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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에이치 Jul 16. 2020

우수에 찬 제주라는 섬

  서울에서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아는 언니와 처음으로 여행 왔던 제주섬. 비행기를 처음 탄 나는 고소공포증으로 인해 죽을만치 긴장해 있었다. 놀이기구 조차 못 타던 나는 비행 내내 눈을 질끈 감고 식은땀이 나 축축해진 손으로 옆에 앉아 있던 언니의 손을 세차게 부여잡으며 비행기에서 어서 빨리 내리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착륙할 때 즈음엔 거의 기절 직전이었고 승무원이 다가와 심호흡을 시켜주었던 것 같다. 그렇게 겨우겨우 도착한 제주도. 아직도 생생했던 그날의 간담 서늘했던 비행기에 대한 첫 경험은 잊혀지질 않는다. 있는 힘껏 세차게 부여잡고 있던 언니의 손, 불편했을 법도 한데 그녀는 뿌리치지 않고 끝까지 잡아주었다.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 스스로 겸연쩍여지곤 하지만 그래도 묵묵했던 그녀에게 참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렇게 아찔했던 순간들을 지나 무사히 공항을 빠져나온 우리는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후 지도를 펼쳐 들고 용담동의 한 민박집을 향해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요즘엔 스마트 폰으로 자신이 탈 버스가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시간과 동선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삶 속에 자동화가 일상적으로 보편화되어 있지만, 스마트해진 대중교통과 그 시스템이 구축된 건 찬찬히 생각해보면 지금으로부터 불과 얼마 안 된 일인 것 같다. 지금이야 그 편리함과 당연함에 익숙해져서 나조차도 과거에 어떠했었는지 기억들이 희미해져 가고 있는 중이지만, 어쨌든 예전의 버스는 지금처럼 카드기기가 상용화되지 않았던 때였다. 현금만 취급했던 때라 동전이 흔해서 대부분 다양한 디자인의 귀여운 동전 지갑 하나쯤은 누구나 따로 가지고 다닐 정도였고, 지갑 속엔 현금이 두둑하게 있어야 마음이 든든해지는 시대였다.

처음 제주섬에 도착해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고 버스를 탔을 때였다. 돈통에 차비를 넣자 거스름돈이 미끄러져 내려왔는데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약봉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이었다. 밀봉된 약봉지 안에는 동전이 들어있었고 그 모습이 조금은 의아했고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나는 이런 일상의 소소한 다름들이 재미있고 신기했다.  

이천 년대 초반인 당시만 해도 내가 제주에서 만난 사람 중에 멸치국수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했었고 처음 들어보는 제주도 방언은 제3의 언어처럼 무척 낯설기만 했다. 외국에 와 있는 듯 소통의 부재가 이어졌고 답답했지만 그래도 나름의 즐거움이 있었다.

차가 쌩쌩 지나는 도로가에 기다란 야자수가 즐비하게 서 있던 모습,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으로 쌓아둔 돌담 안으로 안거리 밖거리가 있는 원색적인 색깔의 지붕을 품은 아담한 제주 전통 가옥들, 하얀 모래가 있는 푸른 산호바다, 한겨울 세찬 바람에 쓸려 서걱서걱 소리를 내던 이름 모를 풀들이 있던 오름들, 처음인 제주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어 무턱대고 찾아가 문을 두드렸던 제주대학교의 사진동아리, 민박집 아주머니가 조상님께 제를 지낸 후 정성스레 차려 주신 제사음식, 추운 겨울이었는데도 여기저기 초록초록해서 가슴이 트이고 굳어있던 내 마음도 움직이기에 충분했던 천혜의 경관을 자랑했던 제주도였다. 그리고 무심한듯한 무뚝뚝함 속에 따뜻하고 정 많던 제주 사람들이  있었다.

수동 카메라를 목에 건 나는 내 시선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들을 파인더로 들여다 보고 셔터를 눌러대느라 쉴 틈 없이 바빴다.

나는 처음 제주 땅을 밟은 후로부터 일 년에 한 번씩은 고소공포증을 감내하며 제주섬에 가곤 했다.   

촌스러웠지만 무척 아름다웠고 충분히 매력적이었으니까.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 초등학생인 큰 아이의 겨울방학 동안에 우리 가족은 드문드문 찬바람을 맞으며 올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다른 사람이 버리고 간 쓰레기도 주워야 하고 지나다가 풀에 붙은 벌레도 관찰해야 한다. 돌멩이나 열매 같은 것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기에 하루에 한 코스를 완주하기란 무리라서 두 번에 나눠서 한 코스를 완주해나갔다. 올레 1코스를 거의 완주할 때 즈음 광치기 해변에 입성하고 나서는 작은 비석에 쓰인 글귀와 마주쳤다. 비석을 뒤로한 바다에는 커다란 존재감을 과시하듯 멋지게 우뚝 서 있는 성산일출봉이 있었다. 성산일출봉을 한번 바라보고 고개를 떨구어 비석에 쓰인 글을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광치기 해변에서 어느 한 프랑스 문학가의 제주 기행문을 만났다.
섬에는 우수가 있다. 이게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이 마음 갑갑하게 만드는 이유다. 오늘날 제주에는 달콤함과 떫음, 슬픔과 기쁨이 뒤섞여 있다. 초록과 검정, 섬의 우수, 우리는 동쪽 끝 성산 일출봉 즉 ‘새벽 바위’라 불리는 이곳에서 느낄 수 있다. 바위는 떠오르는 태양과 마주한 검은 절벽이다. 한국 전역에서 순례자들이 첫 해돋이의 마술적인 광경의 축제에 참석하러 오는 곳이 바로 여기다. 1948년 9월 25일(음력) 아침에 군인들이 성산포 사람들을 총살하기 위하여 트럭에서 해변으로 내리게 했을 때 그들의 눈앞에 보였던 게 이 바위다. 나는 그들이 이 순간에 느꼈을, 새벽의 노르스름한 빛이 하늘을 비추는 동안에 해안선에 우뚝 서 있는 바위의 친숙한 모습으로 향한 그들의 눈길을 상상할 수 있다. 냉전의 가장 삭막한 한 대목이 펼쳐진 곳이 여기 일출봉 앞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1948년 4월 3일에 제주에서 군대와 경찰이 양민학살(인구의 10분의 1)을 자행한 진부한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오늘날 이 잔인한 전쟁의 기억은 지워지고 있다. 아이들은 바다에서 헤엄치고, 자신들 부모의 피를 마신 모래에서 논다.
매일 아침 휴가를 맞은 여행객들은 가족들과 함께 바위 너머로 솟는 일출을 보러 이 바위를 오른다. 숙청 때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들을 잃은 시인 강중훈 씨 조차 시간의 흐름에 굴복했다. 그가 아무것도 잊어버리지 않았다면 - 그의 시 한 편 한편이 그 9월 25일의 끔찍한 흔적을 지니고 있다- 그걸 뛰어넘을 필요성도 알고 있다.
<GEO>2009년 3월호 게재된 “제주 기행문”중에서,
J.M.G.Le Clézio 2008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프랑스)   


  처음 제주에 왔을 때에는 유명한 관광지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 다음엔 나의 힘듦을 녹여내는 곳이어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돌아보니 시나브로 이곳 제주섬에서 살고 있다.

이곳에 살게 되면서 알게 된 제주의 아픈 역사들이 있다. 처음 우리 가족이 자리 잡은 집 앞의 바다 해변은 옛날 4.3 사건 때 많은 이가 희생당한 곳이기도 하다.

나는 전혀 몰랐었고, 충격적이었다. 많이 분개하고 열이 뻗쳐서 잠을 못 이룬 적도 있었다. 때로는 그 많은 사람들의 억울한 혼령들이 집 앞의 바닷가에서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지나 않을까 사실 괜스레 무섭기도 했었다.


올레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비석에 쓰여있던 Le Clézio님이 쓴 글이 구구절절하게 다가왔다.

나도 그가 여행 와 느낀 것과 비슷한 것을 느끼며 지냈던 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잔인했던 역사의 지워진 기억들 위로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다른 시간들이 채워져 나가고 있다. 그가 말한 대로 이 섬엔 우수가 있다. 달콤함과 떫음, 슬픔과 기쁨이 뒤섞여 있어서 일까. 아마도 그 모든 것들을 묵묵히 포용하고 있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희생당한 무고한 사람들이 마지막에 느꼈을 그들의 시선 같은 것들을 나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조상들의 피를 마신 모래 위에서 많은 이들이 헤엄치고 서핑을 한다. 잔인했던 역사의 자리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 공간을 추억으로 덮고 아름다운 시간들로 채워 나간다. 그리고 잊혀진다.


육지 사람들을 터부시 하는 제주 토박이 삼춘들한테 처음엔 몹시 서운하기도 했었다.

사실 역사를 알면 서운할 일도 아닌데 말이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는 이 우수에 가득 찬 제주라는 섬에 살면서 나에게 깃든 우수들을 조금씩 떨쳐버리고 있는 중이다. 고기잡이 배들이 정박된 작은 포구로 아침 산책을 나갔을 때 운 좋게 만나는 숨비 소리의 울림은 이 섬에 가득 차 있던 우수를 뜨거운 아침햇살 아래 찬란하게 빛나 반짝거리고 있는 물속으로 떨어트려 침잠하게 만들어 버릴 것만 같다. 많은 개발로 천혜의 자연이었던 예전의 섬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지만 여전히 이곳 제주섬은 나를 평화롭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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