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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Dec 27. 2021

따뜻하고 다정하게

정혜윤의 『오늘도 리추얼 : 음악, 나에게 선물하는 시간』을 읽으며


너무나 오랜만에 카페에 나와 글을 씁니다. 오늘은 재량휴업일(크리스마스와 연달아 재량휴업일을 제안한 선생님은 누구셨던가! 연말 엄청시리 바쁜 때 하루 쉬어갈 수 있으니 모처럼 숨 쉴 틈이 생겨 힐링할 수 있으니 눈물나게 좋은것. 나오는 차 안에서 콧노래가 절로 흥얼흥얼).


그간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인지, 그저 바쁘기 때문인지, 브런치 권태기가 왔는지(아니 쓰면 얼마나 썼다고) 무언가 써야겠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고, 뭘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 쓰려고 앱을 열었다가도 몇 줄 쓰다보면 글을 이어나가기가 어렵더군요.


카페에서는 여전히 캐롤이 흘러나오네요. Let it snow, let it snow, let it snow.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나니 어느덧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여전히 실감이 잘 나지 않네요. 하루, 한 주, 한 달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일 년이라는 시간도 휘리릭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는 합니다. 꼬물꼬물 아기였던 아이들도 어느새 자기주장이 확실해지는 어린이들이 되었고, 남편과 저도 한 살씩 나이를 먹어갑니다. (으앗, 며칠 뒤 한 살을 더 먹게 된다니 믿을 수가 없네요 믿고 싶지 않습니다 믿어야 합니까 믿..)


카페에 와서 간단한 아침을 먹고 책을 읽어보고 있어요. 정혜윤 작가의 『오늘도 리추얼 : 음악, 나에게 선물하는 시간』입니다. 책을 읽고 있으니 근질근질 여행을 하고 싶어지고, 이것저것 여유있게 음악 들으며 멍때리는 시간도 갖고 싶고, 글래스톤베리의 광경도 궁금해집니다(글래스톤베리까지 찾아가는 험난한 여정과 공연장이 온통 진흙밭이 된 사연을 읽고 나니 직접 가보고 싶지는 않고 그냥 궁금하기만 한 걸 보면.. 정말 나이를 먹어가나봐요ㅠ.ㅠ 몸이 불편해지는 환경이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특히 화장실이나 씻는 게 불편해지거나 추위를 견디는 것 같은 상황들. 아아 이놈의 몸뚱이여..).


정혜윤 작가의 이전 책들 『퇴사는 여행』, 『독립은 여행』도 즐거이 읽었습니다. 독립해서 마련한 공간, '융지트'에서 영상을 찍어 올리는 유튜브도 구독하고 있고요. 이분의 책을 읽고 있으면 ' 사람의 세계가 어쩜 이렇게 재미나고 알차고 풍성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젊음을 이런 식으로 누리고 가꾸며, 동시에 깊이 뿌리내릴  있다면 삶이  다채롭고 즐거워지겠구나 싶어요. (문득 학생들 강연에 이런 분을 초청해서 이야기를 들어볼  있으면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싶네요. 아마도 눈이 초롱초롱해져서 듣지 않을까요. 아아 그나저나 쉬면서도  생각은 하지 말자고 하면서도  이렇게 연결을+_+)


비행기를   어떤 자리를 선호하시나요? 화장실에 가기 편한 복도쪽? 앞에 아무도 없는 넓은 자리? 물론 여유가 있는 분들은 비지니스석이려나요... '-'


저는 언제나 창가자리를 선호하는데요. 작가분도 항공권을 예매할 때 항상 창가자리를 고른다는 얘기에 '나랑 닮은 사람 여기있네' 싶습니다.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도 질리지 않는 하늘 풍경. 오직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하얀 구름의 향연들. 늘 땅에서 멀리 올려다보아야만 하는 그곳이, 마치 손에 잡힐 듯 눈앞에 다가와 있는 것을 경험하는 순간.


'지구'를 '쉽게 볼 수 없는 외계 행성'을 바라보듯이 호기심어린, 경이의 눈으로 바라볼 줄 아는 눈. 가끔 출퇴근길에도 우주적인 눈으로 이 공간을 바라보며 '어떤 생명체들이 하나의 행성에 모여 이렇게 복닥복닥 살아가며 도로를 만들고 가로등도 세우고 신호등과 교통표지판을 설치해놓고 요렇게 왔다갔다하면서 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 문득 풋 웃음이 나곤 하거든요. 생각해보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요. 이 광막한 우주에 이런 '생명친화적'인 행성이 존재한다는 것, 적당한 거리에 태양과 달이 존재하고, 이토록 물이 풍부한 푸른 공간에서 살아가며 숨쉬며 걷고 웃고 울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작은 싹을 틔워 줄기가 자라 새잎을 내고, 나무가 되고, 꽃과 열매가 맺히는 온갖 식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포들이 끊임없이 분열하여 생명이 되는 과정은 우리가 매일 목도하면서도 놀라지 않는다는 것이 더 놀라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를 임신하고 낳아본 엄마들은 좀더 즉물적으로 아시겠지요? 종종 그날의 경이를 잊고는 하지만, 뱃속의 아이가 젤리곰처럼 자라고, 그 아이가 더 커져서 몸에 뼈가 생기고 장기가 생겨나고 손가락 발가락을 갖추고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를 드는 순간의 그 가슴떨림.. 엄마아빠들은 아시지요! 물론 직접 경험해보지 않아도 누구라도 상상은 해볼 수 있을 거예요.)


생각해보면 저 또한 엄마 뱃속에서 언젠가 그런 과정을 통해 이 세상에 생겨난 존재인데 말입니다. 누군가의 경이였고, 기쁨이었고, 벅찬 환희였다는 것.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_아가서 2장 10-13절


그날처럼 언제나, 사랑받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어요. 여전히 연약하고 상처에 취약한 존재인지라 이 사랑을 자꾸만 되새기며 그 풍부하고 다정한 사랑에 푹 잠겨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의 기운이 내 안에 가득해 흘러넘치게 되도록.


어제 주일 예배 설교는 '불확실한 시대에서 오지 않은 것들을 미리 염려하지 말고, 지금 바로 이 순간을 누리며 기쁨과 감사로 살아가자'라는 요지의 말씀이었어요. 이 페이지에 쓰인 메시지와도 통하는 삶의 태도이겠지요.


언제나 춤을 추며 살아가는 사람처럼, 아름답고 멋진 음악을 향유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다음 한 해를 살아가고 싶습니다. 비록 세상은 우리에게 언제나 그런 삶을 허락하지 않는다 해도, 전쟁터에서조차 아이에게 멋진 삶을 허락해준 <인생은 아름다워>에 나온 아버지처럼, 따뜻하고 다정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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