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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빈민

카메라가 떠난 서울 쪽방촌

by 빵부장

혹자는 정치인이 쪽방촌을 누비면 선거철이 돌아왔다는 뜻이라고 한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가운데 그들은 허리를 굽혀 악수를 청하고, 몇 마디 위로의 말을 건넨다. 하지만 그들의 악수와 교류에 삶의 변화가 있는가. 가장 큰 선거가 끝났다. 생각해볼 문제다.


도시 빈곤층의 주거 형태는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가장 상층부는 고시원이다. 필자도 약 10년 전 남산 아래 회현동 고시원에서 25만원을 내고 두어 달 살았던 기억이 있다. 방은 좁고 샤워장은 공용이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는 보장됐다. 공용 주방 웍에서 나는 향신료 냄새, 저렴한 방세 때문에 모여든 외국인들. 후미진 곳이었지만 나름 안전한 거처였다.


그 아래 단계가 쪽방이다. 큰 방을 1~2평으로 쪼개 만든 곳으로, 독립된 주방과 화장실도 없이 딱 잘 수 있는 공간만 있다. 서울 돈의동, 창신동, 동자동, 영등포동 등에 이런 쪽방촌이 형성돼 있다. 이곳은 '최후의 주거지'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가장 밑바닥은 노숙이다. 여기서 노숙인과 쪽방 주민을 구별해야 한다. 노숙인은 말 그대로 잠잘 곳 없이 거리를 떠도는 이들이고, 쪽방 주민은 비록 열악하지만 월세를 내고 거처를 마련한 이들이다.


최근 복지부가 발표한 실태조사가 보여주는 현실은 처참하다. 지난해 전국 노숙인 수는 12,725명으로, 2021년 대비 1,679명 감소해 11.6%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36.8%로 2021년 32.7%보다 높아져 노숙인의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수도권 쏠림 현상이다. 전체 노숙인 중 51%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거리 노숙인의 76%가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 거주한다. 거처 유형별로는 시설 노숙인 6,659명(52.3%), 쪽방 주민 4,717명(37.1%), 거리 노숙인 1,349명(10.6%) 순이다.


전체 노숙인 등 중 남성은 9,865명(77.6%), 여성은 2,851명(22.4%)로 조사되었다. 과거 서울역 인근에서 노숙인 급식봉사를 했던 경험을 돌이켜보면, 대부분이 남성이었다. 그러나 통계에 잘 포착되지 않는 여성 노숙인들의 실제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여성 노숙인 시설 중 상당수가 비인가 시설인 이유는 가정폭력을 피해 온 경우가 많아 시설 위치 노출 시 안전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곧 수립될 복지부의 제3차 노숙인 등 복지 및 자립지원 종합계획(2026~2030)에는 이러한 비인가 시설 사각지대에 대한 구체적 대책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쪽방촌 공공주도 개발성공 여부가 중요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 2021년 2월 국토부와 서울시, 용산구는 동자동 쪽방촌을 세입자 주거권을 보장하는 공공개발로 재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재개발 시마다 기존 주민들이 내몰려야 했던 관행을 깨뜨리는 획기적인 시도였다. 하지만 개발계획 발표 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개발 첫 단계인 지구 지정조차 완료되지 않은 상태다.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 정비사업은 공공 주도 전국 최초 사례로 추진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약 3,000평 부지에 782세대를 건설하되, 그중 370세대를 기존 쪽방 주민에게 우선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기존 거주자의 재정착을 보장하는 진정한 의미의 공공주도 개발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다만 협소한 임시거주시설을 두고 "교도같은 방에서 사는것보다 차라리 죽여라!"라는 극단적인 현수막이 걸리는 등 이주를 앞둔 주민들 사이에서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어, 이들 간의 합의점을 찾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벌써 낮 기온이 30도를 넘나드는 날들이다. 에어컨 없는 1평 남짓한 쪽방에서 어떻게 이 폭염을 버텨낼 것인가. 더위와 추위는 늘 가난에 가장 가혹하다.


선거철 한 번의 현장점검으로는 이들의 절망적 현실을 바꿀 수 없다. 정치인들의 쪽방촌 순례가 단순한 제스처에 그쳐서는 안 된다. 진짜 변화카메라가 떠난 후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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