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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못 된 사람들의 슬픔과 기쁨

<인간실격>에 흐르는 애잔함과 따뜻함에 대하여

by 별빛


아부지.
나는 아무것도 못 됐어요.
세상에 태어나서,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어요.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특히 두 번째 파트의 글에는 더 많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드라마 <인간실격>을 보고 있습니다.


보다가 문득문득 애잔해져서,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살아가면서, 생의 어느 자리에서 '실격된 인간'이라는 감정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아직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그는 아주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거나

아니면 그런 자리를 경험하기에는 아직 너무 젊거나 어린 사람일 겁니다.


고아가 된 기분으로

내가 선 이 자리가 대체 어디인지,

나는 왜 여기에 있어야만 하는지

어째서 나는 이 찬 데 던져져서

나동그라져 있는지

어쩌다 익숙하던 세상이

이토록 낯설게 느껴지는 것인지.

생에 한 번쯤은,

거쳐가게 되는 관문 같은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그 관문을 온몸으로 통과해낸 사람은

어쩌면 결국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생의 지진 같은 시기를 경험하면서

예상치 못한 따뜻함을

여전히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런 사람에게는

한 줌의 온기

온건한 마음

길가의 나무 한 그루도

예사롭지 않을 겁니다.


'특별히 착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누군가 울고 있으면 손수건을 건네고

악다구니를 쓰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걸 보고는 이내 따라 올라가

은근한 너스레로 오지랖도 부려보는,

그러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아니, '평범'도 사치스러운

버거운 젊음과 애잔한 늙음에 대한 이야기.


'뭐라도 된' 사람들로 시끄러운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

주름살이 정직하게 묻어나는 이 배우들의 얼굴처럼

보통 사람들의,

감추어져 있지만 실은 저마다 품고 살아가는

그런 이면의 모습에 대하여.




그러나 기어코

이 외로운 사람들은

너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 게 아니라고,

너는 내게 자랑이고 기쁨이라고


너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잔인한 세상 속에서

가장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실 너는 빛나는 사람이고

너와 내가 만나면 그게 친구인 거고

친구가 되었으니 우리는 마음을 나눠가졌고

거기에서 살아가는 의미가 새로이 태어난다는 것을,

말입니다.




산다는 건 종종

슬퍼지는 일이기도 하겠지요.

인간이니까요.

우리는 이토록 불완전하고,

불완전한 인간이 만들어온 세계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혹은 그러하기에 더욱

우리는 힘써 아름다움을 가꾸고

애써 서로의 삶을 일으켜세웁니다.


너는 내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그 무엇,

오직 한 사람이라고.


이 광막한 우주에

너를 대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그러니 우리 여기 나란히 앉자고.

아프면 울고,

그러다 괜찮으면 함께 즐거웁자고.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_로마서 12:15

‭‭






며칠 전에 써둔 글을 오늘 발행해 봅니다. 어쩐지 마음에 묵혀두고 싶기도 했고요. 드라마를 보면서 무언가 무거워지면서도 동시에 따뜻한 이 느낌은 무얼까, 했어요.


저마다 삶의 무게로 버거운데, 그 와중에 따뜻한 건, 아마도 결국엔 곁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 때문이었던 거겠지요. 과거의 어떠한 사건으로 직장도 뱃속의 아기도 잃은 부정(전도연 분)의 가슴에 깊은 상처의 골이 생기고 마음 속에는 악감정이 독버섯처럼 자랐지만, 그의 곁에는 언제고 따뜻한 시선을 건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폐지를 주우러 다니면서도 늘 단단한 마음으로 따뜻한 말씀을 건네시는 아버지. 그저 딸을 보기만 해도 흐뭇하고 가슴 언저리가 못내 아프기도 한, 바로 그 아버지. 삶을 함부로 비관하지 않고, 외로움과 쓸쓸함을 견디면서도 딸에게는 늘 낙관을 이야기하는 아버지. 마치 사람들이 그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순간을 묵묵히 견뎌오신 아버지.


(아마도) 대인공포와 우울증(극 중에 이러한 고민으로 상담을 받아보라는 버스 정류장 광고를 전도연이 핸드폰으로 찍는 장면이 나옵니다)으로 삶의 무게를 겨우 견디는 딸이 언제고 기댈 곳이 되어주는, 그런 아버지. 서울에서 반은 은행 거여도 오피스텔 방 한 칸 '내집장만'을 해낸 딸이 그저 자랑스러운 아버지. 그런 딸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이에게는 그가 사돈이어도 한껏 목소리를 높여주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 곁에서는 부정도 순해지고, 따뜻하고, 마음놓고 어린애가 됩니다. 혼자 계신 아버지에게 마음이 쓰여 자주 찾아가 음식도 이야기도 나누는 딸 부정. 그는 자기에게 함부로 칼을 휘두른 사람과 어떤 식으로든 싸워보려고 부딪쳐보다 상처로 신음하며 눈물을 삼켜야 하는 연약한 사람이지만 아직은 싸움을 멈출 생각이 없는 단단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소위 '호빠'에서의 삶을 과거로 만들고 '역할 대행'이라는 일을 업을 삼아, 부정의 아버지와 같은 오피스텔에 살면서 그래도 자존심과 특유의 스타일로 눅눅한 삶을 버티어나가는 강재(류준열 분)의 세계. 이 드라마의 좋은 점 중 하나는, 강재와 그의 친구 딱이(유수빈 분)가 만나서 그 어떤 욕설도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런 분위기의 영화라면 으레 씬마다 네다섯 마디는 나올 법한 그 흔한 욕설 하나 나오지 않습니다(물론 극의 전개에서 꼭 필요한 장면이라면 나올 수도 있겠지요).


이들은 사망 소식에도 가족조차 찾지 않는 정우를 위해 없는 돈을 들여 장례도 대신 치러줍니다. 그가 강재의 돈 4천을 갚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해도 말입니다. 수의가 너무 비싸 정우가 입던 파자마를 입혀 떠나보내기도 하지요. (장례조차 하나의 사업이 된 시대이니 참 씁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결국엔 정우의 누나를 찾아가 장례비용을 받아내야 하는 형편이기도 한 이들의 버거운 젊음. 강재, 딱이, 민정(손나은 분) 이들의 아지트는 딱이가 '알바'를 하는 pc방이기도 합니다.


강재는 이전에 몸담았던 세계로부터 끊임없이 러브콜(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이름입니다만)을 받지만, 그 세계를 끊어내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착한 친구 딱이가 있지요. 가끔은 엉뚱하지만 은근히 눈치가 빠르고 섬세한 마음결을 가진 딱이라는 친구가 있어, 강재도 자기 삶의 바운더리를 크게 엇나가지 않고 지켜가는 듯 합니다. 참으로 귀엽고 경쾌했던 장면 중 하나는, 이 두 친구가 이태원에서 테이크아웃 피자를 먹으며 노란 스포츠카 앞에서 가오잡고 사진을 찍는 장면입니다. (주인이 나타나자 후닥닥 달아나긴 하지만)


잊지 못할 귀여운 컷




부정과 강재의 만남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쓰여집니다. 이 글을 썼을 때는 약 2~3회 즈음을 보고있는 시점이었는데, 지금은 이야기 진도가 더 많이 나간 것 같네요.


이 작품은 <8월의 크리스마스>, <호우시절> 그리고 가장 최근 작품으로는 <천문>을 연출한 허진호 감독과 역시 <천문>의 조감독이자 <내 아내의 모든 것>, <고지전>의 조연출을 맡은 박홍수 감독이 공동 연출한 드라마입니다. 과연 컷 하나하나가 마음을 일렁거리게 하던 이유가 있었나 봅니다.


살아간다는 건 종종 막막해지는 일이지만, 그래서 겁이 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끝까지 지켜내는 온기와 어떤 의리가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걸 별거 아닌 가치로 손쉽게 내팽개지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와서, 이런 마음, 이런 사람이 더 애틋하고 소중해지는 것 아닐까요.


누군가에게, 그런 온기와 의리로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런 별이 되어주어서, 혼자서는 너무 미약하지만 여럿이서 반짝반짝 빛무리를 내는 별자리처럼, 그렇게 서로를 빛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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