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을 준비하는 마음
조식 기획은 식자재 구입에서 완결된다. 매일 조식을 기획하는 것도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그렇게 기획한 조식에 필요한 식재료를 구입하고 구입한 식재료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 역시 그것 못지않게 많은 노력과 재능을 필요로 한다. 구입한 식자재를 남기지 않고 어떤 식으로 조식에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서 늘 고민하지만 쉽지 않다는 얘기다. 가령, 월요일 아침 조식으로 시금치 프리타타를 만들기 위해 구입한 시금치 한 단으로 일주일 내내 시금치 무침, 시금치 두부 오믈렛, 시금칫국 등 시금치 조식만 만들어 먹을 순 없는 노릇이다.
그건 일종의 공급망 관리(Supply Chain Management)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팀 쿡(Tim Cook)이 스티브 잡스의 뒤를 이어 애플의 CEO가 될 수 있었던 건 그의 포용의 리더십이나 전략가적 기질 덕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자신의 본업이었던 공급망 관리에서 늘 탁월한 실적을 보였기 때문이다. 프로 요리사들은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재료를 셰프 특선 요리로 포장해서 처분한다. 앤서니 보데인(Anthony Bourdain)이 "키친 컨피덴셜(Kitchen Confidential: Adventures in the Culinary Underbelly)"에서 월요일 셰프 특선 요리 같은 건 절대 주문하지 말라고 했다. 그건 거의 백 퍼센트 주말에 사용하고 남은 식재료 처분용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식재료 주문은 늘 어렵다. 주문하는 식재료는 대개 한 번에 먹을 수 없기 때문에 내일 아침의 조식에 한정하지 않고 모레 혹은 그 이후의 조식까지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항상 가방 속에 폴딩 장바구니를 가지고 다니다가 퇴근 동선에 있는 대형 마트나 집 주변의 마트에 들러 신중하게 식재료를 구입한다. 문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한 나머지 혹은 내일의 조식에 대한 기획을 끝내지 못한 상태에 이르렀을 때다. 결국 내일 아침 이른 시간에 문 앞까지 신선한 식재료를 배송해 줄 온라인 서비스를 찾아 배송 마감시각 1~2분을 남겨두고 주문 버튼을 누르게 된다.
플랫폼마다 자신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지만, 대개 전날 주문한 제품을 다음 날 새벽까지 배송하는 서비스를 새벽배송이라고 한다. 2015년 마켓 컬리가 처음으로 새벽배송을 시작한 뒤로 이 시장은 매년 30% 넘게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시장 규모는 2017년 2000억 원대에서 2018년 4000억 원가량으로 늘었고, 2019년에는 8000억 원에 이르렀다. 2020년에는 2조 원대를 돌파, 2023년에는 무려 11조 9000억 원에 이르렀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새벽배송은 낮 배송에 비해 인건비 등 2배 이상의 운영비가 든다. 물류센터 일용직과 배송기사들의 노동이 늘어난다. 배송과정에서 탄소배출량이 증가하고 불필요한 포장 폐기물이 발생된다. 소비자는 무료 배송 주문 금액을 맞추기 위해 불필요한 식재료까지 담게 되는 날이 잦아진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시간을 사는 행위를 비난할 수는 없지만 죄책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새벽배송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주말마다 열리는 농부시장 마르쉐에도 가끔 들러 작지만 알찬 식재료를 구입한다. 겉모양이 조금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판로를 찾지 못해 폐기되는 식재료를 정기 배송해 주는 어글리어스도 이용하고 있다. 매번 랜덤 하게 주어지는 제철 식재료로 조식을 만들다 보니 마치 게임 속 미션을 클리어하는 것 같은 재미도 있다. 좀 더 찾아보니 회사 인근에 식재료 구입이 가능한 마트가 있었다. 가격이 조금 비싸 보이지만 건강한 식재료를 먹을 만큼 소량으로 구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새벽배송이라는 지옥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새벽에 눈을 뜨니 알림이 와 있다. 어제도 자정에 임박해서 새벽배송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다시 한번 왠지 모를 죄책감이 엄습한다. 누군가는 밤새 이 식재료들은 포장하고 누군가는 선별해서 또 누군가는 현관 앞까지 배달하는 일을 한 것이다. 과연 나는 이 식재료들을 자정이 다 돼 가는 시간에 꼭 주문해야만 했던 것일까? 미리 살 여유는 정말 없었을까? 현관물을 열고 배송된 다회용 백을 열어 주문한 식재료와 아이스팩 등 남김없이 내용물을 모두 꺼낸 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바로 손이 닿을 수 있도록 밀어놓으며 생각한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까?
향긋한 당근 잎은 수확 후에 금방 시들기 때문에 도무지 도시에서는 맛보기 쉽지 않다. 마르쉐 @marche_friends에선 가능하다. 모양이 예쁘지 않아서 버려지는 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는 어글리어스 @uglyus_market를 이용해 보는 건 어떨까?
마르쉐에서 구입한 당근 잎, 뿌리까지 사용한 약 200kcal #당근샐러드
재료
잎이 달린 당근 5~6개, 완두콩 1/2컵, 소금, 후추, 올리브오일, (드레싱) 올리브오일 2T, 화이트와인 비니거 1T, 홀그레인 머스터드 1t
* 줄기는 보기보다 억세다. 샐러드에는 잎과 뿌리만 사용한다.
조리
1. 당근 잎은 흐르는 물에 헹군 후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2. 끓는 물에 소금 조금 넣고 완두콩을 데친다.
3. 달군 팬에 올리브오일 두르고 당근을 볶는다.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
4. 접시에 잎을 소복하게 담고 3의 당근 얹고 완두콩 얹고 드레싱으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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