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음
어제 오랜만에 출근을 했다.
학생들에게 후기고(일반고) 배정 통지서를 배부하는 날이었기 때문. 2022년 2월 3일은 서울특별시 교육감선발 후기고 배정교 발표일이다. 동시에 2월 3일, 4일 양일 간은 고등학교 등록일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졸업한 중학교에 와서 통지서를 받고, 대부분은 그 길로 바로 고등학교에 등록하러 간다.
우리학교는 방학 중 공사가 예정되어 있어서, 1층 교무실에서 통지서 및 안내문을 배부하기로 했다. 업무용으로 사용하던 노트북도 반납한 상태라 출근 전 집에서 하나하나 출력을 해 갔다.
혹시 발표 전날 나이스에서 조회해볼 수 있을까 들어가봤지만, 교사들에게도 공개되지 않는 나름 철통보안(!)이다. 당일 아침이 되어서야 조회 및 출력을 할 수 있었다.
학생들에게 복사하여 배부할 안내문도 출력해둔다. 학교 배정 방법 및 등록 절차, 민원 창구 등에 대한 안내가 적혀 있다. 고등학교 배정은 전산 추첨으로 진행되며, 전 단계에서 미배정된 경우 지원 사항(서울시 전역 / 관내 학교에 각각 2개교씩 지망할 수 있다), 통학편의, 학교 배치여건 등을 고려해서 다시 전산 추첨을 한다.
고등학교 배정이 완료된 이후에는 결과 변경이 불가하다. 지망한 학교와는 전혀 다른 학교로 배정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있다. 학생, 학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기도 한데,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생기게 된다. 그래도 무조건 100% 추첨으로만 배정하던 시대를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그 수요를 반영하는 현 체제는 이전에 비하면 진일보한 것이라 해야겠지.
한편 고등학교도 이전보다 다원화되어 학생 본인의 희망과 적성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폭도 조금은 더 넓어졌다. 여전히 아쉬운 점은 있고, 고등학교는 대학입시에서 자유롭지 않아 언제나 고민은 있겠지만. 교육을 둘러싼 고민은 치열하게 이루어져왔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많은 어른들이 학교에 갖고 있는 이미지는 자신들이 어린 시절 다닌 학교에 대한 기억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지만, 학교는 정말 많이 변화해왔다. 그 어른들과 같이 학창시절을 보낸 학생들이 지금 자라서 교사가 되었다. 학부모 세대와 동일한 상처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교사가 되어, 이전보다 더 나은 교육을 현장에서 실현해보고자 저마다 고투하고 있다.
이건 교육청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고. 지금은 교육청에서 '장학사님' 오신다고 학생들 동원해서 학교 쓸고 닦고 하는 풍경도 완전히 사라졌다. 지역 교육청에 계시는 대부분의 장학사분들도 교사들을 존중하고, 본청에 계시는 연구사분들도 내실 있는 교사연수를 기획하려고 애쓰시는 걸 알고 있다.
통지서 이야기하다 여기까지 왔네.
오랜만에 학생들 얼굴을 보니 또 반갑더라. 역시 오래보면 사랑스럽지만 가끔 보면 더 반갑다..?! ..ㅋㅋㅋ
^^ 아이들은 가벼운 희비에 엇갈려하면서도 대체로 새로운 생활에 들떠 있었다. 모두가 원하는 학교로 배정받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우리반 학생들 모두, 어디에 가든 잘 생활해나가리라 믿는다. 사실 2021학년도 신설교라 작년에도 새 학교에 전학와서 생판 모르는 선생님, 친구들과 한 해를 성실하게 잘 보낸 친구들이 아닌가.
2022학년도에는 더 지혜롭고 씩씩하게 잘 해나가리라 믿는다. 새 학년도에는 또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야 하겠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자라는 과정 속에 있는' 사람들의 어떤 짧은 순간을 함께하는 이 직업이 때로는 뭐랄까, 공허와는 다른, 어떤 종류의 허허로움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고 느낀다.
그러니까, 일종의 정거장을 지키는 사람의 기분, 누군가가 통과해가도록 잠시 자리를 깔아주고 내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 정성껏 둥지를 가꾸고 살뜰하게 돌보고 나면, 어느새 그 어린것들이 자라 떠나가고, 나는 '빈 둥지'를 지켜보는 어미새 같은 기분이 되는 것.
교직생활이 길어지면서 이걸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살고는 있지만, 때로는 허탈한 기분도 지울 수는 없는 것 같다(이 또한 글을 쓰면서 비로소 깨닫게 된다). 교사들이 간직하는 사진 속에 학생들의 모습은 때로 박제되고,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 아이들의 순간을 붙잡아두곤 하지만, 결국 그런 순간은 지나가버리고, 아이들은 자신의 중학생 시절 같은 것은 도대체 내 인생에서 있었나 싶은 그런 때가 되어, 어쩌면 전혀 다른 인격으로 자라나게 된다.
그건 마치 여린 새싹과 아름드리 나무의 모습이 비할 수 없이 전혀 다른 것과 같다. 커다랗게 드리운 나무에게서 여린 잎의 흔적을 발견하려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도 없고. 그저, 서로의 기억 속에 '그래, 그 곱고도 울퉁불퉁한, 이상한 시절을 우리가 함께 했었지'로 남겨두는 것이 최선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가 이 일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건, 해마다 결국 새롭게 만나는 아이들, 그리고 우리를 통과해나간 아이들의 성장, 그리고 어쩌면 평생친구가 될, 곁에 있는 동료들 덕분이리라. 이곳에서 나는 말 그대로 '보석같은'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다. 서로의 일터를 떠나서도 안부를 궁금해하며, 만나면 오래오래 마음을 꺼내 나눌 수 있는 사람들.
그 감사의 목록을 되새겨보며, 때때로의 어려움 중에도 우리는 어깨를 겯고 나아간다.
졸업생들의 앞길에 행복 있기를, 신입생과 재학생들의 오늘에 기쁨 있기를, 여러 선생님들과 교육에 종사하는 모든 분들께 깊은 위로와 새힘 넘치기를! 애쓰고 계신 학부모님들께 부디 쉼과 사랑 있으시기를.
이렇게 '2021학년도'도 마무리되어간다.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모두 무사히 등록했다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면 이제 모든 업무는 마무리되겠지. 수고했다고, 무엇보다 오늘은, 나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