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

죽음의 늪에서 사람을 살리는 남자

by 빵부장


매일 밤, 누군가는 삶을 포기하려 한다. BBC 다큐 <자살을 쫓는 남자>는 그 어두운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동작구청 종합상황실에서 근무하고, 10여 년째 SNS를 살피며 신고를 접수하는 유규진 공무원 겸 자살예방 활동가의 이야기다.


"안녕하세요, 가실 건가요?"


그는 매일 밤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의 SNS 글을 확인하며, 먼저 말을 건넨다. 10여 년 동안 그가 신고한 자살 암시·시도 건수는 5만여 건. 구조한 목숨만 수천 명에 달한다. 비번에도 밤을 새우며, 누군가의 삶을 지키겠다는 사명감으로 달려온 시간이다.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태어난 순간부터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는 말과 닮았다. 한국은 20년 넘게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20·30대의 사망 원인 1위도 자살이다. 2024년 하루 평균 40명 가까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특히 10~20대 청소년과 청년층은 자해·자살 시도 비율이 2014년 26.7%에서 2024년 39.4%로 급증했다. 우울증 등 정신과적 문제가 가장 큰 원인(45.6%)이다. 단순한 개인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임을 보여주는 통계다.


영상 속 사람들은 외롭고 두려웠다. 모르는 사람과도 함께 생을 마감하고 싶을 정도로 고통이 깊었다.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깊이 고민하면 사는 것과 죽음 그 어떤 게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마지막 선택을 하기 전에 손을 내미는 일이다.


유규진 씨가 바라는 사회는 신고 건수가 줄어드는 사회가 아니다. 힘든 사람들이 결심을 내리기 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다. 그는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는 마음으로, 지친 기색 없이 달려간다. 이미 세상의 모든 풍파를 달관한 것 같은 얼굴. 가히 존경스럽다.


오는 9월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우리는 단순한 관심을 넘어, 사회적 책임과 정책적 결단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런 사람들이 충분한 행정적 권한을 얻고 세상을 바꿀 수 있기를 바란다. 현재 국무총리 소속 자살예방정책위원회를 대통령 소속으로 격상하고, 범부처 정책을 대통령 직속 컨트롤타워 아래 두는 제도적 전환도 논의할 수 있다. 공익적 목적을 가진 사람에게 권한과 책임이 충분하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사람을 위한 정책이 실현된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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