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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잡러가 되고 싶다면 이들처럼

어느 망각러의 분투랄까요

by 별빛



오늘은 이 책 『n잡 시대에 부쳐』를 읽어보고 있어요. 2학기에 학생들과 독서 시간에 함께 읽어보려고 산 책들 중 하나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 학생들이 살아갈 세계에서는 n잡러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겠지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변해가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에 이 흐름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미리 이야기를 들어두는 것도 괜찮은 일이겠지요. 물론 우리 학생들이 세상에 본격적으로 나가기 시작할 때는 또 많은 것이 변해있겠지만 말입니다.




교직은 그 특성상 영리활동은 겸하여 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제한적으로 겸임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그 활동에서 수입이 발생할 경우 반드시 기관장의 허가를 받도록 되어 있지요. 최근에는 유튜브를 운영하는 교사들도 많아졌는데, 이 경우에도 광고가 붙거나 구독자 수가 일정 수 이상일 때 보고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브런치는 보고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인가 싶고요)


하여 이 일 외에 다른 일을 겸해본 적은 안타깝게도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100세 시대에 정년 63세를 꽉 채운다고 하더라도 40여 년이나 더 남은 시간을 도대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요새는 50대에 명예퇴직하는 선생님도 많아지고 있고요(갈수록 교사가 감당해야 하는 감정노동의 강도가 세어져서 '이렇게는 못살겠다' 하고 교직을 떠나는 분들도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 서글픈 일이기는 합니다). 은퇴 후의 삶에 대한 고민은 어느 특정 직종에 국한된 일은 아닐 거예요.


책읽기와 글쓰기가 어쩌면 그런 고민의 몸부림 중 하나인지 모르겠습니다. 직업 이전의 나, 혹은 직업과 통합된 나, 나아가 직업 너머의 나를 단련하고 준비시키는 과정이랄까요. 물론 읽기와 쓰기는 그 자체로 순수한 배움의 기쁨과 존재의 발현으로서의 의미가 있기도 하지만요. 이런 과정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줄지 알 수 없지만, 이 작은 걸음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읽어보고 있는 것이 이 책 『n잡 시대에 부쳐』이기도 하고요. 이 책은 bottlepress에서 펴낸 워커스 라운지Workers' Lounge 시리즈 중 한 권이기도 합니다. 이 중 맨 처음으로 읽은 책은 『좋은 동료와의 대화는 동기 부여 뿜뿜』이었어요. 첫 책을 재미나게 읽은 터라 다른 책들도 궁금해졌지요. 이 외에도 『판을 짜는 사람들의 단단한 기획 노트』도 함께 읽어보고 있습니다.


워커스 라운지 시리즈 세 권


요즘 20-30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지, 트렌드는 어떤지 궁금하다면 읽어볼 만한, 혹은 단순히 읽기의 순수한 즐거움(나만 회사 때려치고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 아니구나, 라든가)도 더불어 얻을 수 있는 시리즈입니다. 이런 감각을 접해볼 수 있는 세 권의 책을 더 소개할게요.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 『기록의 쓸모』, 『기록하기로 했습니다』입니다(그 중 마지막 책은 아무래도 차에 두고 왔나봐요. 집을 샅샅이 뒤져봐도 안 보이네요. 나중에 찾으면 추가해볼까봐요). 이 책들이 제게는 브런치를 써봐야겠다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물론 브런치는 초창기부터 익히 알아왔고 몇 년 전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해보기도 했지만(처음엔 보기 좋게 탈락했다는) 왠지 나를 탈락시킨 곳(?)이어서인지 흥 난 그렇다면 더 대중적인 네*버 블로그를 쓰겠어 하고 어쩐지 등 돌리고 좀처럼 찾아와보질 않았더랬죠. 그러다 이 책들을 읽으면서 아, 그래 브런치가 있었지 다시 시도해보자 이번엔 왠지 될 것 같아 하면서 작가 신청을 순식간에 해버렸습니다. (물론 그러고도 아 이번에도 기대했다가 또 떨어지면 어떡하지 그럼 나 되게 의기소침해질 것 같아 했는데 어머나 다행히 이번엔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더랬죠! - 첫 글 참조)


책을 소개한다면서 제 얘기만 해버렸네요. 시작은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였습니다. 이 책은 몇 달 전 위에서 얘기한 『좋은 동료와의 대화는 동기 부여 뿜뿜』과 같이 읽기 시작했는데요. 다양한 분야에서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스토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작가분이 브런치에서 근무하는 직원분이기도 했지요.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만 해도 음, 그 브런치구나 했는데 좀 더 본격적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이 책에 소개된 『기록의 쓸모』를 읽으면서부터였어요. 기록을 하면서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어떤 것들을 기록하면서 살고 있는지, 기록하는 사람으로서의 직장인 자아는 어때야 하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지요. 이 책을 읽다가 문득 아, 브런치를 해야겠다 하는 생각에 다다랐어요. 그리고 2학기에 학생들과 글쓰기 수업을 계획하면서 읽고 있던 『기록하기로 했습니다』이라는 책도 글쓰기의 동기를 부여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왜 기록해야 하는지, 어떤 것을 기록해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기록하면 좋은지를 다정하고 세세하게 들려주는 작은 책이에요. 학생들과 함께 할 글쓰기 꼭지를 마련하는 데에도 친절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 같고요.


어제 있었던 일, 아니 바로 오늘 먹었던 반찬의 종류조차 가물가물해지는 몹쓸 기억력의 소유자가 바로 저이기도 합니다. 남편이 남자친구였던 시절 저에게 많이 했던 말이 '네('내' 아님 주의) 머릿속의 지우개'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제 머릿속엔 지우개가 있나봐요.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심각한 기억력 때문에 당황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물론 그런 저에게 남편은 '그러니까 사는 게 맨날 새로워서 얼마나 좋으냐'며 놀리는 건지 격려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말을 해주기도 하지만요. 네비게이션과 GPS가 없으면 절대 길을 찾지 못하는 심각한 길치이기도 하고(어릴 땐 아파트 단지에서 우리 동을 못 찾아 30분씩 헤매기도 하고-작은 단지인데도) 대학 때 캠퍼스 안에서 길을 잃거나 단과대 건물 안에서 방향감각을 잃고 헤매기도 했으니 뭐 말 다했지요. 1학기에 가르쳤던 학생 이름을 2학기가 되면 까먹기도 하고,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 이름을 까맣게 잊기도 합니다. 더 심각했던 건, 대학 때였는데, 같이 어울려 놀았던 선배의 존재 자체를 완전히 망각해버리는 일도 있었다는 겁니다(친구가 '그 때 그 형이랑 같이 놀았잖아' 하는데 도대체 그 기억도 얼굴도 떠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가 얼마나 황당해 하던지). 이쯤 되면 거의 뇌에 문제가 있나 싶어지는군요.


그런 저인지라, 기록에 더 강박을 갖는지도 모르겠네요(이건 뭐 김영하 소설 『살인자의 기록법』도 아니고). 잊지 않기 위해서. 기억하기 위해서. 기억을 넘어 추억하기 위해서. 혹은, 기록을 통해 삶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혹은 기록 그 자체를 위해서. 기록하는 순간의 나를 위해서. 기록으로 위안받기 위해. 기록으로 위로하기 위해. 기록이 말하게 하기 위해.


아무렴 어떠한가요. 기록하는 이 순간이 행복하고, 이렇듯 키보드 두드리는 순간이 그러니까 음, 우리는 그런 순간을 꽤 그럴듯하게 느끼지 않습니까(갑자기 '나'에서 '우리'를 끌어들여 전환하기). 맥북을 켜고 자판을 두드리는 순간, 이렇듯 아이패드+매직키보드의 조합으로 아름다운 것들을 매만지는 그런 순간 자체. 그리고 '쓰는 나'가 퍽 괜찮아보이는 그런 흐뭇함까지도. (여기서 그만)


n잡에서 시작해서 기록과 자긍심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아가게 되는군요. 결국 n잡러가 되려는 것도 다들 '더 나은 나', 혹은 '나의 자질이 충분히 구현된 인생'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바람에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요. 더불어 그것이 나의 만족에서 그치지 않게 되기를. 나와 우리 가정, 우리가 몸담은 사회, 더 나아가 세상과 이 행성을 사랑하는 일에까지 뻗어갈 수 있다면(타일러의 『두 번째 지구는 없다』를 읽고 있어 그런지 이 주제가 심상하게 느껴지지를 않네요). 그러면 우리의 작은 삶도, 조금은 반짝거리지 않을까요.




*헉, 글을 서랍 속에 두었다가 발행하려고 다시 읽어보니 "저런"(너는 나의 봄 주영도 버전으로), 『살인자의 기록법』이 아니라 『살인자의 기억법』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런 형편이라 반드시 기록이 필요한 사람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아이폰 웃으면서 눈물나는 이모티콘 넣고 싶네요. 브런치는 이모티콘 쬐만한 것도 넣을 수 있게 해달라 카카오 버전이라도 괜찮으니) 살인자는 아니지만 기억을 살해하는 자로서 응당 기록하면서 삶을 반추할지니... (왜 이러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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