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은 더 이상 손 잡아줄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았다
유난히 발걸음이 고된 월요일 출근길에 트위스트를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인류가 혼자 춤을 추기 시작한 지 채 70년이 되지 않았다는 말이 기억났다. 우리가 자유롭게 혼자 몸을 흔드는 문화, 그 시작점에 처비 체커(Chubby Checker)의 'Let's Twist Again'이 있었다. 1961년 발매된 이 곡은 단순히 음악을 넘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Come On, Let's Twist Again, Like We Did Last Summer.”
지난여름처럼 다시 트위스트를 추자는 이 가사는 전년도 대히트를 쳤던 ‘The Twist’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했다. 이미 한 번 열광했던 그 순간을 다시 불러내며, 그때처럼 한 번 더 춤추자고 유혹하는 귀여운 전략이었다. ‘한 번 더’가 주는 리듬이 더욱 흥을 돋웠다.
당시 춤문화는 철저히 위계적이었다. 특히 여성은 남성의 손을 잡고 그의 리드에 맞춰야만 춤출 수 있었다고 하니, 춤은 개인의 표현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재현이라 볼 수 있겠다. 당시 1960년대 미국은 냉전과 보수주의가 팽배한 시기였지만, 동시에 진보적인 케네디 정부가 들어서며 기존 가치에 대한 저항이 대중문화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트위스트는 파격적이었다. 처비 체커가 식당에서 삶은 감자를 비비며 밟은 스텝에서 착안했다는 이 춤은 심플했다. 손도 잡지 않고, 복잡한 스텝도 없이, 그저 흔들면 제끼면 되는 춤이었다. 'Let's Twist Again'이 발매되자 여성들은 더 이상 손 잡아줄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았다.
뮤지컬 영화 '헤어스프레이(2007)'도 1962년 미국 동부 볼티모어를 배경으로, 춤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당시 사회의 갈등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흑인과 비만, 빈곤층 등 비주류 그룹이 춤을 추며 하나가 되는 과정이 매력적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OST 중에서 당시 분위기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곡은 벨마가 부르는 'Miss Baltimore Crabs'다. 가사에서 구시대를 상징하는 벨마는 차차차-를 추고, 틴에이저들은 "Twist, twist, twist, twist Mashed potato, mambo" 라면서, 트위스트를 추는 장면이 있다. 악당 벨마가 노래로 쏟아내는 혐오 속에는 그때의 시대상이 응축해 있는데 그것조차 매력적인 명곡이다.
이렇게 춤의 민주화가 모든 이에게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기성세대는 벨마처럼 이를 품위 없는 몸짓으로, 전통적 가치의 파괴로 여겼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1인 가구 증가, 비혼화 등 현대사회의 모든 변화가 결국 트위스트가 예고한 '혼자서도 가능한 세상'을 향해 가고 있다. 춤도 더 이상 사교나 구애를 위한 동작이 아닌 개인의 표현으로 인정받는다. 혼밥에 혼춤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인데 춤도 혼자 출 수 있지 뭘.
출근길, 'The Twist(1960)'와 Let's Twist Again(1961)'을 교차로 들으며 시나리오를 써봤다. 어느 연인이 무도장에서 'The Twist'를 들으며 함께 춤을 추다가,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어주며 아낌없이 사랑하고, 종국엔 영원이란 없다는 걸 알고 이별한다. 그 장면에 'Let's Twist Again'을 배경음으로 깔고 각자 춤을 추며 서로 갈길을 가는 것이다. 어떤가. 개똥 시나리오를 쓰고 보니 영락없이 라라랜드의 아류작 같다. 찰나의 망상으로 근로소득을 버는 것 외엔 별 재능이 없음만 확인했다. 얼른 환승 카드를 찍고 출근이나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