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l me a million times who I am
며칠 글을 못 썼기 때문일까, 브런치에 글을 쓰고도 떠나지를 못하고 한참 서성이고 있다. 무언가 남은 이야기를 더 쓰고픈 그런 마음이랄까.
여름방학이 어느덧 모두 지나가고 이제 8월도 하순을 향해 달려간다. 말 그대로, 달려간다, 쏜살같이 달려나간다, 시간이라는 것이. 어린시절에는 '하루'라는 시간조차 길어서 너무 길다고 생각했었는데. 자라가면서 한 걸음 두 걸음 보폭이 빨라지더니 이제는 마치 뜀박질하듯 하루가 간다. 더 나이가 들면 남은 시간을 헤아려보며 하루가 금쪽 같이 느껴지게 되지 않을지.
그래서 자꾸 더 읽으려고 하고, 더 쓰려 하는지 모르겠다.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며, 남은 시간을 더듬어보며 그렇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를,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골똘히 생각해보게 되는 것. 지나간 시간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음을 알기에, 가족들과 더 열심히(?) 여행도 다니며 추억도 만들고, 육아일기도 써보고, 이렇게 브런치에 글도 남겨보는 것이겠지.
삶을 붙잡으려는 노력이 때로 부질없이 느껴질지라도,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이 심은 것이 허투루 버려지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 요즘 그래서 이 성경구절이 자꾸 생각나는가보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_갈라디아서 6장 7절
라는 엄중한 말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 정말 무서운 말씀 아닌가. 거꾸로 이야기하면 심지 않으면 거둘 수도 없다는 말이고, 내가 심은 말과 글과 행동이 나에게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심겨져서 싹을 틔우고 자라나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렇게 눈에 보이게 문장으로 쓰고 보니 오소소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그동안 내가 한 말과 행동을 돌아보면 부끄러운 것이 너무 많아서.
겉으로 뱉지 않아도 속으로 삼킨 말들은 또 어떠한가. 남을 향하지 않아도 나를 향해 겨누었던 잔인한 말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변한 것 중 하나가, 습관인 줄도 모르고 가졌던 부정적인 생각이나 내면의 말들을 멈추거나, 적어도 멈추려고 애쓰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라는 사람은 그런 말과 이미지를 주입받아서는 안되는 사람이라는 것. 나는 그분의 딸이고, 비싼 값을 치러서 구해낸 사람이고, 그러니 내가 나를 함부로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아이들도 가끔 그런 표현을 할 때 문득 '아차' 하곤 한다. 딸은 좀처럼 그런 말을 잘 안 하는데(아빠를 닮아 그런지 자화자찬을 잘함), 아들은 뭘 하다가 잘 안되거나 못하면 '어휴 난 멍청한가봐' 할 때가 있다. (기분이 좋을 때와 나쁠 때 약간 극과 극의 표현을 쓰기는 함) 대체 가족들 누구도 그런 언어를 쓰지 않는데, 아무래도 만화의 영향이기는 한 것 같지만(요즘 만화에 걸핏하면 "이 멍청아!" "끝장내주겠어!" "내가 박살내주지" 이런 표현이 나와서 아들이 자꾸 따라해 고민스럽다는. 어린이 만화 대본 쓰시는 분들은 폭력적이고 너무 거친 언어는 재고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때면 아이에게 말해준다.
-태이는 누구 아들이지?
-엄마 아들
-엄마는 우리 아들 너무너무 사랑하지?
-응
-그런데 우리 아들에게 그런 말을 하면 엄마가 너무 속상하겠지? 왜냐면 우리 아들은 너무 소중하니까. 그리고 태이는 엄마 아들이니까.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몰라도 알겠다고 대답은 하는데, 그래도 꾸준히 자꾸자꾸 말해주려고 한다.
좋아하는 ccm 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Speak over me
Tell me again
That I'm someone you love
Let it sink in
Tell me a million times
Who I am in heaven's eyes
저에게 말씀하세요
다시 말해주세요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수없이 말해주세요
제가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지
So I'm letting go
Of all other names That I gave myself
When I heard you say
Come and find yourself
in heaven's eyes
그래서 저는 내려놓습니다
제 스스로 주었던 모든 이름들을
내가 어떤 존재인지
말해주시는 당신이 계시니까요
_<Heaven's Eyes> by Jillian Edwards
(한국어 번역 Team Luke Creative)
사람의 기억력은 때로 형편없어서, 듣고 또 들어도 자기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잊어버린다. 세상이 나에게 하는 말들, 나도 모르게 내가 나에게 던지는 말들, 누군가가 생각 없이 함부로 던진 말 같은 것으로 마음은 너무 쉽게 얼룩진다.
그런 존재이기에, 우리에게는 자꾸 우리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언어가 필요하다. 몇번이고, 수십 번이고, 아니 million times라도 말해주고 또 말해주는 그런 마음이.
위 번역에는 직역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후반부에 나와 있는 말이 새삼 다시 들여다보니 새롭다.
you say,
"Come and find yourself in heaven's eyes"
와서 진정으로 네가 내게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너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발견하고 알아나가렴. 내 품에서 쉬면서 우리 함께 길을 걸어나가자. 몇번이고 말해주마, 너는 내게 그런 존재라는 걸.
시간에서 출발한 글이 존재에까지 나아온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이것을 함께 묶어 『존재와 시간』이라고 펴냈을까. 철학에는 문외한이고 하이데거에 대해서는 짤막한 소개글 정도밖에 읽은 것이 없지만, 얕은 지식밖에 갖지 못한 우리도 이것은 안다.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유한한 우리가, 바로 여기에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것.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인사와 언어를 자꾸만 건네주어야 한다는 것. 그렇게 보듬고 살아갈 때에야 우리는 참되고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
아이를 보듬어 느끼는 살결의 온기에서, 아이의 머리칼을 쓸어주며 나누는 정다움에서, 우리는 멀리 가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글 중에 인용한 커버곡 링크
https://youtu.be/hm0mXxLrIT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