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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Jan 07. 2019

서운함도 여행의 일부인 것을

아이슬란드를 코앞에 두고 루턴 방랑기

딱 요청하는 만큼의 그러나 정확하게 친절했던 에어비앤비 호스트와 인사를 하고 루턴 중심가로 나왔다. 이 동네에서 버스를 5번은 탔는데 다섯 번 모두 요금이 제각각이어서 혼란스럽다. 루턴 타운스퀘어에는 기대도 안 했지만 역시 별 게 없다. 서양권 작은 동네들 타운스퀘어 다 비슷하고 별거 없는 것 좀 귀엽다고 생각해 :)



하얗게 구름끼고 스산하게 추웠던 어제와 달리 해가 당당하게 떠있는 새파란 하늘이 야속하다. 왜냐면 나는 거대한 캐리어를 들고 별거없는 타운스퀘어에서 할 것도 갈 데도 없는 한심한 여행자이기 때문이다. 루턴 기차역이 마주보이는 자그마하니 귀여운 스타벅스에서 3시간, 여행용으로 가져온 책을 이틀만에 다 읽었다.

루턴 공항에선 온라인 사전체크인을 깜빡해서 줄 한참 더 서고 오만원 더 냈다. 내 불찰이라 할말 없지만 정확히 세 시간 전에 온라인 체크인을 시도했다가 마감시간에 1분 차로 실패해서 괜히 억울하다. 내 앞사람은 나랑 똑같은 상황인데 돈 안 낼려고 한참을 실랑이를 벌이느라 기다리는 것은 좀 열불난다. 저는 말 잘 듣는 착한 동양인이랍니다 (자괴감) 어서 제 돈을 받고 체크인을 해주세요.


지난 번 루턴 공항 이용했을 땐 바로 보안검색하고 게이트로 가버렸더니 게이트 쪽에 제대로된 카페나 가게가 없어서 말라빠진 샌드위치 하나 사들고 게이트 앞 의자에 앉아 기다렸었는데, 그때 생각하며 검색대 들어가기 전에 바글거리는 카페에서 억지로 시간 떼우고 들어가보니 공항 내부가 싹 바껴서 창밖도 잘 보이는 좋은 자리의 카페들이 많았다. 오늘은 정말 서운함 투성.


내가 여행중인 줄 아는 지인들이 안부를 물어온다. 그래도 재밌게 다니고 있다고 하면 자기기만 같고, 그렇다고 하나도 재미없다고 하면 배부른 투정 같아서 너무 최악만 말하지 않고 또 너무 행복한 척하지도 않으려고 애쓴다. 떠나왔다는 자체로 즐겁기도 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지루하기도 한 여정.

아이슬란드 가는 비행기는 이미 연착되서 한참을 기다렸는데, 또 직원이 와서 항공기 문제로 기다려야 된다는 소식을 전했다. 사람들 떠드는 소리에 묻혀서 잘 안 들리고 마지막에 "오늘 안에는 갈거에요!" 라고 했는데 사람들이 다 "오늘 안에는?????" (그걸 말이라고 해?) 하고 따라 말하며 한마음으로 분개했다. 하늘 위에서 석양을 보며 비행 후 (석양을 더 잘 보려면 왼쪽과 오른쪽 창가 중 어느 쪽에 앉아야 할까 성심껏 고민했던 부푼 마음은 누가 달래주나요) 레이캬비크의 저녁 거리를 걸으며 신나려던 나의 큰 그림은 또 이렇게 무산되고, 배터리 없는 자의 초조한 기다림이 시작된다.

런던에서 너무 지쳤었는지, 아이슬란드 가는 비행기에서 이륙을 기다리며 '아이슬란드에서는 즐거울 지도 몰라!' 하고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다가 문득 눈물이 나버리고 만다. 파리에서 인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생리통에 체끼에 거의 넋이 나가 있는 내 손을 주물러주던 친구가 생각났다. 그 마음이 다 어디 갔을까. 그때 만약 적당한 거리를 계속 잘 유지했더라도, 그 따뜻함을 오래오래 누릴 수는 없었겠지.

멋지고 좋은 걸 보고 행복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슬픈 기분이 먼저 들까봐 지레 겁이 난다. 예쁜 걸 보고도 예쁜 마음이 들지 않으면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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