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마음이 슬픈 느낌인 것 같다고 한다.
이유는 없는데 그냥 울고 싶다고 한다.
요즘에 자주 그러는 우리 따님,
학교에서 돌아오면 사랑에 굶주린 아이처럼 따뜻한 포옹이 필요해 보인다.
오줌이 마려워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네 살배기 동생의 바지를 재빨리 내리고 그를 있는 힘껏 들어 올려 변기에 앉히고는
“누나가 이렇게 힘든 거였어, 엄마?”
작은아이가 소변을 보는 동안 욕실 문턱에 털썩 주저앉은 큰애는 고개를 떨구듯 말하더니 이내 환하게 웃어 보이며 나를 올려다본다.
우리 따님, 참 안쓰럽다.
어느 날 풀이 하도 빨리 자라서 포기하고 방치해 두었던 밭엘 갔더니 거기에 예쁜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너무 예뻤지만 유난히 많이 자라 있던 터라 조금만 남기고 뽑아야만 했다.
가녀린 예쁨에 가려져 아무런 의심 없이 한움큼 잡았는데 목장갑을 뚫고 느껴지는 따끔한 가시에 뜨악했던 기억이 난다.
야생에서 씩씩하게 자라나는 가시엉겅퀴.
가시 돋친 핑크색의 여리여리한 야생화는 지금 너의 아홉 살과 어딘가 많이 닮아있다.
다독여주고 싶은 마음에 나의 아홉 살을 떠올려 본다.
답답하고 울적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이유는 많지만 표현에 서툰 아홉 살이 설명할 수 있는 건 딱히 없던 것 같다. 낮에도 쓰고 저녁에도 썼던 일기, 나는 일기를 많이 썼다.
아파서 출석률이 저조했지만 잠깐씩 갔던 학교에서 일기상도 받아왔다.
고사리같이 작은 손에 힘주어 잡은 큰 연필로 어떤 이야기들을 꾹꾹 눌러 담아 썼을지 한 장 한 장씩 넘기며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내 아이의 일기장은 고이고이 간직해 뒀다가 나중에 꼭 줄 테다).
짐작컨대, 유아기에서 벗어나 십 대로 가는 길목에 선 우리 따님, 아마도 긴 터널의 시작인 거겠지. 어째야 할지 모를 당황스러움, 자라고 있는 마음을 담을 더 커다란 그릇이 필요한데 지금은 그 마음을 담을 그릇이 부족해서 일거야. 괜찮아.
아기 때부터 하트를 유난히 좋아했던 따님, 그림에 편지에 휴대폰 문자에 빠지지 않는 하트, 어느 날 하얀 포스트잇에 생각 많은 우리 아홉 살 따님이 적어놓은 글이 그녀의 책상 위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우리의 인간은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랑과 배려가 넘치는 따님의 따뜻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멋진 글이 나의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데워준다. 마음이 크려면 아직 한참 먼 어른인 엄마도 많이 서툴고 잘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믿어, 그냥 지금처럼만 하면 돼. 안쓰럽지만 빛나는 너의 아홉 살과 앞으로의 널 응원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