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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Nov 06. 2019

게으른 완벽주의자는 침대를 떠날 수 없지

완벽하고 싶지만 완벽하게 완벽주의자는 아니야

지난 글을 쓰고 나서 재미있는 기분을 느꼈다. 나의 빌어먹을 자기검열과 함께 완벽주의가 발동해서, 글을 다 써놓고 읽어보니 '가만, 내 인생이 망했다고 쓸 정도로 정말 완벽하게 망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웃음이 났다. 이 생각을, 머리로 알면서도 체감하지는 못해서 매일 침대에 누워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못말리는 완벽주의 성향 덕에 내 인생을 다시 한번 긍정적으로 재고해볼 수 있게 되었다. 이 무슨 아이러니람!


이참에 내 삶을 말아먹었다고 느끼게 된 데에 일조한 나의 턱없이 높은 기준, 완벽주의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어졌다.




나는 완벽주의자다. 그래서 완벽하게 살면 좋겠지만, 완벽해야 되는데 완벽하지 못해서 침대 위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 울기나 하는 우울한 완벽주의자. 완벽하게 해낼 자신이 없어서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는 겁쟁이 완벽주의자. 완벽하게 해낼 만큼 노력하기는 귀찮아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 


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 그러니까 실은 마음만 완벽주의자. 그러니까 결국 완벽한 완벽주의자는 아닌 것이다. 완벽주의자가 되는 것에도 당연히 완벽한 기준이 필요한 것인데, 나는 역시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세상에 완벽한 완벽주의자가 어디 있겠으며 마음만 완벽주의 성향이 아예 없는 사람도 있을까 싶지만서도, 나는 유독 그런 성향이 강하고, 또 극복하지 못했다고 느낀다.  나는 마음만 완벽주의자라서 완벽하지 못한 스스로를 책망하고 게으른 나 자신을 혐오한다. 


게으른 완벽주의자는 어떤 일을 좀처럼 시작할 수 없다. 적어도 엄청나게 오래 걸린다. 가장 완벽한 상태를 상상해놓고선 난 저렇게까지 할 수 없을 거라며 미리 좌절해버린다. 야심차게 연재하겠다며 썼던 지난 글에 이어 이 글을 쓰기까지 한 달이나 걸린 것도 다 이 빌어먹을 완벽주의 때문이다. 이왕 마음 잡고 쓰기 시작했으니 가장 완벽한 구성으로 연재를 이어나가고 싶어. 하지만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포기할래. 보통 이런 식으로 글을 쓰다 마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 연재가 완벽하기 위해 첫 번째 글 이후에 어떤 순서로 글을 이어나가야 할지 고민했다. 내가 망했다고 생각한 삶의 우울한 구렁텅이 안에서도 어떻게 솔직한 글이라도 써볼 용기를 낼 수 있게 되었는지 설명해야 할까? 내 인생이 망하기 시작한 계기라고 생각하는 일들을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간 순서로 써나가야 할까? 잔잔히 망한 인생에서 가파르게 고꾸라진 최근의 사건들에서부터 시간을 거꾸로 타고 내려가야 할까? 도대체 어떤 구성을 잡아야 좀 더 완벽한 연재 구조를 만들어 쓸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마음에 드는 완벽한 연재를 하려면 사실 둘 중 하나다. 1. 정말 열심히 고민하고 글감들을 쭉 모아놓고 세밀하게 계획을 세울 것 2. 일단 뭐라도 쓰기 시작할 것. 1번은 게으르기 때문에 절대절대 자신이 없고 2번은 역시 나의 완벽주의 성향이 가로막는다. 뭐라도 쓰기 시작했다가 도중에 글들이 엉켜버릴까 불안하고, 지금이야 '안 쓰는 것보다는 일단 뭐라도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다 언제 갑자기 '아 마음에 안 들어!' 하며 다 뒤집어 엎어버리고 내팽개치게 될까 불안하다. 좋게 말해야 완벽주의지 사실 그냥 끈기가 없을 뿐이잖아? 뭐, 맞는 말이지. 얄궂게도 끈기도 나 자신에 대한 믿음도 없다. 


무엇을 하든 이 공식은 똑같이 적용된다. 나의 완벽한 기준에 부응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하기는 좀 귀찮다 (애초에 그 기준은 부응할 수 없이 높디높게 설정되어 있으니) - 어차피 완벽하게 할 수 없으니 대충한다 - 완벽하지 않은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 결과를 다시는 쳐다도 보지 않고 외면한다. 나의 애매한 불행은 이렇게 적당히 대충했을 때 종종 평균 이상의 결과를 얻곤 했다는 것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또 고민해보지만 그건 다른 기회에 다시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




지금은 마치 아무런 의욕도 욕심도 야망도 없는 사람처럼 굴고 있지만 사실 나는 궁금한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결코 적은 편은 아니었다. 욕심이 많아서 잘하고 싶은 게 많은데 잘하기 위해 노력하기엔 너무 게으르고,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아직 완벽하게 잘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너무 짜증이 나기 때문에 늘 생각만 하고 실천해본 적은 별로 없다. 상상력은 또 어찌나 좋은지 무언가를 했을 때 실패하거나 포기하는 상황을 떠올려보다가 시도하지 않는 게 부지기수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엔 영화 수입사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또 '그 정도로' 영화를 좋아하나 싶어 기가 죽고 말았다. 다른 직업군에 비해 또 이 업계는 유독 영화에 삶을 다 바친 것 같은 열정맨들이 많아 보였다. 주위 친구들보다는 늘 영화를 많이 알고 보고 좋아하는 축에 속했지만, 정말 매니악한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열정도 지식도 한없이 모자랐다. 게다가 내가 수입사에 들어가고 싶어할 만큼 영어를 잘하나?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영어도 잘하는 축에 속하긴 하지만 업으로 삼기엔 한없이 모자라 보였다. 그렇다고 영화 공부를 더 하고 영어 공부를 더 하자니 내가 너무 게으르다는 말은 그만해도 되겠지. 아무튼 나 자신이 세운 높은 기준에 턱없이 못 미친다고 생각한 나는 당연히 면접을 잘 볼 수가 없었고 매번 자신감 없는 태도로 몇 번 보지도 않은 면접을 말아먹었다. 그리고 고작 몇 번 시도해보고 안 된 것을 나는 나의 실패로 받아들이고 포기해버렸다. 


실패하거나 포기했을 때 그냥 '실패했구나' '포기해버렸네' 하고 담백하게 실망하고 툴툴 털고 일어나는 것 역시 내가 잘 못하는 것 중 하나. 당연히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자의식이 강해서인지 나는 "또 포기해버렸어, 역시 나는 실패자야...." 하면서 나 자신에게 유독 크게 상처받고 도망쳐버린다. 포기하고 실패한, 그러니까 '완벽하지 않은 나'를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대체 나 자신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신으로 태어났어야 했나?


스스로 한없이 모자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건 정말 거지 같은 일이다. 스스로를 좋아할 수 있을 리 만무하며, 나아가 끊임없이 검열하고 혐오하게 되기 마련이다. 자신감이 있을 리 없고, 쉽게 위축된다. 위축된 사람을 귀신같이 알아보는 사람들은 이때다 하고 위축된 사람을 이용해먹거나 아주 매몰차고 못되게 억눌러버린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인 것 같다고 느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점점 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러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다. 


내가 어쩌다 이런 성격을 갖게 되었고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되레 강화하기만 하며 살게 되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통제와 규제가 강했던 부모 밑에서 자랐기 때문일까? 그냥 살다 보니 다소 병적인 증세가 강해진 걸까? 원래 그런 성격을 가지고 태어났나? 나도 너무 궁금하지만 알 수 없다. 원인을 파헤쳐 완벽한 답을 찾기엔 너무 게으르니까..!




지금 이 글이 이렇게 지지부진 길어진 것, 그리고 다소 맥락 없이 끝나버린 것은 내가 완벽한 표현을 찾지 못해 구구절절 설명해버렸기 때문이다. 완벽한 표현을 찾으려는 노력은 일찍이 포기. 어차피 진짜 완벽하게 완벽할 순 없을 테니 대충 흘러가는 대로 썼다. 퇴고를 하려면 모든 걸 갈아엎고 싶은 심정이 되기 때문에 나는 퇴고도 하지 않는다. 퇴고하기 귀찮아서 하는 변명이다. 그리고 대충 쓴 글을 나중에도 대충 쓱쓱 읽어보다가 시간이 지나면 이 글을 영원히 창피해하며 다시는 열어 읽어보지도 않겠지. 


사실 이건 다 그냥 게으른 자의 자기변명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제일 열심히 비난하며 살아왔으니까 너무 쓴소리 말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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