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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Feb 19. 2022

국연수와 조이서, 그리고

배우 김다미에게 하트를 보내며


*이 글에는 드라마 <그해 우리는>과 <이태원 클라쓰>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즘 푹 빠져 지내는 배우가 있다.


내가 그간 무지하게 좋아했던 남자들, 현빈도 조승우도 조정석(이상 나의 그간의 이상형들)도 아닌, 그 이름은 .


시작은 (안 본 사람 별로 없다는) <그해 우리는>이다. 사람들이 하도 재밌다 그래서, 특히 페북에서 정재승 교수님이 평소에 안 하는, 이 드라마에 푹 빠지셔서는 포스팅을 계속 하셔서(ㅋㅋ) 이러다 보기도 전에 스포일링당하겠다 싶어 1, 2회 보다 말았던 이 드라마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과연,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유가 있더라. 풋풋한 학창시절의 에피들도 좋았지만, 여물어가는 어른의 세계에 못 다하는 맘속의 이야기들, 상처들, 사연들을 차츰 치유해나가는 이야기에 더욱 마음이 이끌렸다. 그리고 배우들은 이 감정선을 '자기답게' 섬세하고도 남다르게 잘 살려냈다.


특히, 나는 처음 본 이 배우, 김다미.


외모도 말투도, 평소에 보아오던 익숙한 배우들의 느낌과는 달랐다. 처음엔 말투였다. '어, 이 대충 말하는 것 같은데 귀에 쏙쏙 들어오는 화법은 뭐지' 싶은 것. 귀여운데 시크하고 무심한데 섬세한 것 같은 이 낯선 조화는 뭘까? 하고 자꾸 들여다보게 되던 배우.


그런데 역시나 알고 보니 보통 사람이 아니었네. 이전에 (역시나 1회 보다 말았던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첫 씬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것도 이 배우였고, 이전에 최우식과 <마녀>도 같이 찍었었다고. 95년생 배우라고 하니(되게 어리겠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계산해보니 95년생이 올해 벌써 스물여덟이네요) 앞으로도 보여줄 모습들이 기대가 되는 :)


프로필을 찾아보니 2018년에 데뷔했다는 이 배우의 수상내역이 화려하다.

*출처는 여기


데뷔하자마자 이렇게 화려하게 등장했다니. 찾아보니 2018년에만 주, 조연인 영화를 세 편이나 찍었었구나. 무서운 저력을 가진 배우가 아닌가 싶다. 드라마에서 보여준 모습 말고도, 다채로운 색을 가진 배우이리라. 그가 출연한 영화도 한 편 한 편 챙겨봐야겠다. 부디, 이런 좋은 배우들이 오랫동안 걸맞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좋은 작품들이 계속 창작 및 제작되기를.


드라마에서 처음  배우를 보면서는  몰랐는데, 극중 연수와 웅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면서 '사랑받고, 사랑하는' 연수의 모습은  그대로 어여쁘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더라. 눈빛, 표정, 말투 하나하나.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운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해낼까 싶더라. 이래서 사람이 사랑받을  예뻐진다고 하는구나, 라는  연수의 모습에서 새삼 깨닫게 된다. 과연  사람 타고난 배우로구나, 싶은 .


<그해 우리는>을 본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보고 있으면 자꾸만 마음이 간질간질해진다. 아아, 정말이지 너무 예뻐서, 애틋해서,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그리고 마음이 슬픔으로 뚝뚝 떨어져서, 어찌하지 못하는 현실에 가슴이 미어져서, 때때로 그저 먹먹해진다.


연수, 웅, 지웅까지 모두. 나름대로 제 한몸 그럴듯하게 건사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꽤 괜찮은 녀석들'이지만, 저마다 마음에 깊은 우물을 가지고 그 결핍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 그리고 각자의 우물을 곁에서 가만히 응시해주는, 친구이자 연인으로 자라가는 이들.


사실 <그해 우리는>은 동화가 아닐 수 없다.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결핍이 아니라면, 이들은 스물아홉의 나이에 갖기 쉽지 않은 나름의 위치와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까. 한 회사의 팀장, 잘나가는 아티스트, 그리고 자기 이름을 걸고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까지. 그건 또 어디 쉬운 일인가.


각자가 극복하거나 안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있었고, 각고의 노력으로 현재의 삶을 겨우 일구어낸, 이토록 여물었음에도 여전히 풋풋한 스물아홉인것을.


그렇지만 이 드라마는 다큐가 아니니까. 사람의 상처와 슬픔을 담는 창은 여러가지이고, 그걸 언제나 어둡고 칙칙한 색으로 담아낼 필요는 없으니까. 우리에겐 다정하고 달콤한 이야기들도 필요하니까. 


그래서 이들은, 어쩌면 일부러 더 상투적인 결말을 택했을 거다.


그리고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하는, 동화속의 결말 말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이런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화를 여전히 보고싶을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행복했다. 많이 웃었고, 가끔 울었다. 그것으로 되었다. 배우들에게, 그리고 작가와 이 작품을 만들어준 모든 이들에게 고마웠다.




넷플릭스가 "김다미 배우 여기에도 있어요!" 하고 자꾸 보여주니 안 볼 도리가 없더라. 결국 다시 정주행. <이태원 클라쓰>를 보는 내 마음은 조금 복잡했다.. 내내 즐겁게 보기는 했는데, 예상치 못한 급변하는 전개에 약간 당황스러웠달까. '이 드라마의 정체와 장르는 도대체 무엇인가' 의아함을 내내 느끼며 보게 된달까요.


처음엔 청춘드라마물로 시작했다가, 갑자기 복수와 배신, 정치와 암투, (중간에 갑자기 성소수자와 인종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는 pc함을 거쳐) 협잡과 뒤통수치기, 느와르였다가 갑자기 로맨스가 되는 당혹스러운 전개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은근 또 재밌게 봤다. 그건 아마, 조이서와 박새로이가 보여주는 캐릭터의 강렬함이 아닐까 싶다.


뻔한 대사를 넘어서는 이서의 말들. 보통 이런 캐릭터는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었던 드라마들과 다르게, 이서의 말은 주연의 언어였다.


160이 넘는 IQ, 소시오패스적 성향, 천재적인 학습능력과 감각, 셀러브리티로서의 자질을 두루 갖춘(아 정말 설정부터 초만화적이다) 이서. 웬만한 남자에게 눈길도 안 줄 것 같은 이 아이가 새로이를 만나면서 점차 변화하고 (역시) 성장하는 이야기. 어쩌면 차라리 이건 새로이가 아닌 이서의 이야기이다.


좋아하는 사람 곁에 있는 '예쁜 언니'와의 사랑을 디펜스하는 이서. 이서는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라도, 그가 자기를 지켜주길 바라지 않는다.


내가 사장님 꿈, 이뤄 드릴게요.
사장님 괴롭히는 사람들,
내가 다 부숴버릴 거야.


이서는 직진으로 달려간다. 몸을 던져 새로이에 대한 중요한 대화를 녹취하다가 주먹으로 얼굴을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내가 사장님에게 유리한 대화 녹음했어요!" 하면서 웃는, 그런 사람. 그런 이서의 캐릭터를, 김다미처럼 잘 표현해낼 수 있는 배우가 얼마나 있을까.


새로이의 상처를 보면서 눈물 흘렸던 이서는, 이것이 "사랑"임을 깨닫는다. 좋아하는 감정을 넘어선, 너의 아픔을 내것으로 아파하는 그것은, 사랑. 너를 지키고, 너를 아프게 하는 세상과 싸우겠다고 마음먹게 되는 그것은, 사랑. 사랑이 아니고 무엇인가.


(비현실적이게도 새로이도 새로이의 첫사랑 수아도 서로 사귀지도 않고 딴사람을 만나지도 않으면서 엄청나게 오랜 세월을 흘려보내고는) 한참 뒤 새로이는 이서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마침내 둘은 연인이 된다. (아 정말 이들의 러브라인 전개만큼은 고구마라는)


이들의 '헝그리 정신'도 최근 나오는 드라마에서는 굉장히 오랜만에 만나서 오히려 신선하기도 했다. 이제 생을 대하는 치열함, 성실함, 끈기, 인내 같은 가치들은 일종의 '촌스러움'으로 치부되기 마련. 워라밸을 중시하고, 가늘고 길게, 소확행을 삶의 행복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시대에, 새로이와 이서는 자기가 추구하는 가치에 삶을 내던진다는 면에서 새롭다. 이러한 캐릭터나 삶의 자세를 가진 사람들도 주변에서 찾아보기 점점 쉽지가 않다. 그런 이들을 이제는 올림픽에서나 만날 수 있으려나.


그러나 이들은 21세기에 낯선 존재들이다. 무모하고, 소신으로 인해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겹겹이 상처를 깊숙하게 입어가며 치열하게 삶을 이뤄가는 존재들. 그런 삶은, 이들의 이름대로 '새롭고, 이채롭다'.


이들의 스토리는 동화가 아니다. 어쩌면 80년대에 어울리는 일종의 '성공신화'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뭔가 조금은 촌스럽고, 어쩌면 오글거리는 그런 이야기. 그럼에도 이들을 보면서 나는 새삼 잠자고 있던 세포들이 깨어나는 느낌이 들더라. 멍때리고 있는 뒤통수를, 열심히 살고 있는 친구가 정신 차리라고 한 대 때려주는 느낌이랄까.


이렇게 노력해본 적 있어? 비교하거나 불평하는 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 줄 알아? 이만큼 열심히 누군가를 위해 사랑해봤어?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치열해봤어? 손해보는 걸 감수하더라도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제대로 행동해본 적 있어?


하고 엉덩이를 걷어차주는, 그런 드라마. 열심히 사는 걸 들킬까봐 눈치보는 21세기에, 시원한 얼음물을 끼얹는 것 같은, 생생하게 살아있는 캐릭터들. 역시나, 덕분에 해갈하는 듯 즐거웠다.




사랑스러운 나의 연수,

잊지 못할 나의 이서.


그리고 이들의 짝꿍,

단단한 사람들, 웅과 새로이도.


행복한 세계를 보여주어

고맙습니다.

덕분에,

따뜻했고요,

덕분에 상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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