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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Oct 02. 2021

10년만에 새로 산 침대

나는 어쩌다 조명을 사려다 침대를 산 건가


10년만에 새 침대를 사게 되었다.



원래 신혼 때 구입해서 사용하던 침대가 있었는데, 함께 잠을 자던 첫째가 자꾸 침대에서 떨어지는 일이 있어서 결국 눈물을 머금고 침대를 버리게 된 것이 오래 전 일. (지금 생각해보면 가드를 설치하거나 유아침대를 옆에 두는 식으로 해결해봐도 되었을 텐데 어째서 그냥 더 생각하지 않고 버렸나 모르겠다. 정든 가구를 더 사용하지 못하고 버리게 되었다는 점이 두고두고 아깝고 아쉽기도 하고. 침대에서 삐걱삐걱 소리가 났다는 점도 버린 이유가 되었는데, 나름 유명한 브랜드의 가구였으니 as를 문의해봐도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이제서야 드는 건. 아무래도 그 때는 육아에 지쳐 있어 온갖 판단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나 싶기도 하고)


하여 침대 없이 신혼 때 산 매트리스만으로 살아온 시절이 어언 10여 년이 되어갔다. 침대를 사고 싶다는 생각을 이따금 했지만, 둘째가 태어나고, 또 그 아기를 키우고, 그 아이가 어느 정도 몸을 가누기 전까지는 침대 구입은 요원해 보이기만 해서 관심사 자체에서 멀어지기도 했다. 매트리스 생활이 디폴트가 되어 당연하다시피 살아오게 된 것.


우리가 원래 사용해온 매트리스

바닥에 두고, 매트리스에 커버를 씌우고 그 위에 패드만 깔고 사용해 왔다. 매트리스는 책이 널브러진 귀차니스트의 덕질 공간이 되기도 하고, 아이들의 장난감이 뒹구는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 이게 매트리스인가 트램펄린인가 싶기도 했다-_-


너무 신기하게도 10년 넘게 사용하면서 아이들이 그렇게 엄청나게 뛰어댔는데도 스프링이 탄탄했던 걸 보면, 우리가 사용한 씰리 매트리스가 엄청나게 튼튼한 제품이긴 한가보다 하는 생각도 든다는. (이 글은 해당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만)


그런데 어쩌다 갑자기 침대를 구입하게 되었느냐 하면.


그 일의 시작은 추석연휴 도로 위였다.



그러니까 때는 추석연휴 마지막 날, 시댁으로 가는 길이었다. 어쩌다보니 인테리어 할 때 자주 들어가 서칭하곤 하던 조명 사이트 채널에서 마케팅 알림 톡을 받아보고 있다. 그 날도 여느 때처럼 조명 회사에서 알림톡이 와서 무심하게 열어봤다가, 왠지 좀 마음이 가는 스탠드가 올라와 있어서 열어보았다(방마다 스탠드를 두고 쓰는 사람이 도대체 왜. 그렇지만 독특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을 접하곤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던 것. 인테리어 할 때 우리집 공사해주신 회사 실장님이 '조명회사 사장님네 집보다 조명이 더 많이 들어갔다'고 했.. 아니 근데 요즘 트렌드는 곳곳에 들어가는 간접조명 아닙니까 실장님?).


그것도 무려 신호대기 중에 열어본 것인데(우리집은 운전을 제가 합니다), 그 순간 열어본 조명이 자꾸 머릿속에 아른거리던 것. 대체 조명과 침대가 무슨 상관인가 싶으시겠지만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세요. 허허.


우리는 드디어 시댁에 도착했고(양가 모두 서울에 사셔서 근거리랍니다), 다함께 거하게 준비된 반찬으로 배 두들기며 식사를 마쳤다. 그런데 아이들은 바깥에 나가 놀고 싶어하고, 어머님 아버님께서 둘은 쉬고 있으라며 인근 공원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신 것.


이때 나는 잠이나 잘 것이지 왜 가지고 간 패드까지 열어 서칭을 시작했을까? 처음엔 조명이었다. 거실 책장 옆에도 깔끔한 스탠드를 세워두었지만(거실 책장으로 글 써서 다음 메인에까지 올랐었는데! _ 아래 글 참조) 내가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고 애정하는 공간은 책장 옆도 거실도 테이블도 아닌 침대 위라는 걸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https://brunch.co.kr/@howgreat99/2


그래서인건가 조명 사이트에서 침대라고 쓰고 매트리스라고 읽는다 옆에 둘 은은한 조명이 뭐가 있을까 찾아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말이다, 침실에 스탠드가 없는 게 아니다. 엄연히 얘기하면 침대 옆, 그리고 화장대 위 총합 무려 두 개나 된다.


매트리스 옆에 두고 사용하던 북선반과 테이블


그 테이블 위에 두고 쓰던 샤오미 스탠드(오른쪽_윗부분이 잘려서 안 나왔네)


저 스탠드를 테이블 위에 두거나, 바로 옆 침대를 비추거나 하면서 사용하고 있었다. 심지어 저 스탠드는 뒤쪽에도 광원이 있어 은은하게 사방을 밝혀주는 제품으로, 썩 마음에 들어하며 사용해온 것. 그런데 왜, 굳이, 이 시점에서 갑자기 스탠드를?


그러니까, 은은하게 노랑노랑하게 위아래로 빛을 쏴주는 페이퍼나 패브릭 재질로 된 그 스탠드 있지 않은가. 위아래가 뚫려서 온 방안을 비춰주는 그런 따뜻한 빛. 그런 빛을 방에 들여오고 싶었다. 조명을 너무나 사랑해서 조명에 대한 책까지 따로 사서 읽었던 사람..


그렇게 조명 서치를 하다보니, 바닥에 깐 매트리스는 너무 작달막해서 장스탠드를 세워놓으면 너무 어울리지도 않고 볼품없게 되는 거다. 그럼 이왕이면 침대를 사야 하는 건가(갑자기?) 하고 생각은 걷잡을 수 없이 마구 뻗어나가기 시작한다(참 쇼핑을 할 때의 생각의 창발이란). 수납형, 평상형, 저상형 등등 온갖 형태의 침대를 검색하다보니 양쪽에 조명이 달린 호텔형 침대를 예전에도 찜해뒀던 게 생각이 나는 거다. 그래서 또 조명 달린 침대를 열심히 서칭하기 시작했다(어머님아버님 죄송합니다ㅠ_ㅠ 쉬라고 두고 나갔더니 귀한 시간에 쇼핑질이나 하고 있다).


그렇게 서칭하다가 선택은 점점 하나로 좁혀지고 있었다. 어쩐지 결국 이 물건을 사기 위해 우리는 이 기나긴 매트리스 생활의 여정을 지나왔다는 생각이 들고 반드시 이 침대를 사야만 한다는 강한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당장 매장에 가서 보고픈 마음 굴뚝 같은데 어쩐지 시부모님이 들어오실 것 같은 시간은 가까워왔다.


가장 가까운 매장을 검색해보고 오픈일과 마감시각까지 알아두었다. 마감은 저녁 8시. 저녁을 먹고 치우고 집을 나선 시각은 약 7시 15분경. 사실 저녁을 먹을 때까지만 해도 '아, 역시 오늘은 무리겠다' 하고 마음을 접었는데, 차에 올라 네비로 검색을 해보니 7:30이면 매장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제품은 마음의 결정을 끝낸 상태니(뭐라고?) 그 즈음 도착만 하면 상담+결제까지 끝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적느낌이 강하게 왔다.


일단 네비를 찍고, 남편은 매장에 전화를 걸어줬다(고마워 남편 사랑해 남편 최고야 남편). 정말로 문은 열려 있었고(추석 당일만 쉰다고 한다), 7:30에 주차한 우리는 나는 순식간에 침대를 보고, 매트리스에 누워보고, 매장에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집 아파트 평면도에 시뮬레이션까지 마치고 어느새 결제를 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30분 좀 넘게 걸렸으니 이거슨 마치 매직이 아닌가. 


매니저님도 너무나 깔끔하고 물 흐르듯 상담을 잘해주시고('정말 일을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음. 그 와중에 승진해서 다른 지점으로 가신다는 깨알 어필까지 하심), 가장 산뜻해 보이는 옵션으로 모든 결정을 마치고 매트리스 커버까지 사은품으로 받기로 하고 옥시토신과 아드레날린이 최정점을 찍은 상태에서 매장을 나섰다. 하아.


뭔가 엄청난 여정이었어.


그 날은 추석연휴 마지막 날인 수요일이었는데, 바로 그 다음 주 화요일에 배송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려면 주말에 매트리스 주변 정리를 마쳐야 했다.


원래 이렇게 매트리스만 두고 쓰고 있었는데, 그 옆에 책장, 북선반, 로우테이블, 심지어 복합기까지 넣어놓고 쓰고 있었던 덕후의 방이 되고 말았더랜다. 비포, 애프터 사진을 찍는다는 게 그만 치우다가 생각나서 중간 작업 사진밖에 못 남기게 되었네.


원래 왼쪽의 저 책장이 매트리스 헤드 쪽에 있었음


저 책장 안에 책이 한아름 있었다. 그 옆에 있는 북선반에도 엄청난 책들이.. 냥이님은 창틀에 앉아 구경 중.



책들을 꺼내어보니 엄청나다. 이렇게 많은 책들을 꽂아두었던 건가. 인생을 심플하게 살지 못하는 자여.. 이 날 거실+서재에 있는 책을 선별해 중고숍으로 보낼 것들을 두 박스나 정리했는데도, 안방에 있던 책들은 여전히 자리가 없어 갈 바를 몰랐다.



결국 정리가 불가하여 저렇게 북선반 옆에 임시로 쌓아둘 수밖에 없었고. 새 침대가 들어온 지금도 여전히 쌓여만 있다. 저 책들을 다 어찌할꼬. 남편은 저렇게 쌓아둔 책들을 보고 옆에서 이야 고시생이라며 놀림-.-


이날 책만이 아니라 가구를 대대적으로 여기저기 이동하게 되면서 대청소를 엄청나게 했고, 만보기 어플은 '집에서만 5,000보'를 넘겼다고 알림을 보내왔다. (평소에는 주말에 몇십 보를 못 넘기는 사람)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그 다음주에 출근해 있는데 설치기사님이 보내온 사진.

저 헤드 위쪽과 앙증맞은 스탠드에 깔리는 조명이 마음에 들어서 그만.. 심지어 저 조명은 20단계까지 밝기 조절이 되고, 핸드폰 어플과 연동하여 핸드폰에서도 켜고 끌 수 있..다고 하는데 어쩐 일인지 내 핸드폰과는 연동이 안 되고 있지만. 어쨌거나 이런 신기술에 열광하는 새럼..


그리고 드디어, 우리는 생전 처음 '킹사이즈' 침대를 써보게 되었다. 호텔에 놀러갈 때나 써볼 수 있던 킹사이즈 침대. 예전에 퀸 옆에 슈퍼싱글을 붙여서 사용해본 적은 있었는데, 오롯이 킹사이즈는 써 본 적이 없었다. 넓고 높고 큰 침대를 사용해보는 것이 로망 중의 하나였는데, 이렇게 갑자기, 순식간에,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이루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는. 그건 아마도, 그동안의 긴 기다림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재빠른 결정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쇼핑할 때만큼은 온갖 루트로 발현되는 합리화의 기능)




집에 와서 매트리스 위에도 누워보고, 원래 사용하던 침구를 얹어보았다.


침구를 놓고, 북선반을 옆에 들이니 그럭저럭 운치가 있다 :) 은은하게 불을 밝히고 있으니 잠을 자기도, 이 불빛을 두고 출근하는 것도 아쉬워진다. (덕분에 침대에서 좀더 뒹굴다가 출발 시간이 조금 늦춰지기도 했다는)



이곳에서 나는 미래를 꿈꾸고, 아이는 곁에서 달콤한 오늘의 꿈을 꾼다. 침대 하나가 뭐 그리 별거일까 싶지만, 내게는 오래 꿈꿔온 공간이고, 매일 어쩌면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이기도.


안타깝게도 남편은 아직 침대를 몬 써봤다ㅠ.ㅠ 아이들이 점령하는 바람에.. 잠자리 독립을 아직도 못 시켰는데 언제쯤 할 수 있으려나. 아이 방에 있는 아이 침대에서 아빠가 자고 있으니 참 우리 가족에게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아이들아, 부디 아빠에게도 편안한 잠자리를 내어주렴.


침대를 바꾸게 된 사연보다, 원래 사용하던 침대에서의 추억을 더 자세히 써보려고 사진을 잔뜩 소트해두었는데, 그건 다음 번 이야기로 넘겨야겠다. 어쩐지 쇼핑 스토리에 버닝해버렸어..



그랬다는, 오늘의 이야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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