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을 즐기는 순간
비빔밥.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떡볶이와 더불어 한식의 대명사처럼 통용됐던 음식이다. 물론 아직도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서 각종 국제 행사의 한국 대표 시식 음식은 물론 국적기의 기내식으로도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역별로 다소 차이는 있으나 비빔밥의 생김새는 대게 하얀 쌀밥과 그 위에 얹은 오방색의 채소와 고기, 계란 등 다채로운 컬러와 텍스처의 고명 그리고 고추장이라는 붉은색 소스로 묘사할 수 있다. 아울러 비빔밥의 가장 큰 특징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밥과 모든 고명을 야무지게 비벼서 먹는 데 있다. 밥과 모든 재료가 혼연일체를 이뤄 원래의 흔적을 절대 알아볼 수 없게 비비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나는 비빔밥을 비벼 먹지 않는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다양하게 맛보고 싶어서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을 때 다양한 악기의 소리를 찾아내서 듣곤 한다. 가령, 오케스트라의 합주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서 첼로가 내는 소리를, 플루트의 소리를, 바순의 소리를 찾아서 듣는다. 다양한 멜로디와 박자가 어우러지는 가운데서도 다른 듯 같은 듯 각자의 길을 가는 악기들의 소리를 찾아내서 듣는 건 묘한 쾌감을 선사한다. 식재료도 마찬가지다. 고사리의 맛, 볶은 당근과 호박의 맛처럼 서로 다른 컬러와 텍스처를 가진 식재료들을 맛볼 때 느낄 수 있는 묘한 재미가 있다. 게다가 한 그릇에 모두 모여있지 않은가? 그건 모든 식재료가 섞였을 때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재미다.
비빔밥의 비주얼을 심미적으로 즐기고 싶은 이유도 한몫한다. 비빔밥은 흰 밥과 주변을 감싼 당근, 시금치, 도라지, 고사리, 콩나물 그리고 한가운데 자리 잡은 써니사이드 업 계란프라이에 이르기까지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 각각의 식재료가 가진 색의 대비와 질감은 하나의 작품처럼 보인다. 오죽하면 진주비빔밥은 일곱 가지 색채의 고명이 꽃처럼 아름답다고 ‘칠보화반(七寶花飯)‘으로 불렸다고도 하지 않은가? 아름답게 수놓은 한 폭의 그림과 같은 구도를 가능한 한 오래도록 감상하면서 즐기고 싶다. 마치 폭군처럼 그 공들인 한 폭의 그림을 무참히 뒤섞어 짓밟아 버리고 싶진 않다.
마지막으로 몇 년 전부터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이른바 ‘거꾸로 식사법‘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아주 오래전 스티븐 코비(Stephen R. Covey)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 유행하던 시절, 유행에 편승하기 싫어서 (솔직히 얘기하면, 그대로 따랐다가 혹시나 성공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프랭클린 플래너를 멀리했었다. 하지만 이건 먹는 문제다. 그렇다면 기꺼이 ‘거꾸로 식사법‘이라는 유행에 올라타도 괜찮은 것 아닐까? 매 끼니마다 식이섬유, 단백질, 탄수화물의 순서로 섭취하는 이 식사법에 따라 비빔밥 위의 각종 채소를 먼저 먹고, 그다음 계란이나 쇠고기 고명 같은 단백질을 먹은 뒤, 마지막으로 고추장을 넣어 밥을 비벼 먹는 것 정도라면, 기꺼이 유행에 편승해도 좋지 않을까?
물론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꼽으라면 '다양하게 맛보고 싶어서'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다양한 맛'을 넘어 '다양한 조합으로 맛보고 싶어서'라는 욕망이 깔려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여기에 탕수육이 있다. 화창한 봄날, 바스락 거리는 옷을 걸치고 산들바람을 맞으며 산책하는 느낌의 찍먹이든 소나기가 내려 촉촉하게 젖은 숲 속을 맨발로 걷는 감성의 부먹이든 탕수육은 각 조합별로 특별한 매력이 있다. 바스락거리는 튀김에 적당히 소스를 찍은 뒤 입안에 넣었을 느낄 수 있는 겉바속촉의 찍먹도 좋겠지만, 소스와 튀김이 따로 놀지 않고, 혼연일체가 되어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듯한 환상적인 식감의 부먹도 결코 포기할 수 없을 것 같다.
무려 천 년이 넘도록 크림과 잼을 바르는 순서를 두고 다툼이 끊이지 않는 영국의 크림티도 마찬가지다. 스콘에 크림을 먼저 바르든, 잼을 먼저 바르든 각 조합마다 개성 넘치는 맛을 경험할 수 있다. 데번(Devon)식 레시피를 따라 스콘에 크림, 잼 순서로 바른다면 스콘에 스며든 크림과 잼의 조화로운 맛을 즐길 수 있고 콘월(Cornwall)에서 주장하는 대로 잼, 크림 순서로 바른다면 크림과 잼이 가진 본연의 맛을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차례 다양한 식재료 조합과 함께 조식에 등장했던 스위스식 감자전, 뢰스티(Rösti)는 어떨까? 감자를 강판에 간 후 건더기와 바닥에 가라앉은 전분을 한데 뭉쳐 팬에 뒤집어 가며 정성스럽게 만들어 간장에 찍어 먹는 한국의 감자전과 달리 뢰스티는 감자를 얇게 채 썰어 바삭하게 만든 뒤 여러 가지 토핑과 곁들여 먹는다. 버터의 풍미를 듬뿍 입힌 버섯, 짭조름한 감칠맛의 치즈, 상큼하고 아삭한 당근 라페와 함께 먹을 때 뢰스티의 맛은 더욱 풍부해진다.
아, 물론 모든 비빔밥을 비비지 않고 먹을 필요는 없다. 양푼비빔밥처럼 때와 장소, 상황(TPO)에 맞게 마구 비벼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는 비빔밥도 있다.
쫀득쫀득한 식감을 선호하는 쫀득 마니아라면 감자전을, 바삭바삭 크리스피한 식감을 선호하는 크리스피러버라면 뢰스티를 추천한다. 레몬향이 나는 그릭요거트를 곁들였지만 베이컨, 치즈, 써니사이드업, 양파, 사우어크라우트, 사워크림 등등 사실상 먹을 수 있는 건 무엇이든 조합이 가능한, 서양식 감자전 약 487kcal #뢰스티
재료
감자 3개, 그릭요거트 2T, 레몬주스 1T, 홀그레인 머스터드 1t, 다진 쪽파 조금
조리
1. 감자는 그레이터에 갈아서 소금소금 10분 정도 그대로 둔다. 꾹 짜서 수분을 충분히 제거하고 전분 1 넣고 골고루 섞는다.
2. 팬에 올리브오일 두르고 감자를 얹는다. 노릇하게 익었나 확인하고 (영차) 뒤집는다.
3. 그릭요거트에 레몬주스 1T, 홀그레인 머스터드 1t 넣고 골고루 섞는다.
3. 2의 뢰스티를 접시에 담고 3의 그릭요거트를 뢰스티 위에 얹는다. 허전하니 쪽파도 조금 얹는다.
#조식 #레시피 #미라클모닝 #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