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을 만드는 시간
캐스트 어웨이는 페덱스 직원 척 놀랜드가 출장 중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표류하고 그곳에서 4년간의 생존 끝에 가까스로 구조되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 역을 맡은 톰 행크스는 한 인터뷰에서 무인도에 가져가고 싶은 필수용품 몇 가지를 꼽았는데 그 가운데 칫솔과 치약이 있었다. 처음에는 다소 의외의 답변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수긍이 간다. 영화 속에서 척은 극심한 치통으로 고통받다가 본인 스스로 스케이트 날을 이에 대고 돌로 내리쳐 이를 뽑았다. 톰 행크스가 치약과 칫솔 외에 무인도의 필수 동반자로 꼽은 것이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배구공, 아니 그의 소중한 친구 윌슨이다. 윌슨은 무인도에서 척 놀랜드의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존재였다. 그는 4년간의 고립된 생활에서 척의 유일한 대화 상대였다. 안식처 같은 존재였다. 척이 무인도에서 4년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도, 천신만고 끝에 무인도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윌슨 덕분이었다. 과거 문인들에게도 윌슨과 같은 존재가 있었는데 바로 문방사우(文房四友)다. 문인들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항상 곁에 두었던 네 가지 친구, 종이, 붓, 먹, 벼루 말이다. 문인들은 문방사우를 친구인 동시에 자신의 분신과 같이 소중하게 여겼다.
나에게 무인도에 가져가고 싶은 필수용품 몇 가지를 대보라면 한다면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까 생각했다. 아마 무인도에서도 별일이 없으면 매일 어제와 다른 조식을 만들어 먹을테니 조식을 위한 도구가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그건 윌슨과 같은 사물이지만 동시에 친구 같은 존재니까 주방의 세 가지 친구, 주방삼우(廚房三友)라고 부르자.
조식을 만들어 먹는데 필요한 첫 번째 도구는 칼(刀)이다. 주방에는 다양한 칼이 있다. 우선 가장 많이 쓰이는 식도, 셰프 나이프(Chef’s knife)가 있다. 과일이나 채소를 다듬을 때 사용하는 과도, 페어링 나이프(Pairing knife)도 있다. 넓은 직사각형 모양의 중식도, 차이다오(菜刀)도 있다. 차이다오는 묵직하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도 재료를 손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밀어 써는 식도나 당겨 써는 일식도와 달리 중식도는 칼의 무게를 이용해서 위에서 아래로 써는 게 일반적이다. 아, 무언가 자르는 도구라면 가위도 빠질 수는 없다. 가끔 격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지만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라면이라도 끓여 먹는 상황에 처하면 어김없이 가위가 등판한다. 조리 중인 라면에 가위로 대파를 잘라 넣는다. 재료 손질과 토핑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사용 빈도로 보면 식도를 제일 많이 사용하지만 무인도라는 정황을 고려할 때 중식도를 챙겨야 할 것 같다. 무인도에서는 조식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물고기를 잡아야 하고 야자열매와 같은 야생의 무언가를 손질할 일도 많을 것 같다. 심지어 야생 동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칼보다 중식도가 적합하지 않을까?
두 번째 도구이자 친구는 팬(鑊)이다. 사실 빅토르, 삐에트로, 소피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순서대로 주방에서 사용 중인 스테인리스 팬, 알루미늄 팬, 코팅팬의 이름이다.) 우선 북유럽 출신의 믿음직한 빅토르는 예열만 적당히 잘해주면 조식의 종류에 관계없이 굽고, 삶고, 튀기는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이 가능하다. 게다가 튼튼하고 녹이 슬지 않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삐에트로는 주로 파스타를 만들 때 사용 중이다. 열 전도율이 좋기 빠른 조리가 필요한 조식과 만났을 때 최강의 능력을 발휘한다. 가볍기 때문에 팬을 흔들어 만테까레 할 때도 좋다. 그리고 소피다. 그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조리가 필요할 때 사용한다. 물론 2~3분 팬을 예열할 틈도 없이 시간에 쫓길 때도 사용한다. 계란 프라이, 오믈렛, 생선 구이나 야채 볶음 같은 조식에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 다만 오랜 기간 사용하면 코팅이 벗겨진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지금의 소피는 조식을 시작하고 나서 다섯 번째 소피다. 팬도 이렇게 저마다 다른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무인도의 정황을 고려해야 할 때 든든한 빅토르가 제격일 것 같다.
주방의 세 친구 가운데 칼과 프라이팬에 이은 세 번째 친구는 숟가락(匙)이다. 무인도에서는 이른바 숟가락 운명 결정론에 역행한다. 무인도가 아닌 곳에는 다이아몬드 숟가락부터 금, 은, 동, 놋 순으로 서열이 매겨지지만 무인도에선 오히려 구리 합금인 놋숟가락이 최고의 지위를 차지한다.
구리 78%와 주석 22%를 섞어 만든 방짜 유기는 살모넬라균, 황색포도상구균, 황색포도상구균, 대장균, 비브리오균 등을 억제하고 살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칫 위생에 소홀해질 수 있는 무인도 생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게다가 유기를 담가 둔 물에서는 소량의 미네랄이 발생하기 때문에 슬기로운 무인도 생활에는 빠질 수 없는 아이템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놋숟가락이 없구나. 하지만 내겐 놋접시가 있다. 살모넬라균, 황색포도상구균, 황색포도상구균, 대장균, 비브리오균 따위는 얼씬도 하지 못할 것이다.
카펠리니의 별칭은 Angel’s hair다.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면 냄비가 아닌 팬에 삶아 보면 된다. 심장 떨리게 아름답다. 약 345kcal 오이탕탕이를 곁들인 카펠리니
재료
카펠리니 (먹고 싶은 만큼 1인분), 취청 오이 1개, 가쓰오부시 조금, (드레싱) 간장 2T, 꿀 1/2T, 식초 1T, 참기름 1T, 참깨와 다진마늘 1t
조리
1. 끓는 물에 카펠리니 넣고 삶는다.
2. 간장 2T, 꿀 1/2T, 식초 1T, 참기름 1T, 참깨와 다진마늘 1t 섞어서 드레싱을 만든다.
3. 취청 오이 1개 흠씬 두들기고 먹기 좋게 손으로 숭덩숭덩 자른다.
4. 오이를 볼에 넣고 드레싱 붓고 골고루 질 섞는다. 드레싱은 다 붓지 말고 조금 남겨둔다.
5. 접시에 카펠리니 담고 오이탕탕이를 얹는다. 생각대로 예쁘게 얹어지진 않는다. 남겨둔 드레싱 붓고 가쓰오부시 얹은 다음 골고루 비벼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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