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요즘 엄마한테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뭐야?"
저녁밥을 짓고 있다가 문득 딸아이를 불러 물어본다.
"음..첫 번째로는 엄마가 책 읽어주는 소리"
"그리고?"
"그리구는..엄마가 조금 더 많이 웃는 소리"
그렇게 대답하고 해맑게 웃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미안했다.
큰애와 다섯 살 터울인 작은 아이를 낳으면서 갓난쟁이 아기를 다시 키우게 되었다. 당시 여섯 살 아이에 맞춰져 있던 육아의 눈높이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신생아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그동안 나이도 많이 먹었고 몸이 힘드니 첫째 때만큼 육아에 대한 열정이 있지도 않았다. 그냥 보통의 책임감으로 열심히만 했다.
첫아이를 키울 때는 대충이란 없었다. 늘 최선을 다했다. 런던에서 태어난 핏덩이를 데리고 한국에 왔을 때 아이가 겪었을 환경의 변화가 낯설고 힘들었는지 동네 병원에서 성장장애라는 진단까지 받고는 충격에 휩싸였다. 물론 대학병원으로 바로 달려가 아이가 정상임을 확인한 후에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그 후 조금 더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생각해 보려고 노력했다. 아이에게는 최대한 편안하고 좋은 엄마여야 했다. 젖을 물린다는 건 아이의 허기를 채우는 것뿐 아니라 눈을 맞추고 정서적 교감까지 함께 나누는 것이기에 나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감정적인 부분들은 마음속 깊은 서랍에 일단 넣어 두었다. 4개월 조금 넘어 이유식을 시작했고 그 시기에 해 주어야 할 매뉴얼대로 열심히 챙겼다. 어른들도 갓 지은 밥을 먹으면 금방 입맛이 돌듯이 아이도 그럴 거라 믿고 새벽부터 일어나 매 끼니때마다 새롭게 뭔가를 만들어 내었다. 아이는 금세 제자리를 찾아 잘 먹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이에게 즐거운 일상적 리듬을 만들어 주기 위해 부단히도 움직였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짓고 아침과 점심 사이에 먹일 간식을 만들었다.
점심을 또 새로이 짓고 오후에 먹일 간식도 따로 만들었으며 저녁을 또 짓는다.
내가 밥을 지을 때면 딸아이는 아빠와 여러 가지 놀이를 했다. 가끔은 요리하는 내 옆에서 갖은 야채와 쌀, 수수와 기장, 콩이나 팥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물감놀이를 하기도 했다. 마법처럼 맛있는 행복이 만들어질 것만 같은 주방에선 종종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며 음악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하루 세끼에 간식 두 번, 첫 아이가 아홉 살이 된 지금도 그런 일상은 변함이 없다.
계절과 상관없이 우리는 아침과 오후에는 반드시 산책을 나갔다. 마당에서 키우는 진돗개와 아이를 데리고 바닷가로 공원으로 여기저기 늘 같은 시간에 나가 아침나절을 보냈고 오후의 햇살과 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아이와 함께했다.
그 외의 시간에는 주로 책을 많이 읽어 주었는데, 목이 쉬어 소리조차 안 나온 적도 수차례였다.
아이가 서너 살 때였던 것 같다. 까막눈이던 아이가 책장에 빼곡히 꽂혀있던 책을 하나 집어 들고는 막힘없이 술술 읽어 내려가는 모습에 신기방기해서 눈이 휘둥그레 해졌던 기억이 난다. 책 속의 이야기를 모두 외워 버린 것이었다. 그동안 열심히 책 읽어준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아이의 일상이 끝난 후 저녁 여덟 시쯤이 되면 프리랜서였던 우리 부부는 그제야 우리의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남편과 공동육아를 함에 있어 우리가 가장 중요시했던 건 아이에게 예측 가능한 규칙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예측할 수 없으면 불안해한다. 불안함을 표현할 줄 몰라서 떼를 쓰기도 하고 입을 꾹 다물고 울 수도 있다. 자칫하다가는 아이의 마음을 못 읽어주는 부모가 되기 쉽다. 우리는 아이가 불안해하지 않게 모든지 예측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고 도와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서 뿜뿜 뿜어져 나오는 발산하는 에너지를 느끼려면 무조건 잠을 잘 재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잠을 잘 잔 아이는 잘 먹고 잘 싸고 모든 게 마냥 즐겁고 활기차기 때문이다.
그렇게 온 정성으로 마음을 다해 키운 첫째는 지금도 해맑고 속이 깊은 아이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그녀는 평탄하지 않았던 엄마의 힘겨운 임신과 출산을 견뎌내야만 했다.
첫째 아이를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보낸 건 그녀가 여섯 살이 되어서였다.
어린이집에서 이제 막 처음 적응하는 시간을 갖는 동안에 노력해도 안 생기던 둘째를 임신하게 되었고 심한 입덧으로 아이와 접촉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몇 달이 지나 조금 괜찮아져서 밥도 먹기 시작하고 설렁설렁 산책도 다닐 즈음엔 뱃속의 아가가 배 아래쪽에서 노는 게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늘 본능적으로 두 손을 모아 배를 받치고 다녔다. 그날도 보통의 날처럼 아침에 요가를 마치고 모처럼 밖에서 점심을 먹은 후 혼자서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갔다. 그러고는 몇 달 동안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정말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앰뷸런스에 실려 신생아 중환자실이 있는 병원으로 전원을 가던 나는 혼자서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바로 얼마 전에 끝난 입덧으로 기력을 상실했는데 영양 보충할 겨를도 없이, 뱃속의 아이가 언제 어떻게 나올지 모름을 대비해 언제든 수술할 수 있도록 금식을 반복해야 했다.
노숙자처럼 씻지도 못하고 산송장처럼 소변도 누워서 봐야 하는 정말로 거지 같은 신세가 되었다. 노산으로 인한 조기 분만 증상이 그 원인이었다.
여섯 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꼬맹이가 한창 환경이 바뀌어 예민할 때에 엄마의 오랜 병원 생활로 인해 그 빈자리가 너무나도 컸을 것이다. 특수병실이라 딸이랑은 면회도 오래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그냥 이산가족이 되어버렸다. 나는 점점 야위어 가는 꼬맹이를 눈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녀의 여섯 살과 일곱 살은 나에겐 눈물겨운 아픈 시간들이다. 혹여라도 꼬맹이의 낯빛이 안 좋아 보이기라도 하는 날엔 왜 그런지 나는 습관처럼 그저 그때를 탓하기 바쁘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엄마의 부재를 느끼게 해 줘서.
작은 아이는 뱃속에 품었을 때부터 모진 고생을 해서 얻은 아이다.
오랫동안 링거 바늘을 꽂고 있어야 했던 내 혈관들은 뒤틀려 돌출이 되고 멍들고 붓고 터져서 더 이상 주삿바늘이 들어갈 자리가 없을 지경이었고 내 몸은 만신창이였지만 눈물로 버티고 버텨서 병상에 누워 뱃속의 아이를 지켜내었다. 만삭 사진 찍겠다고 미리 사두었던 예쁜 드레스는 끝끝내 입어보지 못한 채 한으로 남았다.
결국 수술로 낳을 줄 알았던 아이를 버티고 버텨 정상 범주 주수에 자연분만으로 낳았다.
태어나서는 지금까지 감기 한번 앓은 적 없이 건강하다. 큰애가 바라던 여자 동생은 아니지만 지금은 서로 죽고 못 사는 남매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힘듦이 몸에 배었고 그저 틈만 나면 쉬고 싶기만 했다.
온전히 큰애만 키울 때에는 기저질환을 앓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속 깊은 서랍에 넣어둔 감정들은 쉽게 꺼내려하지 않았다.
작은 아이를 뱃속에 품고 아름답지 않았던 임신기간 동안에 나약해져 가는 나 자신과 그러지 않으려는 내 마음이 언제나 팽팽하게 맞섰다. 병상에 누워 지낼 때부터 툭툭 꺼내지는 서랍 속 감정들이 점점 잦아지기 시작했고 큰애한테 이해를 요구하고 바라기 시작했다.
큰애가 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정말 한권만 읽어주기도 하고 조금 있다가 읽어주겠다고 하며 잊어먹기를 반복했던 것 같다. 예전 같았으면 한 번에 열 권씩은 거뜬히 읽어주곤 했었는데 말이다.
아이는 엄마가 책 읽어주는 걸 너무 좋아했다. 그리고 그녀가 아홉 살이 된 지금도 변함없이 좋아한다. 내 마음속 깊이 넣어 둔 서랍 안의 감정들은 그동안 아무렇게나 마구 욱여넣어 이젠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게 된 듯하다. 살짝 열려 빼꼼히 고개를 내민 서랍 위로 어중간하게 걸쳐져 있는 추스르지 못한 감정들이 오도 가도 못한 채 그 위에 흉측하게 널브러져 걸려 있었다. 변한 건 다만 그동안 괜찮은 척 반쯤 열린 서랍을 모른 채 외면하고 있었던 엄마인 나였다.
나는 작은 아이에게도 책을 읽어준다.
만으로 아직 두 살인 작은 아이도 내가 읽어준 책들이며 노래들을 외운다. 그러나 큰애 때만큼 많이 읽어주기는 힘들다. 대신에 누나가 있어서 다행이다. 큰아이가 엄마 아빠한테 받은 사랑을 그대로 동생한테 대물림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어제는 큰애가 나에게 다가와 투덜거린다.
"엄마, 옛날이 그리워.. 엄마가 책 많이 읽어줬었잖아."
"맞아, 그랬었지. 엄마가 요즘 미안해..
그런데 그때가 그렇게 그리워? 너 혼자서 책 많이 읽잖아"
"그거랑은 다르단 말이야, 엄마가 책 읽어주는 시간이 좋은 거란 말이야"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하던 녀석의 속마음을 알아주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했다.
"그럼 엄마가 지금은 밥해야 하니까 안되고 밥 먹고 읽어줄게, 알았지?"
"응! 엄마! 엄마가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두 권정도는 꼭 읽어 줘야 해, 알았지?"
"알았어, 그렇게 하자. 어서 가서 읽을 책 골라놔"
"응!" 하며 재빨리 책을 고르러 가는 아이의 찰랑거리는 머리카락과 함께 한껏 들떠있는 뒷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짠해진다.
나는 아이들과 책 읽는 시간이 좋다. 웃음이 끊이지 않아서 좋고 내 품 안에서 온 정신을 집중해서 엄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천사 같고 사랑스럽다.
속 깊은 아이가 내 웃음소리를 그리워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솔직한 편인 난 그래도 그들과 꽤나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아이들은 매의 눈을 가지고 있나 보다. 아이들이 있는 삶 속에서 점차 웃음을 잊고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니 쉽진 않겠지만 이제 그만 방치해 두었던 서랍 속에 넣어둔 감정들을 모조리 꺼내어 깨끗이 정리할 때인듯하다. 나 자신을 돌보고 내 감정들이 어떤지 좀 들여다봐야겠다. 이제는 나 자신을 돌봐야 할 때인가 보다.
마음이 건강한 엄마가 되기 위하여, Che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