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두 Apr 07. 2022

식물바보의 화분 들이기

집으로 들여온 봄

이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나는 겨울을 유독 힘들어한다. 어렸을 때는 계절이 오는지 가는지 모르게 지냈던 것 같은데, 시간이 갈수록 겨울은 도통 적응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힘겹게 견디는' 정도로 다가온다. 너무너무 긴 밤, 출근길도 퇴근길도 깜깜한 풍경, 뼈가 으스러질 것 같은 추위(그렇다, 나는 남들에겐 '좀 춥네' 싶은 것도 '으아 추워서 견딜 수가 없어 당장 이불 속으로 들어가야 해!!'와 같이 절규하게 된다), 잎을 다 떨어뜨린 나무의 황량한 풍경들.


역시 전에도 썼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 겨울이 아닌 다른 계절, 특히 여름처럼 울창한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이 나오면 저곳은 내가 사는 곳이 아닌 다른 별을 보는 것 같아지는, 그래서 부러움에 배까지 아파질 정도가 되니 이쯤 되면 참 나도 중증이다.


그러다 무릎을 탁 쳤다!

아니, 그렇게 초록이 좋으면 초록을 집에 들이면 될 일 아닌가! 언제고 '식물젬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같은 사람은 절대 집에 화분을 들이면 안 된다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화분을 키우고 죽이고, 키우다 또 죽이고, 키우다 또, 또또.. 하며 내 손에서 스러진 식물들을 생각하니 감히 내가 키우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작년에 남편이 교무실로 깜짝 선물(?)을 보낸 적이 있는데 그 화분마저도 좀처럼 죽지 않는다는 스투키였다. 어허허. 지금은 다른 선생님께 그 애를 입양보내고 왔지만. (이분은 교무실에 이루 다 셀 수 없는 식물을 키우시는 분. 왠지 핏기 없어진 내 스투키도 살려주실 거란 믿음에..)


그런 나라서, 내 손은 식물을 만지면 안 된다고만 생각했는데. 키워보고 안 되면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식물이 함께 있는 동안만큼 행복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사실 꽃다발도 그렇지 않은가. 화분은 자그마한 흙이라도 뿌리를 내리고 양분을 먹으며 자라기라도 하지, 꽃은 이미 꺾어버려 시듦이 예정, 아니 확정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꽃다발도 사서 꽃병에 꽂아두고 며칠쯤은 즐거워하는 마당에, 화분을 못 들일 이유가 무어라 말인가, 하고 나름대로 논리적인(?) 합리화의 과정에 이르게 된 것.


거기다 찾아보니 꽃보다 화분이 훨씬 저렴한 것이 아닌가. 심지어 두 가지 식물에 토분 두 개까지 합쳐도 웬만한 꽃다발보다 저렴하더라는.


설명이 장황했지만 그렇게 들여온 우리집 새 연두들입니닷. :)

왼쪽이 호야, 오른쪽이 올리브나무란다. 어쩜 이리 소담하게 귀여운가. 잘 자라라 아가들아.


호야. 사실 다른 품종을 사고 싶었는데 품절돼서 이 친구로(초보 주제에 이파리에 그라데이션이 들어간 멋들어진 식물을 사려 했) 초이스.


올리브나무. 이 작은 가지에도 올리브가 열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름은 올리브나무.


이제 봄이 되어 사방팔방에 초록이 움트기 시작했지만, 우리 집도 봄이다! 앞으로는 겨울나기를 위해 곰이나 개구리처럼 겨울잠을 잘 수는 없으니 식물이나 하나씩 들여서 초록테라피를 해봐야겠다. (식물은 못 키워도 식물에 대한 책, 꽃과 나무를 다룬 책, 심지어 플랜테리어에 대한 책까지 읽는 사람. 살림 못해도 타샤 튜더 시리즈 다 읽은 사람.. 정리 못하면서 정리정돈 미니멀리즘 탐독한.. 요리 못하면서 요리책.. 그만..!!!)


바야흐로 봄이다.

지금 진행 중인 하나의 프로젝트를 마치고 나면, 저 봄을 맞으러 나가야지. 칠렐레팔렐레 꽃구경 가야지. (아래는 남편이 오늘 출근길에 보내온 봄)


그리고 하나 더.

오늘 산책길에서 만난, 땅에 벌써 떨어진 꽃잎들.

오랜만에 책 사이에 갈피로 끼워넣었다.

곱게 마르면 일기장에 붙여두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공부하는 마음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