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 늘어지는 정치를 넘어서
최근 전당대회와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며 한 가지 확신이 들었다. 완전히 부족 간 전쟁터가 되었다는 것이다. 후보 한 명이 나오는 순간 양쪽 진영은 즉시 전투태세로 돌입한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정책 비전이나 실무 능력은 한순간에 뒷전으로 밀려난다. 남는 것은 '우리 편 vs 저들 편'이라는 원시적 구도뿐이다. 이것이 바로 협량정치의 민낯이다.
이런 무지성 진영대결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소속감을 갈구하는 동시에 타자를 배제하려는 '부족 본능'이 존재한다. 하루에도 수천 건의 이슈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개개인이 일일이 검증할 여유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사고를 집단에 '외주화'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속한 부족이 지지하면 나도 지지하고, 반대하면 나도 반대한다. 정치적 사유의 아웃소싱인 셈이다. 최근에는 AI에게 조차 정답을 묻는 일이 다반사이니, 집단과 기계, 알고리즘에 사고를 위탁하는 순간 인간의 사고는 납작해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미디어와 여론조사는 기름을 붓는다. 이슈가 터지면 여론조사가 즉시 가동하고, 여론조사가 나오면 미디어가 그 수치를 가지고 호도한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를 일이다. 대부분의 여론조사는 전국 표본 500명 수준에서 진행된다. 문제는 이 500명의 납작한 응답이 곧바로 '국민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는 점이다. 특히 평일 근무시간대에 이뤄지는 ARS 자동응답 방식 여론조사에 찬찬히 응답할 수 있는 사람들은 시간적·환경적 조건부터 대다수를 대표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 제한된 샘플이 ‘국민 전체의 뜻’처럼 유통되고, 미디어는 그 수치를 정치적 압박의 도구로 활용한다. 결국 협량한 표본이 협량한 정치로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채, 수치만을 앞세운 정치판은 더욱 납작해질 수밖에 없다.
소수의 응답 결과를 대국민의 '민심'인 척하는 것, 특정 프레임을 덧씌워 여론이 결정된 것처럼 연출하는 것은 이제 정치공학의 기본 기술이 되어버렸다. 대중은 숫자의 권위에 기대어 쉽게 동요하고, 정치는 그 동요에 맞춰 오히려 스스로 방향을 잃는다. 정치가 여론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여론에 정치를 외주 주는 셈이다.
그렇다면 협량정치를 넘어서는 길은 무엇인가. 나를 위해 고민 한다. 마음이 게을러져 누군가의 판단에 섣불리 기대지 않기 위해. 색안경을 벗고, 정치인의 겉말을 걷어내고 정책의 실질을 따져보는 습관을 장착해야 하기에. '그래서 그게 내 삶에 무슨 도움이 되는데?'라는 실용적 질문도 환영할 일이다. 부족의 승리가 곧 나의 승리는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인류를 분열시키고 피로하게 만드는 ‘소모성 구경거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물고 늘어지는 협량정치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여론의 기압에 휘둘리지 말고 정책의 본질을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정치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지, 부족 간 승부놀이가 아니다. 이 글 역시 나를 향한 성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