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을 즐기는 순간
세상에는 다양한 알레르기가 있다. 알만한 사람이 알레르기가 뭐냐며 알.러.지.라고 읽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은데 영어로는 알러지(Allergy)가 맞지만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에서 정한 공식 용어로는 알레르기가 맞다. 에너지는 에네르기라고 하지 않고 시너지는 시네르기라고 하지 않는데 오직 알러지만 알레르기다. 그리스어로는 알레르기아(αλλεργία), 이상작용이란 뜻으로 일반적으로 인체의 면역 시스템이 어떤 특정 물질이나 조건에 대한 과민하게 반응하는 현상을 말한다. 따라서 ‘세상에는 다양한 알레르기가 있다’는 표현보다는 ‘세상에는 다양한 알레르기 요인과 그 반응이 있다’는 표현이 더 구체적이고 적절할 것 같다.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알레르기의 요인들은 대개 햇빛이나 먼지, 꽃가루와 같은 주변 환경과 연관된 것들이다. 물론 계란, 우유, 견과류, 어패류, 과일, 채소처럼 음식과 관련된 것들도 많다. 동료 A는 여름에도 늘 긴 팔 셔츠를 즐겨 입는데 강렬한 햇빛에 맨살이 노출되면 울긋불긋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호두 알레르기가 있는 동료 B는 디저트를 먹을 때마다 성분표를 확인한 다음 ‘혹시 여기 호두 안 들었죠?’라며 늘 재차 확인한다. 적응되면 괜찮아질 텐데 뭘 그리 따지냐는 반응도 있지만 대부분의 알레르기는 두드러기, 저혈압, 호흡곤란은 물론 최악의 경우 의식 불명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에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과거에 함께 일했던 직장 상사의 이름만 들어도 기겁을 하며 이른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동료 C가 좋은 사례다.
조식을 먹는 데 있어서 하나의 장애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나의 알레르기다. 그 연대기는 번데기에서 시작한다. 견과류처럼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대중적인 알레르기도 아니고, 세대와 국경을 뛰어넘는 꽃가루 알레르기도 아닌, 게다가 어감도 영 별로인 누에나방이 버리고 간 번데기 알레르기라니.
씹을수록 고소한 건더기와 소금, MSG가 어우러진 감칠맛 가득한 번데기 국물은 한 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스트리트 푸드였다. 하지만 번데기를 먹고 얼굴 곳곳이 부어오르는 경험을 한 후 그날로 번데기와 결별했다. 그 원인은 분명히 번데기였다.
한편 내게 루꼴라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성인이 된 후였다. 루꼴라(Rucola)라는 이름 외에도 로켓(Rocket 혹은 Roquette), 아르굴라(Arugula) 등으로 불리는 이 매력적인 허브이자 채소는 한동안 나의 기쁨이자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번데기와 마찬가지로 원인을 알 수 없이 입안이 붓는 경험을 한 뒤 그날 먹은 음식을 모두 기억에서 소환하고, 곳곳을 검색을 한 뒤 루꼴라가 범인이라는 확신을 갖게됐다. 루꼴라와의 인연은 그걸로 끝이었다.
이미 그 맛과 향을 잊은 지 오래지만, 루꼴라는 최고의 식재료다. 또띠아로 만든 피자에선 토마토소스와 치즈 사이에서 맛의 레이어를 만들어 준다. 계란 오믈렛에 곁들이면 치명적인 향을 더해주고, 양송이버섯 오픈 샌드위치 위에 올리면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루꼴라는 맛과 향, 그리고 비주얼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매력적인 허브다. 그렇다면 이 다재다능한 허브를 무엇으로 대체하면 좋을까?
열무잎, 시금치, 치커리, 섬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후보를 떠올리고 수년에 걸쳐 조식을 통해 임상실험을 했다. 열무잎은 지나치게 억세고 알싸한 맛이 강했으며 베이비 시금치는 루꼴라를 대체하기에는 너무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맛과 모양이 비슷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치커리는 지나치게 쌉싸름한 맛이 주변 재료의 맛을 한 번에 압도해 버렸고 섬초는 너무 두껍고 투박했다. 심지어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바닥에 돋아난 민들레 잎을 보고 이것이야말로 루꼴라의 완벽한 대체재가 아닐까 하는 기대를 품었지만 그건 안정적인 수급이 어렵고 도로에 자란 민들레를 함부로 먹었다가는 루꼴라 알레르기보다 더 큰 불상사가 발생할 것만 같았다. 루꼴라와 비슷한 모양의 뽀리뱅이와 고들빼기가 있다는데 이건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
알레르기 반응의 정의는 우리의 ‘면역 체계가 정상적이고 무해한 물질에 부적절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정상적이고 무해한 물질이 남들과는 달리 내게서만 부적절하게 반응하는 것이니 어쩌면 그 물질의 탓만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위생 가설’이란 용어가 있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환경에 노출될 경우 주변 물질에 대한 면역이 생기지만, 다양한 균들을 접할 기회가 없어서 면역이 성숙되지 못하면 알레르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루꼴라 알레르기의 원인이 결국 나의 미성숙함이라고 생각하고 보니 갑자기 숙연해진다. 얼마나 더 시간이 지나야 성숙함에 이를 수 있을까? 아무튼 그전까지 루꼴라는 정중히 사양한다.
루꼴라를 완벽하게 대체할 허브이자 채소는 없다. 다만 조식에 따라 루꼴라 대신 페어링 하면 좋은 채소는 있다. 가령 토마토와 써니사이드 업 계란 프라이, 슬라이스 햄을 얹은 크레페 에그랩에는 루꼴라 대신 시금치도 잘 어울린다. 루꼴라의 자리를 제철 시금치로 대신한, 햄과 토마토를 곁들인 #크레페에그랩
재료
시판 크레페 1장, 토마토 1개, 콩으로 만든 슬라이스 햄, 계란 1개, 시금치 조금, 파마산 치즈, 올리브오일
조리
1. 달군 팬에 올리브오일 두르고 크레페를 펼쳐서 얹고 앞뒤로 살짝 굽는다.
2. 크레페 가운데 계란 한 개 얹고 가장자리에는 슬라이스 햄 얹은 다음 가장자리를 살포시 접는다.
3. 접시에 담고 시금치, 토마토 얹고 파마산치즈 솔솔솔~
#조식 #레시피 #크레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