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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에이치 Jun 01. 2020

꿈 속에서라도 만두

“잘 지냈어? 반가워”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햇빛처럼 환하고 밝았다.

"빨리 내려가자, 나는 저기에 꼭 가보고 싶었어.”

높게 솟은 언덕 길 위에서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그녀가 내 팔짱을 끼며 말한다.

“고모, 우리 어디 가는데?”

“저 배를 꼭 타야 해, 너랑 꼭 한번 같이 가고 싶었어”

파란 바다 끝의 저 멀리 눈앞에 보이는 건 타이타닉호처럼 커다란 배였다.

“...”

나는 망설였다.

“저기..근데 고모, 나도 너무 가고 싶은데, 사실 약속이 있어서 지금은 안될 것 같은데 어쩌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고모는 샐쭉 나온 입술을 하고는“그래? 어쩔 수 없지, 괜찮아”하신다.

“예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섬이 있었거든”

“그래? 고모, 그럼 나 약속 빨리 끝내고 이따가 같이 가자. 내가 전화할게. 조금만 기다려, 알았지? 꼭!”

마음이 급해진 나는 고모랑 다시 만나기로 하고 급히 약속 장소로 뛰어갔다.

약속이 있던 장소는 대학 다닐 때 알고 지내던 선후배들과 함께 만든 랩실이었다. 철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둡고 퀴퀴한 냄새가 났고 서너 명이 둥그런 원형 테이블에 모여 앉아 있었다. 내가 들어섰을 때 정면으로 보이는 암실의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약품 냄새가 고약했다.

“급하다며 왜, 무슨 일이야?”

나는 채근하며 물었고 돌아온 대답은 오랜만에 만난 고모를 뒤로한 채 뛰어 올 만한 상황이 아니어서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화를 참지 못한 나는 둥그런 탁자에 앉은 사람들한테 한바탕 쏘아붙이고는 문을 쾅 닫고 나와 공중 전화기가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다급하게 랩실 밖의 계단 모퉁이로 뛰어가 얌전히 놓여있던 수화기를 들어 고모한테 전화를 걸었다.

“고모! 나 지금 끝났는데 가자, 고모가 가보고 싶었다고 했던 그 섬이라는 곳!”

“음..지금은 안될 것 같아.

대신에 다음에는 꼭 같이 가자”

고모를 다시는 볼 수 없을까 봐 마음이 무척 초조했다.

그러고는 잠에서 깨어났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데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웃음기 가득 햇빛처럼 환한 얼굴로 내 팔짱을 끼고 있던 방금 전 꿈속의 고모. 그녀가 몹시 그리워진다. 꿈이었다니 말도 안돼...

  

  사남매에 막내인 우리 고모. 아버지 형제는 모두 아버지와 나이 터울이 많다.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이북 출신 우리 할머니는 자식을 열 둘이나 낳으시고 전쟁통에 잃고, 병으로 잃어서 살아남은 자식은 결국 넷 뿐이었다. 그렇게 열 둘 중 둘째였던 우리 아버지가 장남이 되었다. 아버지는 핏덩이 같은 동생들의 이름도 스스로 지었고, 출생신고도 직접 하셨다 한다. 무학에 농사짓는 목수셨던 할아버지가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아들에게 모두 일임하셨던 것이다. 부양가족이 있는 가장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으로 강제 징용되어 몇 년을 후쿠오카 광산과 나가사키현에서 노무자 생활을 강요당하셨던 할아버지. 상상조차 하기 힘든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 남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셨지만, 몇 년을 광산으로, 섬으로 그렇게 끌려 다니며 노동력을 착취당한 그는 건강도 잃고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그에 따른 후유증을 앓으시다가 결국은 돌아가셨다. 부모의 돌봄이 절실했을 가엾고 어린 우리 아버지는 결국 일찍 돌아가신 당신 아버지를 대신해 소처럼 일해서 자식같은 동생들을 열심히 뒷바라지해야 했다.


  집안에 특별한 일이 있거나 누군가 오랜만에 오는 날이면 우리 집은 늘 만두를 빚었다.

큰삼촌과 막내 삼촌이 집에 소개한다고 작은 어머니들을 처음 데려 온 날에도, 고모가 결혼하겠다고 고모부를 처음 데려 온 날에도 변함없이 우리 가족은 만두를 빚었다.

엄마가 시집오기 전부터 해 먹었다는 할머니의 이북식 만두는 여름이면 호박소를, 그 외의 계절엔 김칫소를 넣어 만든다.


  언젠가 그 날은 오랜만에 고모가 집에 오는 날이었다.

그 날의 음식 메뉴는 역시 만두.

돼지고기와 파, 마늘, 빨간 국물을 꼭 짜서 다져 넣은 김치와 으깬 두부 그리고 살짝 데친 숙주나물과 계란을 넣고 참기름으로 잘 버무린 만둣소에, 밀가루를 직접 치대 반나절 발효시킨 만두피로 빚어낸다. 매운 청양고추와 향긋한 쪽파를 잘게 썰어 넣고, 짭조름한 집간장에 고춧가루, 들기름과 깨를 넣어 만든 매콤한 간장 양념을 곁들여야 제 맛이다.

멀리 서울에서 고모가 온다니 할머니의 참견이 모든 음식재료 준비하는 데 들어가 한겨울 해질 무렵의 주방은 긴장감이 맴돈다.

  

  처음엔 아버지랑 어린 막내 동생까지 일곱 식구가 모두 둘러앉아 즐겁게 만두를 빚기 시작한다. 손재주가 좋으신 우리 아버지는 어쩜 그리 예쁘게 잘 빚으시는지. 두 살 위의 언니도 아버지 못지않게 솜씨가 좋다. 할머니는 나중에 커서 예쁜 딸을 낳겠다며 언니에게 칭찬을 해 주시곤 하셨다. 엄마의 만두는 모양은 괜찮지만 너무 크게 빚어서 먹기에는 불편하다. 나와 동생들은 어려서 누가누가 잘하나 열심히 만들어보지만 아버지가 빚은 것 비슷하게도 흉내 낼 수 없어서 더 이상 재미도 없고 마음대로 안되니 뾰로통 해지기 십상이었다. 아버지가 옆에서 잘 가르쳐 주시지만 내가 만든 만두는 꾹꾹 눌러 빚을수록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속에 든 만둣소로 인해 빨갛게 얼룩덜룩 해져 버렸고 결국 터진 구멍을 메꾸려다 볼품없는 막만두가 되어 버리곤 했다. 만두와 끙끙거리며 실랑이를 하고 있는 나에게 엄마가 웃으며 말씀하신다.

"그건 네가 먹어라"



  

  성격이 강한 할머니로 인해 참고만 살던 시집살이에, 시어머니의 잘못된 판단으로 어린 첫아들을 잃고 숨죽여 울던 며느리는 어느 날부터는 물불 안 가리는 며느리가 되었다. 폭발한 며느리의 주체할 수 없었던 화를 지켜보는 아이들한테는 살얼음판을 걷듯 무시무시한 나날들이었다.

괴물 같았던 엄마의 그런 행동들은 우리 중 누군가에게는 끝끝내 아물지 못한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엄마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그녀 역시 가엾기 그지없는 불안하고 위로받아 마땅한 나약한 존재일 뿐이었다.

한자리에 모여 앉아 만두 만드는 날엔 특히 그녀들의 갈등이 언제 어떻게 터져 나올지 모를 무시무시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날이기도 했다.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말씀 다 하고야 마는 성격인 할머니의 말들은 거실 한복판의 허공 속에서 갈 길을 잃고 둥둥 떠다니고, 바삐 움직이는 만두 만드는 손 위로 입을 꾹 다물고 화를 누르고 있는 엄마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평소 농담도 잘 하시고 권위적으로 큰소리도 잘 내는 분이지만 그녀들 사이에선 유독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아버지. 그의 헛기침소리는 맞은편에 앉아 만두를 빚고 있는 한 많은 아내가 부여잡고 있던 침묵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간다. 엄마의 인내가 성공한 날엔 조용히 넘어가고 그렇지 않은 날엔 공포의 집이 되곤 했다. 결국 그 둘의 분위기에 압도당하여 만두 빚던 손들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만다. 마지막엔 엄마와 할머니 그리고 언니 정도만 남고 몇 명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또 몇 명은 텔레비전만 멍하니 보고 있을 뿐이다. 나는 아버지 옆에 꼭 붙어 앉아 텔레비전 속 화면을 응시한다.


  만두가 어느 정도 빚어지고 있을 때 주방에서는 갖은 야채와 멸치, 다시마로 푹 끓여 우린 맛있는 만두육수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 날은 고모가 오는 날이니 할머니의 성화는 점점 심해진다. 막차를 타고 밤늦게 올 고모는 일단 제쳐두고 분주히 상을 차려 바닥에 둘러앉는다. 할머니와 엄마가 마지막까지 남아 줄다리기하듯 기싸움을 해서 만든 무시무시한 만두를 먹기 시작한다. 아버지 그릇엔 만두가 봉긋하게 솟아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한 스무 개쯤 들어있는 것 같았다. 할머니와 엄마 그릇에도 아버지 그릇에 쌓인 것보단 덜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많아 보인다. 내 자매들도 기본 예닐곱 개는 후딱 해치운다. 엄마는 입이 짧은 나에게 그래도 세 개는 먹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겨우 하나정도 먹기 일쑤였다. 아버지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만두를 간장 양념에 찍어 크게 한입 베어 물고는 항아리에서 맛있게 잘 익은 아삭아삭한 하얀 동치미 무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으신다. 돼지고기의 육즙과 맛있게 푹익은 신김치와 매콤 짭조름한 간장 양념의 조화로운 맛은 해 질 무렵의 불안의 기운을 잠시나마 제쳐 놓는다.


  아버지의 하나뿐인 여동생은 아버지와 열일곱 살 차이가 난다.

얼굴이 하얗고 꽃처럼 예뻤던 고모는 오십을 조금 넘겼을 때에도 소녀처럼 수줍음이 많았다.

그녀는 책을 유난히 좋아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던 우리 고모. 그녀는 우리 집의 자랑이었다. 어릴 적엔 서울에서 큰 회사에 다니는 고모를 보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가끔 고모가 집에 내려올 때면 밤잠도 안 자고 기다리곤 했다.

막차를 잡아 타고 밤늦게 도착한 새초롬해 보이는 고모는 세련된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높은 구두를 벗어 놓으며 한쪽 눈을 비빈다. 우리 집에 올 때마다 고모는 왜 그런지 항상 콘택트렌즈 한쪽을 떨어뜨리고는 찾느라 정신이 없다. 오매불망 그녀를 기다렸던 나도 그녀의 콘택트렌즈를 찾느라 덩달아 정신이 없었다.

간신히 찾은 콘택트렌즈를 작은 보관함 통에 넣고서야 그녀는 쪄놓은 만두를 주방의 식탁 앞에 선 채로 허겁지겁 간장에 찍어 몇 개 집어먹는다. 국물도 한 두 모금 후루룩 마신다. 그리고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할머니 방으로 들어간다.



  

  어릴 땐 언니만 상대해 주던 고모가 내가 스무 살이 될 무렵부턴 나의 마음과 몸의 피난처가 되어 주었다. 고민이나 어려움이 생겨 그녀에게 말하면 별거 아니라는 듯 피식 웃으며 어린 조카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곤 했다.

나는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를 가끔씩 찾아가곤 했다. 어떤 날엔 갈 길을 잃고 방황하다 발걸음을 돌려 고모가 일하는 광화문까지 뚜벅뚜벅 걸어갔다.

“고모, 나 너무 답답해, 바다가 보고 싶어..”라고 시무룩하게 얘기했더니 주머니가 가벼웠던 나에게 차비를 조용히 쥐어주며 조심히 갔다 오라고 한다. 그날 혼내지 않고 무뚝뚝하게 다독여주던 그녀가 너무 고마웠다. 늘 공감해 주려고 노력했던 그녀는 나에겐 언제나 고맙고 멋진 사람이었다.

무덤덤하고 시크해 보이던 그녀, 속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걸까.

암에 걸려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던 십여 년 동안의 투병 끝에 오십을 반 넘긴 나이에 하늘의 별이 되었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까지도 전화로 아무렇지도 않게 시시콜콜 수다를 떨었었는데 며칠 뒤 고작 한 줌의 가루가 되어버린 그녀를 보면서 사는 게 너무 허망했다. 나중에 한라산에 꼭 같이 가자며 투병 중인 그녀가 오히려 나에게 체력을 길러 놓으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멋진 가족사진을 갖고 싶다며, 내가 있는 곳으로 올테니 찍어 달라고 부탁까지 하셨는데, 그 후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고모는 한 줌의 가루만 남긴 채 어딘가로 돌아가셨다.

이제 그녀는 내가 존재하는 이 세상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그리워한들 더 이상 볼 수 없다. 목놓아 실컷 울어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슬픔은 나의 일상 속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지금도 문득문득 나를 잠식해버리곤 한다.

생전에 자신의 유골함을 고르고 안치될 자리까지 직접 다 하셨던 고모. 그곳에서 부디 영면 하소서.


  어린 내가 당시엔 이해할 수 없었던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사연과 슬픔, 분노가 한데 뒤섞여 빚어 먹은 만두.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불안정해 보이는 그것을 삼키는 것이 못내 내키지 않았던 나에게 만두란 그저 꼴도 보기 싫은 음식 중에 하나였다.

휘몰아치던 모진 풍파가 지나가고 세월이 많이 흘렀다. 엄마는 시어머니로부터 해방되었고, 지나간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오늘 난 혼자 식탁에 앉아 만두를 빚는다. 언제부턴가 무언가에 대한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올 때면 그렇게 지긋지긋해했던, 꼴도 보기 싫었던 만두를 빚곤 한다. 

이렇게 한알 한알 빚고 있자니 그 옛날 초겨울 짧아진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며 붉게 물들인 거실에서, 고모가 온다고 분주히 만두를 빚던 풍경이, 모두가 불행했던 그 시절에 불안정했던 우리 가족에 대한 복잡한 단상이 떠오른다.


고모와 밖에서 만나기도 하고 고모집에서도 살아 봤는데, 생각해 보면 이상하게도 그녀와 함께했던 밥상에 대한 기억이 별로 나질 않는다.



  멀리 한라산을 보며 고모를 생각하는 내 마음 때문일까.

햇빛처럼 환한 그녀는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종종 내 꿈에 나타나 어디를 같이 가자고 한다.


  다음에 꿈 속에서 고모를 다시 만난다면 맛있는 도시락 싸들고 같이 한라산에 올라야지.

그 옛날 밤늦게 도착해 허기진 배를 식탁 앞에 서서 허겁지겁 채우던 만두라도 같이 나눠 먹어야지.

대신에 이번에는 평화롭고 정성스럽게 사랑을 가득 채워 넣은 매콤한 호박 만두와 김치만두를 만들어야지.

그녀와 함께 식탁에 마주 앉아 밀린 수다를 나누며 피어나는 웃음꽃 사이로 예쁘게 빚은 만두를 즐겁게 나눠 먹어야지, 꿈 속에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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