40%는 할인된 가격인 것 같고 응대도 친절하다. 다음에도 이곳에 와야겠다.
평소 평일이 아니면 가기 힘들었던 동대문 액세서리 부자재 상가에 들렀다. 백수나 대학생 때는 참새방앗간처럼 여기를 들러 이것저것 사서 만드는 게 좋았다. 잠시 디자인 스튜디오에 상품을 입점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뭔가를 상품화하는 데 많은 관심을 뒀었는데 썩 팔리진 않았다.
여기만큼 유행을 빠르게 좇는 곳이 없다. 요즘은 키링, 그리고 크록스에 꽂을 비지츠 자재들이 유행하고 있었다. 나도 힙지망생인 바, 반짝거리는 것들로 몇 가지 골랐다. 지비츠 꼬다리를 따로 사서 순간접착제로 붙여주면 끝나는 작업. 자재는 개당 500원 정도였기 때문에 밖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했다.
카페에서 노닥거리며 만든 지비츠들
#강남역, 파이브가이즈
강남역에 들러본지도 상당히 오래간만이다. 6월 말에 오픈한 파이브가이즈가 너무 핫하다 보니 궁금해서 먹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대망의 도전의 날! 오전 8시 30분 즈음 파이브가이즈 매장 앞에 있는 테이블링 예약을 걸었는데 250번 대였다. 푸하하. 1시간에 100번 정도 소진하니까 11시 오픈이라 생각할 때 1시 30분 안에는 들어가겠다 싶었다. 실제로 1시 조금 넘어서 입장했다. 계속 줄 서있는 것은 아니고 인근에서 놀다가 카톡 알림이 오면 매장으로 가면 된다.
그냥 '햄버거'와 감튀 작은 사이즈에 케이준 시즈닝은 따로 주시고, 밀크셰이크에 베이컨 추가, 콜라를 시켰다. 맛있긴 한데 별다른 맛은 아니라서 파이브 가이즈라는 프리미엄이 붙은 것이 아닌가 싶다. 블라인드 테스트라면 다들 꽤나 신랄한 평가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수제버거 처돌이인 내 입맛에는 우리 동네 '플레이 벅'의 스매시버거가 제일 맛있다. 물론 난 롯데리아도, 맥도널드, 버거킹에 그 외 어떤 버거라도 버거라면언제나 콜이다.
파이브가이즈 앞에는 '아이엠 낫 킹'이라는 새로 생길 버거집이 대범하게광고를 걸었다. 그 기개에 감동해 한번가보고 싶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