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과 장대하게 펼쳐진 각양각색의 구름, 한 번씩 내 몸을 휘여 감고 사라지는 차갑고 상쾌한 바람, 벌써 가을이다. 따뜻한 햇살에 반짝반짝 빛이 나는 풀잎들 사이로 드리워져 흔들리는 초록 위에 겹쳐진 겹겹의 까만 그림자들. 평온한 듯 보이는 내 일상에도 햇빛에 가려져 그늘지고 바람에 흔들려 펄럭이는 초록 위에 겹쳐진 겹겹의 그림자들처럼 어두워지는 내 속을 어찌할 수 없는 요즘이다.
보람을 느끼며 나름 즐겁게 해오던 일들이 어쩐지 다 힘에 부치고 버겁게 느껴진다.
무슨 일을 하든 금방 지친다.
해야 할 일들은 태산인데 다 제쳐두고 그냥 가만히 쉬고 싶기만 하다.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건지 잘 모르겠다.
사실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일지도.
감정이 메말라 없는 것 같다가도 좋은 음악, 바람 한점, 집안으로 들어오는 햇살 그리고 아이들의 말이나 웃음소리에 마음속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되살아난 감정들이 요동을 친다.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는 반증이니 다행인 걸까.
이런 내 마음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익숙해진 책임감으로 해야 할 일들을 꾸역꾸역 해내며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요즘 같은 때에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
아마도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격려인 듯하다.
햇볕에 반짝반짝 빛나는 나뭇잎이나 들풀처럼 나도 어디에서나 빛이 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을이어서 일까.
자꾸만 마음이 삐뚤어진다.
마음만 먹으면 마스크 없이도 어디든 갈 수 있었던 꿈같던 옛날이 그리워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