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기쁨에 대하여

쓰는 순간의 즐거움을 잃지 않기를

모처럼 아침에 앉아 글을 써본다.

어제 오랜만에 내가 오랫동안 드문드문 쓰고 있던 블로그에 들렀다. 일 년 넘게 들르지 않아 먼지가 함뿍 쌓인 곳. 살살 먼지를 털고 오랜만에 글을 썼다. 고요한 공간에 타닥타닥 마음을 남기는 순간이 좋더라. 아무 부담도 없이, 아무 부채의식도 없이.

브런치에 글을 써야지, 하면서도 어쩐지 자꾸 텀이 길어지는 건 그런 부담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좀더 완결된 글을 써야 할 것 같다는 생각. 어떤 일정한 기획 속에 '각잡힌'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 머릿속에 '써야 할 것 같은' 글은 계속 맴도는데, 시작을 못하고 계속 부유하고 있는 느낌 같은 것. 그러다보니 '쓰고 싶다'는 기대감보다 '써야 하는데'라는 부담감만 가진 채 자꾸 즐거운 글쓰기와 멀어졌던 것인지도.

최근 거의 '토나올 것 같은' 마감을 하나 끝내고, 글쓰기에 조금 지쳤는지도 모른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 '각 잡은' 글쓰기에. 단어와 문장을 고르고, 그걸 다듬고 또 다듬어 읽기 좋게 만드는 그 모든 과정들. '나의 말'도 중요하지만 그걸 읽을 분들을 위해 고르고 또 고른 '타인'을 위한 말. 그게 어떻다는 게 아니라, 일종의 <훈련>을 하고 나온 느낌이라 좀 쉬고 싶다는 마음이기도 하고, 힘을 빼고 그저 '나를 위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기도 한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블로그에 쓰는 순간이 편안하고 즐거웠나보다.

즐거우면서 동시에 타인에게도 기쁨을 주는 글, 을 쓸 수 있을까. 그런 건 어떻게 하는 걸까. 지금처럼 이렇게 쓰면 되는 걸까? 고민이 많아지지만, 그렇다고 고민이 딱히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결국 어떤 글이든 자꾸 써보는 것, 그 과정 속에서 답에 '가까운' 어떤 것을 가까스로 깨닫게 되지 않을까.

그러고보면 글쓰기란 참 알 수 없는 작업 같다. 쓰기 전에 정확히 어떤 모양이 나올지 작가 자신도 알 수 없고, 또 그것이 어떻게 공명하게 될지도 정확히 짐작할 수는 없는 어떤 것. 이렇게 정직하게 한 글자 한 글자 지어나가고, 그 과정에서 모양이 만들어지고, 결국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는 어떤 오묘한 과정들. 참 이 또한 하나의 '신비'가 아닌가 싶다.

물론 큰 틀에서의 일정한 '기획'이 있어야 글이 어떤 흐름과 리듬을 가지고, 읽는 이에게도 편안하게 들려질 수 있겠지. 거기에는 결국 방향 없는 마음이 아니라 냉철한 이성이 직조하는 커다란 틀도 필요하리라. 아, 그러니 한 권의 그럴듯한 책을 짓는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래서 혼자서 쓰기 어렵고(물론 수많은 독립출판물이 있지만, 편집자와의 협업 아래 지어지는 책을 전제로 할 때),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을 거쳐 탄생하는 것이 한 권의 책이리라. 하긴, 독립출판물이라도 책을 찍어주는 인쇄소와 판매해주는 책방이 없다면 온전한 모양과 유통의 과정을 기대할 수 없으리라. 결국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극히 드문 것 같다.

이런 순간의 상념들이라도 자꾸 써봐야겠다. 그곳이 블로그이든, 브런치든. 너무 큰 부담으로 시작도 못하는 글 말고, 쓰면서 기쁨과 때로 마음의 먹먹함마저도 녹여내는, 그런 매일의 순간들에 대하여.

브런치를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을 떠올려본다. '무언가 신이 나서' 자꾸만 쓰고 싶던 그 마음. 새벽마다 노트북을 열어 무언가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던 그 마음. 이렇게 커피 한 잔 옆에 두고 조용한 방에서 써내려가는 기쁨. 그 순간을 더 많이, 차곡차곡 모아가고 싶다.

(*사진은 내가 요새 손글씨로 쓰는 아카이빙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