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담는 나의 오브제
어릴 적 대가족의 한 구성원으로 살 때에는 많은 식구들 때문인지 대부분은 멋없고 예쁘지 않았던, 따뜻한 정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것처럼 밉살스럽고 차가워 보이는 스뎅(스테인리스) 그릇에 밥과 국을 먹었다. 먹다 보면 금방 식어 버리는 그 그릇에 담긴 음식들, 뭐든지 느린 꼬맹이였던 난 언제나 끝까지 먹지 못했다.
엄마가 시집올 때 해 온 꽃무늬가 들어간 접시들이 가끔 사용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특별한 날이나 명절에만 쓰였고, 일상적으로는 아무런 영감도 주지 않는 막접시 같은 것들이 쓰였다.
나는 찬장 속에 박혀 있던 예쁜 그릇들이 특별한 날에만 쓰이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수학여행을 가거나 서울 나들이를 가면 인사동에 들러 그릇이나 술잔 같은 것들을 사 오곤 했다. 늘 힘든일을 하시는 우리 아버지가 예쁜 잔에 담긴 술을 드시면 당신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실 거라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학생이라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하였으니 최대한 개성 있는 것으로 골랐을 것이다. 열아홉 살 이후로 대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서울에서 나의 시간을 살며 고군분투했다. 그렇게 흘러 흘러 내 나이 마흔을 조금 넘긴 지금에도 그 그릇이랑 술잔들은 여전히 친정집 주방에서 종종 쓰임을 다하고 있다.
아까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우리 집에 있는 그릇들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그다지 많지 않은 내 그릇들. 값이 꽤 나가거나 그렇게 훌륭한 것들은 아니지만 대가족과 어울려 살 때보다는 그 나름대로는 기품이 있다.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저마다 이야기가 있고 나와 함께했던 추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내 소중한 그릇들-
나는 일상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좋은 것들을 쓰려고 노력한다. 특별한 날은 중요하지 않다. 살아있는 매일매일이 특별한 날의 연속 아닌가.
단아한 공기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고슬고슬한 밥을 담고, 적당히 소박한 접시에 끼니때마다 열심히 만든 요리들을 정갈하게 담아 가족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아이들과 남편의 입이 오물오물 한껏 바빠지고, 맛있게 먹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힘들어도 언제나 무한한 행복감을 느낀다. 마치 먹을 때 귀한 시간을 함께 먹는 것 같다.
나한테 그릇은 그런 존재이다.
마음의 풍요를 가져다줄 수 있는, 평범한 일상 속의 아름다운 오브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