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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식이 완성되는 그 마이크로 모멘트

조식을 만드는 시간

by 나조식


마이크로 모멘트(Micro Moments)라는 용어가 있다. 우리말로 옮기면 소비자가 어떤 정보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모바일 디바이스를 사용해서 그 정보를 찾는 ‘찰나의 순간’을 뜻하는 말이다. 맛집 대기줄에 서 있다가 기다림에 지친 나머지 인근의 다른 맛집을 찾아보는 ‘찰나의 순간’, 유튜브를 보다가 마음에 드는 접시를 발견하고 그 접시의 가격을 찾아보는 ‘찰나의 순간’, 새로 나온 아이폰 리뷰 영상을 보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전문 용어가 궁금해서 무슨 뜻인지 찾아보는 ‘찰나의 순간’,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는 동안, 고갈된 지적인 허기가 물리적인 허기를 자극(너는 지금 치킨이 먹고 싶다)해서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들고 치킨을 주문 중인 바로 지금, 당신의 그 ‘찰나의 순간’이 바로 마이크로 모멘트다. 소비자가 알고 싶고(I-want-to-know moments), 가고 싶고(I-want-to-go moments), 하고 싶고(I-want-to-do moments), 사고 싶은(I-want-to-buy moments) 그 찰나의 순간에 빠르게 반응하고 대응하기 위해서 세상의 모든 마케터는 오늘도 감각을 닦고 조이고 기름치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조식의 세계에도 그런 찰나의 순간, 마이크로 모멘트가 있다는 것이다. 이 찰나의 순간은 마치 소비자가 스마트폰을 들고 무언가를 찾은 뒤 그 자리에 바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순간처럼 짧고 결정적인 시간이다. 이 찰나의 순간은 마치 저 멀리서 스멀스멀 다가오는 존재가 사랑스러운 개인지 아니면 위험한 늑대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는 ‘개와 늑대의 시간’ 같기도 하다. 적군인지 아군인지 구분할 수 없는 시간,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없는 시간, 불확실성과 모호함이 가득한 시간이다. 이 찰나의 순간은 한 번 놓치면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조식이 나오는, 절체절명의 시간이자 조식의 맛과 식감이 좌우되는 궁극의 시간이다.


오일 파스타를 만들기 위해 달군 프라이팬에 하나, 둘, 셋, 올리브오일 3T를 넣은 후 얇게 썬 마늘과 페페론치노 몇 개를 다져서 넣는다. 지글지글, 올리브오일과 함께 마늘이 익어간다. 맵고, 자극적이고 달콤한 마늘의 풍미가 올리브오일 속에 고루 스며든다. 그러다가 마늘이 적당히 익어서 더 이상 익을 수 없는 찰나의 순간이 도래한다. 아주 잠깐 눈을 한 번 깜빡이는 이 순간이 지나면 마늘은 타고, 내 마음은 바사삭 재가 된다.

작은 웍에 하나, 둘, 식물성 오일 2T를 넣은 후 뿌리부터 꼭지까지 세로로 썬 양파를 넣고 볶는다. 중국집에 입장했을 때 맡았던 그 향이 주방을 가득 메운다. 양파는 아직 단단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양파의 숨이 한 풀 꺾이고 투명해졌구나 싶은 순간이 온다. 하지만 그 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작은 냄비에 물을 붓고 끓인다. 잠시 후 물이 끓으면 소금을 1t 넣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썬 브로콜리를 퐁당퐁당 넣는다. 세상을 집어삼킬 듯 끓던 물은 잠시 소강상태가 된다. 그러다가 브로콜리의 컬러가 점차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때부터 천천히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정확히 열을 세고 재빨리 브로콜리를 건져낸다. 브로콜리를 씹었을 때 물러지지 않고 적당히 아삭함이 유지되는, 24년 쿡방계를 뜨겁게 달궜던 유행어, 이븐 한 익힘 정도로 완성되는 그 찰나의 순간이다.


라틴어 ‘카르페 디엠(Carpe Diem)’ 원래의 뜻은 ‘오늘을 잡아라(Seize the day)’다. 팍스 로마나 시대엔 ‘평화로운 현재를 즐기자’는 의미로 사용됐고, 중세 말기 흑사병 시대에는 ‘죽지 않아 다행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자’라는 의미로 쓰였다. 그러다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통해서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지 말고 지금 하고 싶은 것을 찾으라’는 의미로 발전됐다. 하지만 카르페 디엠(Carpe Diem)의 의미는 단순히 현재를 즐기라는 게 아니다. ‘지금’이란 순간은 단 한 번뿐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에 충실하라는 얘기다.

시간이 찰나의 순간, 마이크로 모멘트의 총합이라면 요리는 각 재료가 가장 최적의 상태로 변신하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서 만드는 예술이다. 각 재료가 그 완벽한 상태에 도달하기 직전의 찰나, 그 순간을 잡아내는 것이 요리의 핵심이자 노하우다. 자, 이제 완성된 조식을 즐길 시간이자 먹을 시간이다.





빨간색 토마토 수프 덕분에 초록색 브로콜리의 컬러가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게다가 씹었을 때 물러지지 않고 적당히 아삭함이 유지되는, 이븐하게 익힌 브로콜리가 열일한 #토마토수프


재료

방울토마토 10개, 간 토마토 1병(약 600ml), 브로콜리 조금, 소금, 후추, 올리브오일


조리

1. 코팅 냄비에 올리브오일 두르고 방울토마토를 2~3분 볶는다. (어머니가 주신) 아무것도 넣지 않은 간 토마토 한 병을 붓고 끓인다. 소금, 후추로 간하고 허브를 넣고 좀 더 끓인다.

2. 끓는 물에 브로콜리 조금 데친다.

3. 그릇에 1의 토마토 수프 담고 브로콜리 조금 얹는다. 올리브오일 한 바퀴 두른다.


Inspired by @dolgombu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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