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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Mar 15. 2022

공부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읽고 쓰기


집 근처 스터디카페에 나와 있다. 이로써 생애 두 번째 스터디카페 나들이(?). 책을 읽는다는 건 내게는 일종의 도락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과 똑같은 이유로 나는 책에서 즐거움과 위안을 얻었다.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는 책을 읽는 동기가 다소 달라지고 있다. 첫 번째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무한정 남아있지 않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생각인데, 그리하여 '나에게 유한하게 주어진 시간에 아무거나 읽을 수는 없다'라는 일종의 조급함이랄까. 그래서 공들여 책을 고르고, 그 책을 읽음으로써 무언가 깊이 있게 배울 수 있고 세상을 보는 눈이 밝아질 수 있을 거라 기대될 때 비로소 선택을 한다. 혹은 이전에는 갖지 못한 전혀 새롭거나 신선한 관점을 선사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되는 책을.


(사실 아무거나 보는 것 같지만 드라마도 나름 이런 이유로 공들여 골라서 본다. 생의 어떤 작은 팁이라도 배워야겠다는 마음으로? 쓸데없이 비장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심지어 드라마의 인물들이 상황을 적확하게 꿰뚫으며 선사하는 유머까지도 내게는 가르침을 준다지.)


원래도 책을 통해 이런저런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해오기는 했지만(예를 들어 결혼생활, 육아, 직장생활, 심지어 인테리어나 집짓기까지도), 이제는 좀더 그 폭과 깊이를 더해야겠다는 자각이 드는 것. 역사, 과학, 철학, 예술, 문화, 교육, 산업 등에 대한 책을 주로 선택하여 읽고 있다.


두 번째는 '나를 위한 책읽기'를 넘어선, 타인과 사회를 이해하고 보듬기 위한 책읽기로 가지를 뻗어보려 한다. 이전엔, 특히 20대~30대 초반에는 내 마음에 직접적으로 위안이 되는 에세이류에 심취했었다. 책에 써 있는 그 마음이 내 마음 같고, 그래서 나를 알아주는 것 같은 그런 책을 좋아했다. 여전히 그런 책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그런 책은 충분히 읽을 만큼 읽었다는 생각이 든달까. (물론 여전히 가끔 초콜릿 먹는 기분으로 읽는다)


내가 선 자리가 어디인지, 나는 이곳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주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그런 책. 이 세상에서,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래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니, 적어도 나는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이정표가 되어주는 그런 길잡이 같은 책들. 콕 집어 이 길이다, 라고 말해주는 책이 아니라, 이런 길들이 있다고 넌지시 보여주는 책들.


그럼으로써 누군가에게 '막무가내식 호의'가 아닌, '사려깊은 온기'의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고 생각해보는데, 이렇게 써버리는 건 말로는 얼마나 쉬운 일인가 싶고, 그렇게 살기란 얼마나 먼 일인가 싶어 또다시 부끄럽다.


지금 읽고 있는 김승섭 교수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라는 책은 이미 그런 자리에서 제역할을 하고 있구나 싶다. 이런 삶을 살기는 어렵겠지만, 내 작은 나룻배의 방향이나마 그렇게 잡아보고 싶은 바람 정도는, 괜찮겠지.




나의 (아마도 지나고 나면 짤막할) 휴직 기간은 그렇게 보내보려고 한다. 책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는 일을 마치 공부하듯이, 수험생이 책 한 권씩 떼어가듯 그렇게 읽어보려고 한다. 그렇게 읽은 내용을 이해하는 만큼 내 안에 녹여내고, 써보고, 삶으로 이어 가꾸어보려 한다.


주어지는 과제를 억지로 하는  그다지 즐겁지 않지만, 이런 공부는 (수줍게 고백하건대) 좋아한다. 새로운 것을 알아나가고 배우는 일이 내게는 무척 흥미롭고 신나는 일이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 어떤 책을 읽건 망각의 늪에 쉽게 빠뜨려버리는 사람인지라, 나름의 방법대로 손으로 쓰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기록해나가보려 한다. (스터디카페에서는 키보드 잘못 두드렸다가 신고당하는 수가 있으므로 아이폰으로 조용히 쓰고 있다... 역시 오늘도 느끼지만 나는 카페가 맞는  같아. 임고 수험생 시절에 적막한 독서실 생활 숨막혀서 못 버티고 도망친 사람)


물론 맨 처음 쓴 것과 같이, 책 읽기는 언제까지나 나의 가장 지극한 도락이기도 하리라. 별의별 책들을 꽂아두며 돌려읽고, 거기에서 기쁨도 배움도 즐거움도 모두 얻는 나에게 책읽기가 그런 의미가 아니고 무엇이랴. 다만, 한낱 쾌락이나 유희에 그치는 것만은 아니길 기대해보는 것. 세상을 보는 눈도 마음도, 그리고 몸까지도 한 뼘 더 성장하기를 바라보는 것.



그리하여, 공부는 계속된다.

아마도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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