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그리 별나진 않지만 늘 어려운 아이들의 세계
"와~예뿌다~
엄마, 나무들이 춤춰~ 바람에 나무들이 춤춰~"
아직 만으로 세 돌이 안 된 아들 녀석이 하는 말이다.
주방의 식탁 앞에 보이는 큼직한 창문 밖으로 커다란 나무들이 바람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춘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햇볕에 반짝반짝 빛나는 이파리들이 분주하게 바스락바스락 서로를 부딪히며 아우성치는 것 같다. 구멍이 숭숭 박혀 바닥에 누워있는 까만 돌 들위에 아우성치던 이파리들의 검은 그림자가 함께 드리우며 흔들거린다.
입안 가득 떡볶이를 오물오물 거리며 맛있어를 연발하는 아이의 시선은 줄곧 창밖의 춤추는 나무들에 가 있다. 생글거리는 녀석의 눈빛이 어릴 적 유년시절로 나를 데려다 놓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을 보면 마치 저들이 춤추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땅속으로 깊이 박힌 몸, 그것의 절반은 땅 위로 뻗어 나와 마치 물구나무서기를 하듯이 우뚝 서 있다. 풍성하게 자라 얽히고설킨 나뭇가지인 다리가, 있는 대로 힘껏 높이 치켜세우고 바람이 흔드는 대로 그 방향에 자신의 몸을 맡겨 버린다. 그렇게 얽히고설킨 가지들을 품은 커다란 나무는 거꾸로 물구나무서기를 한 채 바람결에 따라 춤을 춘다. 때로는 우아하게 천천히 때로는 거침없이 신나게- 그리고 어린 나는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어느새 그들과 함께 춤추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어릴 적엔 비단 밖에서 만나는 풍경 속의 나무들 뿐만 아니라 집안의 모든 사물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과는 달리 옛날엔 어딜 가든 집이나 건물 안에는 복잡한 텍스타일의 종이 벽지가 붙어있었다.
우리 집에도 어떤 방엔 하얀색 바탕에 작은 핑크색 꽃이 반복적으로 그려져 있는 벽지가 붙어 있었는데 벽지에 난 무늬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듯이 보였고 모두가 같은 문양의 텍스타일에서 어떤 부분은 뭉텅이로 갑자기 쑥 튀어나와 사람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내 또래 사람들은 겪어보지 못했을 기억들이 있다. 정말 어느 시대 사람인가 하겠지만, 아버지와 친척 할아버지가 빨간 벽돌로 쌓아 만든 양옥집이었지만 당시 집안에는 화장실이 없었기에 잠결에 소변이 마려우면 화장실 대신 요강이 놓여있는 추운 거실로 나가야만 했다. 자다가 이불속에서 몸만 쏙 빠져나와 방문을 열고 다른 사람이 깰세라 조심히 거실로 사뿐사뿐 걸어 나갔다.
예쁜 사기로 만들어진 할머니의 묵직한 요강 옆에 나란히 놓여있던 스뎅 철재로 된 가벼운 요강, 어둠 속에서 까치발을 하고 두 손을 뻗어 더듬더듬 찾아낸 차가운 요강. 그 위에 겨우 앉아 오줌을 눈다.
금세 어둠에 익숙해진 내 눈이 본능적으로 주위를 살피기 시작하자 거실 한켠에서 보이는 네 개의 방문에 널찍하게 새겨진 알 수 없는 문양들과 눈이 마주친다. 방문에 새겨진 문양은 낮에는 분명 평범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한낮의 잠에서 깨어나 밤을 차지한 문양들은 동이 틀 때까지 자신들의 세상에서 힘없이 작은 나를 위협할 것만 같았다. 그럴 때는 왠지 모르게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을 쳤고, 무거운 시계추가 달린 기다란 괘종시계는 맞은편에서 차가운 요강에 앉아 볼일을 보던 내 두 눈을 질끈 감게 했다. 어떨 땐 소변 줄기가 사그라들기도 전에 팬티를 올리고 일어나 오래되어 삐걱거리던 마룻바닥 특유의 울림을 뒤로한 채 급하게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곤 몸만 빠져 나와 동굴모양을 하고 있던 이불을 낚아채어 뒤집어쓰고 고개를 들어 컴컴한 방문을 쳐다보곤 하였다.
이상하게도 밤에는 모든 것들이 살아있는 듯 선명하게 느껴져서 눈을 감고 잠을 자는 것이 두려웠다. 밤이 되가는 것이 그리고 잠을 자야 되는 것이 너무도 싫었다. 결국 늦은 밤이나 새벽녘에 일어나 거의 매일 부모님 방문을 두드려야 했고 엄마가 들어와 내 옆에 누워야 겨우 잠을 청할 수가 있었다.
춤추는 나무들을 보며 떡볶이를 다 먹은 아들 녀석은 요즘 말 배우기가 한창이고 표현력이 일취월장이다. 뭐든지 문장으로 또박또박 말하기를 좋아하고 누나처럼 하는 것을 좋아한다.
핑크색을 좋아하던 누나를 따라 자기도 핑크색 옷만 입으려고 고집한다. 핀이나 머리띠를 따라 하고 싶어 하고 누나가 옆에서 하는 말을 동시통역사처럼 그대로 한다. 무용을 좋아하는 누나를 따라 녀석의 춤 실력도 대단한 요즘이다. 밥 먹는 습관이나 행동들도 그렇고 모든 하루의 일상은 녀석의 말대로 “누나처럼”이다. 그래서 모든지 자신을 따라 하는 동생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누나가 지켜야 할 예의범절을 강요받는다. 그런 누나는 요즘 답답할 지경이다.
요즘 들어 밤이 되면 아이들의 입에서 무섭다는 말이 자주 튀어나온다.
큰 아이는 불을 끄고 누우면 방안의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다고 하고 작은 아이는 벽에 걸린 시계가 무섭다고 말한다.
그게 어떤 마음인지 너무 잘 알아서 잘 달래 보려고 노력하다가 쓸데없이 나의 어릴 적 이야기를 해주기도 한다. 사실 그럴 때면 아이의 입장에선 몰랐던 것도 알게 되고 오히려 무서움이 배가 되어 버릴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난 정말 후회막심이다.
심약한 어린아이였던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줘야 나처럼 겁을 안 집어 먹을까를 생각해본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겁을 먹은 아이들에게 따뜻한 음성으로 조곤조곤 괜찮다고 말해주고, 말조차 통하지 않는 날엔 그냥 엄마의 온기로 채울 수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이럴 때 지혜로운 부모들은 어떻게 하는지 무척이나 궁금해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