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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Feb 21. 2022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김승섭 교수님의 책을 읽으며


얼마 전 쓴 글에서 <난다> 출판사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한 적이 있는데, 어쩐지 오랜만에 난다에서 나온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신간 리스트를 일별하다가 만난 책. 작고 얇은 책이지만 담고 있는 내용이 묵직해서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이다. 그럼에도 나흘에 걸쳐 이 책을 다 읽었다. 여러 권의 책을 돌려가며 읽는 나에게, 이렇게 한 권의 책을 한달음에 읽어내는 건 드문 일이다. 이 책에 담긴 살뜰하고 정성어린 진심에 공명하며 계속해서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김승섭 교수님은 성소수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하고 이들을 위한 연구를 수행해온 학자. 그간 고려대 보건과학대학에 재직하다가, 2022년 3월부터는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부교수로 자리를 옮겨 근무하실 예정이라고 한다.


여기저기서 성함은 들어본 것 같은데, 이분의 책을 제대로 접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책은 천안함 생존장병 및 세월호 생존학생들의 목소리와 이들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 문제점 등을 여러가지 연구자료 및 데이터 등을 통해 분석하고 길을 제시하고 있다.


거대한 사고나 재난으로 PTSD를 겪는 생존자들을 조직과 국가, 그리고 보통의 사람들이 어떻게 대해왔는지, 진보와 보수는 이들을 때로 어떻게 이용하거나 외면했는지가 각종 통계와 기사, 논문 등의 자료를 통해 드러나 있다.


천안함 생존장병에게 '패잔병'이라는 이미지의 굴레를 덧씌우고, 세월호 생존학생 또는 유가족들에게는 '돈을 밝히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매도하는 사람들 때문에, 이들은 애초에 당했던 고통에 상처를 덧입히는 경험을 해왔다. 고통을 겪더라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가 어렵고, 자칫하면 지인들에게서도 무례하고 폭력적인 말로 다시 한번 상처를 입어야 했던 이들의 심경을, 저자는 섬세한 접근으로 담아내었다.


저자에 의하면 트라우마는 '예상해본 적 없는 외부 힘에 의해 자아가 손상당하는 경험'이며 '삶의 통제권을 빼앗긴 기억'이다(책 74쪽). 이러한 정의에 의하면 거대한 삶이라는 수레바퀴 속에 한번쯤 트라우마를 겪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책 속의 피해자들은 정부의 무능 또는 무책임과 부패 때문이 이런 일을 겪었다는 점에서 남다르지만, 생의 통제권을 빼앗기고 속절없이 삶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는 점에서 보통의 사람들과의 교집합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삶의 벽을 만나거나 세상의 폭력 앞에 상처입는 경험을 우리도 어느 정도씩은 하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이야기는 단지 '고통받는 약자' 또는 '타자의 이야기'로서만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나의 이야기' 혹은 '우리의 삶'이 될 수 있다고 여긴다. 이것은 다른 어떤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이야기인 것이다.




이 책은 소방관에 대한 처우 문제도 더불어 다루고 있다. 경비가 부족해서 사비로 물품을 감당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너무 잘 알려져 있고, 소방관의 사망 원인으로 자살률이 얼마나 높은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도 보여준다. 국가가 이런 노동의 사각지대를 어떻게 다루어왔는지도.


성소수자의 문제, 특히 고 변희수 하사를 둘러싼 군의 인권의식, 피우진 중령의 이야기도 소개한다. 우리나라가 갈 길이 참 멀구나, 한숨을 쉬게 되면서도 한편으로 이제 이런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는 점이 변화를 보여주는 일면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다음과 같은 사실도 나를 놀라게 했다.


세월호 사건 당시, 단원고에 전국 소아정신과 의사 300여 명 중 200여 명이 단원고에 와서 봉사했다는 것. 이 정도면, 피치 못하게 병원을 떠나지 못하는 의사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부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고통당하는 아이들 곁에 있어주기 위해 열일 제치고 달려가준 200여 명의 의사선생님들. 여기에서 난 어떤 전율을 느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고 무언가.


김승섭 교수님은 어떤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이 일을 하면서 겪는 딜레마는 없느냐는 질문에,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막상 현실은 달라지는 것이 없고, 그런데 말하는 사람의 명예는 높아지는 이상한 상황'에서 일하고 있다고.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상처를 주지 않고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는지를 늘 생각하고 임해야 할 것 같다고. 과연 이런 자각을 갖고 자기 역할의 자리와 의미를 명확하게 알고 계신다는 점에서, 감격 어린 탄식이 나왔다.


이분은 책의 맨 마지막에 이런 말씀을 하신다.


얼마만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충실히 해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부족한 책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이용하는 것을 넘어 더 나은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264쪽)


이 질문, '무엇이 옳은가', '나는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고 있는가'를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씩 그 질문이 이끄는대로 살아가게 되리라고 믿는다.


다시 책을 열어보니 이것은 책 맨앞에도 실려있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로 오빠를 잃은 한 여동생의 발언에서 따온 말이기도 함을 밝혀둡니다) 이 말이 울림이 되어 내 마음도 두드리며 질문을 던진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나요. 그 일에 용기를 내고 있나요. 어른인 당신이, 용기를 내어주세요. 다음 세대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아진 세상을, 부디 전해주세요.



교수님의 이 책을 읽으며, 이전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도 주문했다. 세상의 아픔 혹은 나와 우리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내가 되기를. 우리이기를. 그렇게 조금씩 함께 길을 만들어갈 수 있게 되기를.



) 세월호 사고   교원연수에서, 단원고 인근 학교에서 근무하신다는 선생님의 연수를 들은 적이 있다.  선생님은, 유명을 달리하신 단원고 교감 선생님과도 아는 사이셨다며 애통해하셨다.


그런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단원고 아이들이 비행기가 아닌 배편으로 여행을 떠난 , 그저 돈을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고. 선상에서 펼쳐지는 장기자랑과 공연에 아이들은 열광했다고. 그래서 만족도가 높아 선박을 통해 여행을 가곤  거라고 하셨다.


그런 아이들이었다. 세월호 사고가 있고 나서 나는 길에서 교복 입은 아이들만 보아도 눈물이 났다. 심지어 바다가 나오는 그림책을 보아도 숨이 막힐  같았다. 그러나 어찌 , 간접적으로 겪은 이들에 비길까. 우리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  고통을 함께 응시하며, 각자가   있는 것들을 하면서, 연대하는  외에는 다른 길이 없으리라 믿는다. 하여 비록 무거운 이야기일지라도, 우리는 언제고 다시 이야기하지 않을  없으리라.



#김승섭

#미래의피해자들은이겼다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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