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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Apr 21. 2022

햇살 쏟아지던 날

잊지 못할 산책


오랜만에 동네친구 B 산책길에 나섰다. 작년에 회사에서 팀장으로 승진하면서 눈코뜰새 없이  그대로  나올  같은 일정을 수하면서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B. 팀장이 되면서  달에 휴가를 하루밖에   없게 되었다는데,  황금같은 휴가를 영광스럽게도(!) 나와 함께 보내주었다.


나도 최근 진행 중이었던 중요한 일 하나를 마무리하고 나선 산책길이었다. 환한 햇살, 산들거리는 바람, 눈앞에 펼쳐진 초록, 그리고 좋은 사람과의 데이트로 얼마나 행복감이 마구 밀려들던지. 이 날의 기분은 아마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결론적으로 이 날 무려 10,000보가 넘게 걸었다. 출퇴근할 때 나는 좀처럼 걷지 않았다. 아니, 걸을 수가 없었다.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하고 아이들 돌보려면 최대한 체력을 비축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기초체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운동할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니(사실 더욱 걸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웬만한 길은 다 자차로 다녔다. 그리고 운전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고.


그런데 육아휴직 기간에 접어들면서 걷기의 즐거움을 새로 발견하고 있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첫 산책길에 나서던 날에도 얼마나 행복하던지. 그 날도 아마 만 보쯤 걸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온동네를 쏘다니며 요기조기 골목골목을 걸어다니고 있다. 그야말로 걷기 예찬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 원래도 좋아했던 우리 동네가 더더 좋아지더라.


아무튼, 그날의 산책은 B와 함께라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우리는 오래 걷고, 너무 맛있어서 황홀한 음식을 먹었다. (사실 흔하고 캐주얼한 메뉴인데, 그 시간, 햇살 가득한 테라스에서 바삭거리게 한입 베어물던 그 순간의 행복이란!)


그리고 우리는 오래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네에서 10여 년을 보며 매일 만나도 매일 할 얘기가 많았는데, 그래도 나눌 이야기는 무궁무진했다. (사실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은 교회 GBS 줌 모임으로 매주 만나고는 있다. 그치만 이 날 만나면서 새삼 느낀 건, 사람은 역시 직접 만나야 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만남이라는 것)


아마 우리 둘 모두에게 오래 기억될 순간일 것 같았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어여쁜 배경으로 사진도 찍어주고, 요새는 도통 안 찍게 되는 셀카도 둘이둘이 같이 찍고. 아름다운 책방에 들러 책도 사보고. 고즈넉한 공간에 넋을 뺏기고 걸었다.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 되어가고,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하고, 그래서 다시 발길을 집으로 돌려야 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둘이서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무슨 얘기 하다 나왔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드라마 <미생>에 푹 빠져 보던 시절에 대하여. 그리고 그 드라마에서 이제 우리가 멀리 와버린 시절에 대해서도. 임시완도 변하고 우리도 변했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달라지고, 장그래처럼 어울리지 않는 큰 옷을 입은 듯 사회 속에서 어색했던 우리가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 (아, 드라마 <런 온> 속 기선겸 선수에 대해서도 써봐야 하는데!)


우리가 앞으로 언제 어디에서 어떤 모양으로 살아가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세 살 적 만난 아가들이 이제 초등학생이 된 것처럼, 이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고 혹 결혼하는 모습을 목도하게 되는 순간을 지날 때에도, 그렇게 과거를 회상하며 호호할머니가 되어 있을 때에도, 혹은 저 나라에서 우리가 영원히 함께하게 될 때까지. 언제까지나 함께일 것을 안다.


그래서 내겐 너무 소중하고, 귀하게 아껴갈 인연.


내 사진첩에는 <동네친구>라는 폴더가 있다. B, 그리고 B를 통해 만난 E. 언젠가 E가 했던 기도를 잊을 수 없다.


하나님,
이렇게 멋진 친구들을 주셔서
감사해요.


이 친구들에 대해서는 각각 시리즈로 써봐야지 하는데 어쩐지 너무 소중해서 엄두를 못 내고 있는 것 같다. 각잡고 쓰기 어려울 것도 같으니 조만간 E와 있었던 소소한 일들도 써봐야지. :)


사랑해요, 나의 멋진 동네친구들!

함께 걷던 산책길


우리가 들렀던 <서점 리스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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