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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밥을 짓는다

밥을 짓다 보면 블라블라

by 와이에이치





나는 매일 밥을 짓는다.

밥을 짓다 보면 자연스럽게 배워지는 것들이 있다.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야 된다는 것, 어느 때엔 조급함이 음식을 망칠 수도 있고 어떨 때엔 마냥 느긋해선 안된다는 것- 대충 했다가는 대충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 요리할 때의 불의 완급조절처럼 살면서도 얼마만큼의 완급조절을 했느냐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진다.


여러 가지 재료를 알맞게 맞추어 적절한 방식으로 음식을 만드는 것이 사전적인 의미의 요리이다. 시간을 들여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여러 가지 반찬을 만들어 매 끼니때마다 식탁에 올린다.

사실 내가 생각하는 요리란 요리하는 사람의 시간과 정성까지 같이 먹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밥을 짓고 요리를 하는 것이 나에게는 인생 최대의 도전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요리에 문외한이었던 내가 이제는 뭐든지 후딱 만들어 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나는 뭔가를 담그는 걸 좋아하고 나눠먹는 것도 참 좋아한다. 이제는 된장과 간장도 직접 담글 줄 알고 매실청도 담가 먹으니 정말 살림꾼이 다 되었다. 이웃들과 친구들과의 나눔은 일상의 작은 즐거움이다. 건강을 위해 시작한 요리 덕분에 진짜로 건강해지고 살도 많이 붙었다. 이제는 편식도 하지 않으며 먹는 즐거움이 뭔지도 너:무 알아서 탈일지경이다.


그런데 친정 엄마는 여전히 나에게 물으신다. 가족도 있는데 밥은 잘 해 먹고 사느냐고-


우리 집에 오시는 날이면 늘 맛있게 잘 먹었다며 꼬박꼬박 인사를 하시더니, 어느 날 통화를 하다가 그런 말을 툭 하시는데 무척이나 아이러니하고 한켠으로는 서운하기까지 했다. 항상 거칠고 아이 같은 우리 엄마랑 통화를 할 때면 요리할 때 불의 완급조절처럼 내 목소리의 완급조절도 필수이다. 한 가정을 꾸린 딸인데도 여전히 잘 안 먹고 아픈 아이로만 생각하시는 통에 한숨을 크게 쉬고 전화를 걸어야만 기분 좋은 통화를 이어갈 수가 있다. 이 마저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보니 되는 것들이다. 이전의 나였다면 분명 다툼으로 끝맺었을 것이 분명하다.


먼 곳에서 사 온 항아리, 보기만 해도 뿌듯한 장담그기





지난해 12월에 겨울방학을 하고 난 후 코로나로 인해 무채색을 벗고 초록을 입은 오월, 아직도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는 딸과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만 보내야 하는 상황들로 복닥복닥 아이들과 밀도 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 가족은 각자의 영역을 정해서 열심히 밭을 가꾸는데 에너지를 쏟고 있다. 삼시 세 끼 차려먹는 밥상에 엄마의 심적 여유만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식탁이 될 텐데 아이들한테 조급한 엄마여서 미안한 요즘이다.


밥을 지으면서 자연스럽게 알아지던 개똥철학들이 적용되지 않을 때가 많은 요즘, 생활 방역으로 전환되었다 하더라도 안심할 순 없는 상황에서 나도 숨좀 쉬게 가끔은 남이 해준 밥이 먹고 싶다. 언제쯤 안심하고 편하게 외식할 날이 올는지.. 그래도 힘을 내어 한번 기지개를 켜고, 냉장고에 쟁여둔 열무랑 얼갈이를 꺼내어 다듬어야겠다. 빨리 김치를 담그고 저녁엔 오랜만에 딸아이가 특히 좋아하는 월남쌈을 해줘야겠다.



딸아이 텃밭의 미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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