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우리 모습들(feat.김건모)
며칠 전(그 바쁜 와중에!) 친구들을 만났다. 그러니까, 나의 20대, 대학생활을 함께 보낸 친구들. (아, 이렇게 쓰는 것만으로 벌써 아련해지고 마는 것)
이날의 멤버는 J와 K 그리고 나 세 사람.
셋이서 만나기로 한 날, 아침 출근길 햇살이 비치는 가로수길을 지나며 달뜬 마음과 더불어 어쩐지 눈물이 나더라. 이 마음을 뭐라고 해야 할까. 아련하고 애틋해져버린 것들, 우리가 함께 보낸 스무살의 진한 시간들, 바보같고 착하고 고집불통이면서도 순수했던 그날들에 대한 애잔함 같은 것이었을까.
기쁘면서도 눈에 물기가 어리는 이유를 다 알 수는 없었지만, 그런 하루의 시작이었다.
바쁜 하루가 지나 이윽고 퇴근 시간이 되었고, 나는 J가 근무하는 학교로 향했다. J는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약 8년여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몇 년 전에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원래 이태원에 있는 한 펍에 예약을 해두었는데, 어찌어찌하여 J가 근무하는 학교 근처에서 만나야 셋 다 최대한 빠른 시각에 회합할 수 있을 것 같아 우여곡절 끝에 모임 장소가 정해졌다. (이태원의 힙함을 아저씨들에게 알려주려 했건만 거부당한 것이다... 이 일을 K와 나는 이 일을 땅을 치며 후회해야 했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서)
학교에 도착해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J에게 톡을 보냈더니 연구실로 올라오란다. 이 김에 교수님 연구실이나 구경해보지 뭐, 하는 마음으로 건물을 찾아가는데 어우, 추워서 오들오들 몸이 떨렸다. 이 길을 따라 다시 식당을 찾아 내려가야 한다니 앞길이 좀 막막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친구가 알려준 방향을 향해 잰 걸음으로 걸었다.
친구가 알려준 대로 엘리베이터 층수를 누르고, 마침내 복도를 따라 연구실이 어디인가 두리번거리는데 어둑한 복도에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인다.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아도 J인가 싶어 손을 흔들어본다. 세상에, 이게 얼마만이야.
연구실로 들어가 악수를 나눴다. 여자 친구들끼리 10년만에 만난다면 첫 반응이 보통 어떨까? 어머, 웬일이야, 그동안 잘 지냈어? 야 너 하나도 안 변했다, 진짜 너 그동안 어떻게 살았어, 지금 어디 살아? 등등 질문을 쏟아내며 호들갑을 떨겠지. J는 어땠을까?
마치 어제 보고 나를 오늘 또 본 것처럼 일단 앉아서 할 일을 했다. (줌 실시간 수업을 끝내고 녹화한 영상을 인코딩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역시 어제 보고 또 본 것처럼 이런저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 허허. 근데 그게 어땠을까? 그 적당한 덤덤함과 무심함이 또 나쁘지 않더라. 하기사 너무 호들갑을 떨었어도 그건 또 J와는 썩 어울리는 그림이 아니기도 하고.
그래도 이 냥이, 아니 아기 호랑이 인형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현임 대학 말고 이전에 근무하던 모교에 교수 임직을 했을 때 신임교수 선물로 받은 거라고. 아, 너무 귀엽지 않은가. 요새는 교수님들께 임용 선물로 이런 것도 주는구나. 참 귀여운 세상이네 싶었다는.
연구실을 구경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퇴근해서 이곳으로 오고 있는 K로부터 톡이 도착했다..가 아니고 다시 톡방을 더듬어보니 만나기 전 주차장에서 나눈 대화였네.
그렇다. 대학때 동아리방이건 자취방이건 모여서 짜장면을 참 많이도 시켜먹었지. 그땐 배달되는 게 짜장면 아니면 피자였겠지. 김밥도 떡볶이도 사먹고 그랬겠지만.
새삼 <슬기로운 의사생활>도 생각이 나더라. 드라마를 보면서는 아니 저런 어엿한 의사들이 모이면 저렇게 바보처럼 논다는 게 말이 돼? 아무리 친구여도 그렇지 저렇게까지 바보같이 논다고? 근데 그렇겠더라. 그 시절 친했던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도 이런데, 같이 부대끼고 뒹굴며 심지어 같은 직장에 있으면 아, 나도 정말 저렇겠구나 싶은 것. 서로의 사정에 대해 너무 잘 알고, 각자의 개성과 사소한 장점과 결점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말 그대로 '친 한 친 구'라면.
더구나 드라마가 더 애틋했던 건, 우리도 그들과 같이 '구구즈'라는 것. 그렇습니다, 우리는 99학번인 것입니다. 밀레니엄을 앞두고 입학한 (그때는) 신인류. J와 K는 대학 동아리에서 만났고, 동아리 규모가 작지 않아 사람이 북적북적했는데, 99 동기들도 꽤 많았다. 선배들이 '99 얘네들은 정말..' 하고 혀를 내두르는 일도 많았고. (다 쓰려면 글을 새로 써야 함) 그때 우리가 쓰던 동아리방을 '룸'이라고 불렀고, 이따 룸에서 봐, 어 걔 룸에 있던데, 룸에서 오늘 모임 있대, 하는 게 일상적인 대화였다. 바로 그 룸에서 먹고 놀고 떠들고 기타 치고 까불고 웃고 울고 했던 기억들.
우리가 함께 보낸 몇 년 간의 숱한 시간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밥을 같이 먹고 얼마나 많은 말들을 나누었었나. 거기에는 농담 반, 웃음 반, 한숨 반, 눈물 반. 캠퍼스 골목마다 얼마나 많은 웃음소리도, 눈물방울도 떨구었을까.
갑자기 감상적이 되어버렸지만 포인트는 이거다.
그런 것이다. 아무 식당도 예약이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충격)(경악)(혼돈)
잠시 후 J와 함께 연구실을 나가 길에서 K를 만났고, 잠시 멈춰서서 오랜만의 해후를 나누기는커녕 우리 셋은 그때부터 식당을 찾아 헤매야만 했다. 저기요 교수님? 저희 스무 살인가요?
웬만한 식당은 사람들로 이미 바글바글했고(코시국 어디갔나), 여기는 이래서, 저기는 이래서 패스해야 했다. 길을 건너고 골목을 오가며 구두를 신은 아픈 발로 밤거리를 헤매며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 싶었다. 옛날 같으면 잔소리 한바가지 했겠지만 나는 마음이 너그러운 으른이 되었으므로 최대한 친절한 하이톤으로 말했다.
J야, 우리는 친구니까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이러면 안돼애~??!! ^^^^^^^^^
그러자 옆에서 K가 말했다.
어, 나는 친구여도 안 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겨우겨우 찾아들어간 모 펍.
넓디 넓은 홀에 딱 한 팀 있더라. 아, 분위기나 맛이 별로이려나, 그치만 이게 어디야 하는 마음으로 지친 몸을 좌석에 (아주머니가 지하철역 의자에 몸을 던져 인터셉트 하듯이) 내던지듯 꾸겨넣었다.
메뉴를 주문했는데 아뿔싸, 맥주는 왜 이리 시원하고 맛있는거지? 아니 음식은 또 생각보다 맛있네?
주문한 음식을 먹으며 한참 이야기 나누는데 식사를 끝낸 사람들이 여러 팀 들어오더라. 아, 우리가 여기에 너무 일찍 갔던 것. 알고보니 이 동네 맛집이었나벼?
비로소 몸을 녹이며 이곳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K가 둘에게 물었다.
잘 살았니?
오랜 친구가 던지는 다정한 질문. 그 물음 앞에서, 글을 쓰면서도 다시 한번 멈춰 서게 된다.
잘 살았니? 어떻게 지내왔니? 내가 알던 너는, 우리가 알던 우리는, 잘 살았니? 사는 게 만만치는 않지? 이 거친 세상에서 자리를 잡고, 살기 위한 벌이를 하고, 아이를 낳고, 부모님을 모시고, 한 사람의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 쉽지 않은 길을, 잘 살아왔니? 살아오는 그 길 위에는, 아마 많은 멈춤이 있었겠지? 쉽지 않은 흔들림이 있었겠지? 남들은 모르는 고단함이 있겠지? 눈물나는 사연들도 있겠지?
우리는 누구도 이렇게는 묻지 않았다. 오랜만의 만남에 각자가 품은 사연들을 모두 쏟아낼 수는 없었으므로. 그저 각자의 근황을 나누며 격려의 말을 건넸다.
그렇다면 잘 살고 있는거야.
하며 잔을 부딪쳤다. 다 말하지 않으면 어떤가. 구구절절 토해내지 않으면 어떤가. 어차피 어른이라는 건, 많은 말을 삼키며 살아가는 존재이기도 하니까. 그러다 때로 어려운 곡절을 만나면, 마음과 마음이 만나지면, 또 어떤 토로와 위로가 있을 수도 있는 거고.
다 말하지 않아도 말과 말 사이에 묻어나는 각자의 애환 같은 것이 느껴진다. 어찌 쉬웠으랴. 지금껏 걸어온 이 길이 어찌 평탄하기만 했으랴. 남들 보기에야 다들 버젓하게 걷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걸어오는 길 사이사이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있었을까.
K가 말했다.
"아내가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어디로 가고 싶느냐고 묻더라고. 98년 12월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어. 그때로 돌아가면 난 법대 말고 Y대 의대를 갈 거야!"
아니 이런 ㅋㅋㅋㅋㅋㅋㅋ
그러자 J가 말했다.
"난 돌아가면 공부 안 하고 싶어"
아니 교수님? 너 공부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공부 좋아해서 대학원도 가고 교수도 된 줄 알았지. 하고 물었더니 답한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대학원도 가고 유학도 가고 하게 되었다고(박사까지 하신 분이 하실 말씀인가 싶긴 하지만ㅎㅎ).
하긴 그렇다. 나도 어찌어찌 하다보니 임용고사를 보고 교사가 되어있고 그랬다. 처음부터 교사를 꿈꿨던 것도 아니었고, 교사가 아닌 다른 일을 하려고 몸부림친 적도 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다음에 한번 써보려고 한다) 왜 나는 그랬으면서 다른 사람은 자기 일을 철썩같이 좋아할 거라 생각했을까?
너무 의외인 친구들의 말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내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래, 정말 세상에 쉬운 일 하나도 없지. 맞아, 인간의 마음이란 그렇구나 싶었던 것. 그럼에도, 그런 마음 부여잡고 다들 그렇게 든든하게 버티면서 살아주고 있구나.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아빠가 되어, 한 사람의 구성원이 되어서.
옛날 같으면 밤을 지나며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겠지만(코시국 이전이 정말 옛날 같이 느껴진다), 통금(!)이 생긴 시국이기도 하고, 각자 가정이 있으니 10시가 되기 전에 자리를 정리한다. 아쉬움이 있어야 또 만난다는 친구들의 말. 그래, 다음에 또 보면 되지.
K와는 길에서 작별의 인사,랄 것도 없는 범상한 인사를 나눴다. 잘가, 또보자. 안녕!
J와는 연구실에 잠깐 들렀다 주차장으로 향했다. 대리기사님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약간의 아쉬움과 애틋한 마음들을 흘려보내며 우리가 보낸 시간을 반추해보았다.
우리가 '스무살'(*'스무 살'이 맞지만 늘 이 시절만큼은 '스무살'이라고 쓰고 싶다. 우리의 20대 그 애틋한 모든 시절을 한데 모아서.)에 걸었던 그 모든 거리들. 스무살에 보낸 시간들. 주름살이라곤 하나도 없었던, 마냥 해맑았던 스무살의 너. 우리의 기억 속에는 고스란히 살아있는, 스무살의 너희들.
그 시간이,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하는 말을 내가 건넸었다. 그래, 정말이지, 대관절 그 시간은 다 어디로 간 거지? 우리의 기억 속에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있는데. 그때 네가 던진 말, 그때 너의 표정, 그때 너의 웃음소리가 기억 속에 이렇게도 쟁쟁한데.
어디론가 가버렸지. 시간이란 건 돌이킬 수 없으니까. 그렇지만 여기 또 이렇게 있잖아. 우리 안에 있잖아. 우리의 기억 속에. 서로의 눈빛 속에. 살아 있잖아. 남들은 몰라도, 우리는 알잖아. 그때, 그날들의 순수했던 마음. 남들은 비웃을지 몰라도 너무 순수해서, 너무 진지해서 귀여웠던 마음. 예뻤던 마음. 아팠던 마음마저도. 그래, 우린 너무 잘 알지.
그래, 그럼 된 거야. J 그리고 K. 건강하게 살아줘서 고마워. 여전히 함께 웃을 수 있어서 고마워. 그냥, 같은 세상에 있어줘서 고마워.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_잠언 27장 17절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_전도서 4장 12절
*부제, '그때 우리 모습들'은
김건모의 <우리 스무살때> 가사 중 일부.
(이 노래 제목도 '스무살'이네요. '스무 살'이 아니라)
https://youtu.be/TzGzRCuPIvo
꼭 한번 들어보세요 :) 너무 좋아했던 노래.
지금 다시 들어도, 참 좋네요.
언젠가 비오던 날 이거리는 술잔에 흔들렸고
떠나는 그대는 바람이었어라 바람이었어라
나는 보았네 그대 두눈에 가득 고인 눈물
할 말도 못한 채 돌아서야 했던 바보 같던 시절
사랑 하나 못하면서 사랑을 앓던 시절
손뼉을 치면 닿을 것 같은 스무살 시절의 추억
먼훗날 그대 이름조차도 잊혀질지라도
어딘가 남아있을 듯한 그때 우리 모습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