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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영 Sep 20. 2021

오늘은 부민관, 내일은 화신

종로타워 부지에 있던 민족 백화점 '화신 백화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한양에선 '오늘은 부민관, 내일은 화신'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부민관에서 영화 한 편 보고 화신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는 게 지금의 '오늘은 롯데타워, 내일은 용산 CGV' 같은 문화였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어느  기자가 "1930년 경성은 실로 백화점 시대다."라고 설명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당시 인구 30만 명(현재 2021년 4월 기준 서울 인구는 약 958만 명)의 경성에는 5대 백화점이 있었다. '미츠코시'를 비롯해 '조지아', '히라타', '미나카이', 그리고 오늘 이야기할 '화신백화점'이 있었다.


화신백화점은 지금의 종로타워의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종로에 있었던 금은방 '화신상회'가 그 전신이다.


당시 이곳은 지하 1층부터 지상 6층 규모의 신식 건물이었다. 당시는 뉴스 가판대도 없어 민간인들이 뉴스를 접하기 힘들 시절,  이 건물 외벽에 전광판으로 라이브 뉴스가 송출됐다니 휘황찬란하여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겠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전광판, 옥상정원이 있어 이를 구경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지금의 1호선 "종각역"도 원래 역명이 "화신 앞"이었다.


화신백화점 분점도 전국 곳곳 있었다.  인천, 경기도 연천군 고랑포구(당시 고성군 회화면),  목포, 평양 등이다. 평양점은 현재 북한에서 국영화되어 제일백화점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연천군에 백화점이 있었다니?'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남북전쟁 전 고랑포구는 개성과 한성의 물자교류가 활발해 북부 최대 무역항이었다고 전해진다. 아마 남북전쟁이 아니었다면 지금 내에서 가장 번화한 곳 중 하나가 아녔을까 생각해본다.


화신백화점은 경성의 백화점들 중 유일하게 조선인이 세우고, 조선인이 건축했다. 화신백화점의 건축 설계는 근대 한국 건축의 기초를 닦은 건축가 박길룡이 맡았다. 그래서 민족 자본으로 입지를 다졌다는 곳으로 기억되긴 하나 사실 그 사장님이 반민족 행위자 제1호 '박흥식'이라는 점은 짜게 식는다.


영원한 것은 없다. 문전성시를 이루던 화신은 6.25 전쟁 때 불타고 그 뒤 치열한 백화점 경쟁 속에 결국 도산했다. 그런 뒤, 1987년에 백화점이 헐린 자리에 지금의 종로타워가 들어섰다.



…이것들은 '센시블'한 도시인의 마음에로 향하여 버려진 '테파트먼트'의 말초신경이다.


전시장엔 당대의 모던걸과 모던보이의 착장 풀세트를 준비하려면 얼마 정도 소요되는지 재밌게 풀어냈다.그때 화신백화점의 직원 월급이 30원인데 약 400원이 필요하다고. 흠흠.


'값싸고 좋은 물건, 여러분의 화신 연쇄점'


고랑포구 위치


'각종 일용품은…… 우리의 백화점 화신으로!!' 라고 홍보하고 있는 화신백화점 인천점 광고 (조선일보, 1935.02.04.)



역시 여름엔 모기장이지. '모기장' 사라고 꼬시는 리플릿


역시 우리 민족은 호쾌한 민족이다. 화신백화점에서 경품으로 종로 기와집 한 채를 걸었다니! 지금 백화점 개점 기념으로 '한남 더 힐' 한 채쯤 걸은 것이 아닌가.


백화점 고객 유치 경쟁이 치열하던 시기에 마케팅으로서도 굉장히 파격적인 이벤트였을 테다.  당첨된 분은 대대손손 행복하게 잘 살고 계실까... 조금 많이 부럽다.


종로타워 터는 상업의 요충지였다. 조선시대엔 나라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는 값비싼 비단을 팔던 자리였는데 시대가 바뀌고 화신백화점 사장이라는 경성 제일가는 부자의 것이었다가


그다음 시대의 가장 부우자인 샘성 이건희 회장이 심혈을 기울여 지은 종로타워로 변모했다. 원래 종로타워는 백화점으로 운영될 계획이었지만 IMF로 인해 상업용 건물로 사용되었고 지금은 외국계 사모펀드에 팔렸다.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까지 공유 오피스가 열풍일 때, 종로타워의 맨 꼭대기 층에 글로벌 공유 오피스 위워크가 들어와 한때 이슈가 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사업 악화로 철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대 가장 부자들이 손에 쥐던 이곳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최근 기사를 찾아보니 SK그룹이 종로타워 인수에 나선다고 한다. 가까운 미래엔 이곳이 'SK 종로타워'로 이름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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