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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Dec 18. 2019

나를 살린 팔 할은 코르셋?

그렇다고 코르셋이 옳다는 말은 아니야

지금 내가 어느 정도의 외출을 하고 이런 글도 쓸 수 있게 된 건 조금 과장하자면 다 코르셋 덕이다. 어쩌면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를 숨 막히게 조여오던 그 코르셋이 올해만큼은 나를 살린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코르셋 같은 게 없었다면 애초에 이만큼 불행에 빠져들지도 않았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지금은 결과적으로 그렇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코르셋을 옹호할 마음이 추호도 없고 아주 분명하게 반대한다는 사실을, 조금 모순 같아 보이지만 분명히 하고 싶다.




코르셋이 나를 살렸다는 것은 이런 거다. 


앞서 썼듯이 나는 나이 서른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우울과 무기력에 빠져 그냥 뒤로 나자빠져버렸다. 이렇게 살기는 싫지만 이렇게 안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알아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이다. 머리로 아는 방법들은 현실의 내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느껴지는 일들이 아니었다. 다시 말하지만, 전화를 걸고 받고, 사람을 만나고, 외출을 하는 일조차 힘든 상태였으니까.


어려서부터 코르셋 강박이 심해서 화장을 좀 덜했다고 느껴지거나 예쁜 옷을 입지 않은 날에는 고개를 푹 숙이고 다녔다. 그런 경향의 연장선상으로, 바닥을 친 상태에서 외모까지 망가지면 집 밖으로 나가거나 사람들을 만나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질 것 같았고, 그러면 정말 방에 처박혀 아무것도 못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모든 게 다 망가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이 느껴지는 시기에도 마음 한 켠에는 실낱같이 강박 한 줌을 꽉 쥐고 있었던 것이다. “외모까지 망가지면 정말 끝이다”. 외모에 대한 강박은 나를 평생 잔잔히 옥죄어 왔지만 이때만큼은 일종의 희망처럼 보였다. 


한국에서 여자한테 덮어 씌우는 한계와 유리천장 아주 선명하다는 사실은 나를 평생 좌절시켜 왔는데, 정말 밑바닥을 찍었다고 느끼고 나니 그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나는 엉망이었다. 세상은 여자의 능력에 큰 기대가 없으니까 여자는 일단 어느 정도 예쁘기라도 하면 어느 정도 살 수 있겠지(이건 우습게도 나의 부모님이 버리지 못한 기대이기도 하다), 시집이라도 잘 가봐야지(퍽이나?), 어차피 다들 결혼하고 애 낳고 나면 비슷해질 테니까 그때까지 대충 버텨보자, 하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주문처럼 외웠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망가져있을 때 했던 망가진 생각들이다.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다. 안 그래도 우울하고 무기력할 일이 많은데 몸까지 아프면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핑계(?)로 사람들에겐 ‘건강을 되찾기 위해'라고 말했고, 스스로는 건강 반 코르셋 반이라고 우기고 있었지만, 실은 코르셋이 좀 더 높은 비중을 차지했을 것이다. 물론 나는 대단한 미인은 아니지만, 특별히 모난 데 없는 나의 외형적 특성들은 나에게 아무런 기반이 없다고 느껴지는 상태에서 유일하게 내세워볼 수 있을 법한 가능성을 가진 무언가로 보였던 것이다. 매일 낮에는 방에 누워서 지내다가 밤이면 슬쩍 기어나가 요가를 했다. 나의 유일한 활동, 유일한 희망이었다.


달리 하는 일도 없이 저녁에 요가만 하자니 자연스레 몸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사실 그것도 코르셋처럼, 한국의 미적 기준에 준하는 몸에 대한 관심이 더 컸을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여성스럽지 못하게 어깨가 떡 벌어졌지? 다리가 좀 짧은 것 같은데? 허리가 너무 두껍지 않나? 그런 고민을 하며 운동을 하던 차에 몸에 어떤 통증이 느껴져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 어디가 부러졌다거나 염증이 생겼다거나 하는 게 아닌 오직 기능적인 문제였다. 바르지 못한 자세와 움직임에서 오는 통증을 치료하며 병원에서 처방받은 운동을 했고, 그러다 보니 내 몸을 좀 더 기능적 측면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어떤 뚜렷한 목적성을 갖고 운동을 하니 나의 목적에 따라 몸이 거짓말처럼 바로 변하는 게 느껴졌다. 


몸의 변화가 느껴진다는 사실이 퍽 즐거웠다. 사실은 정말로 신이 날 정도였다. 아주 더디 걸리더라도 어느 정도 내 힘으로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전에 없던 어떤 능력을 갖게 된 것 같았다. 어느 날 요가 수업을 듣는데, 짧은 명상 시간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몸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되면 자존감이 정말 높아진다고. 그러면 세상에 무서울 게 없어진다고.


"몸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되면 세상에 무서울 게 없어진다." 

지금은 이 말을 동아줄처럼 붙들고 요가를 한다. 내 몸을 겁내지 않고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되면 나 자신을 조금 더 믿을 수 있게 될까. 나 자신을 믿고 나면 세상을 조금 덜 무서워하며 살 수 있게 될까. 전에 없던 기대감과 희망 같은 것이 마음 깊숙한 구석에서 스멀스멀 삐져나왔다. 


그런 거창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실은 그냥 몸을 움직이는 일이 즐거워졌다. 이 우울의 구렁텅이에서 즐거움이라니. 흑백의 세상에서 색종이 한 장을 찾아낸 것처럼 기뻤다. 즐겁게 몸을 움직이다 보니 조금씩 잘하게 되었다.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언가를 잘하기도 한다는 사실이 눈물 나게 반가웠다. '가녀리고 조신한 여자'가 되기 위해 오랫동안 속박해왔던, 좀처럼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늘 놀이터에 나가 놀았던 어린 시절의 내가 튀어나온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지금 내가 운동하는 목적은 더 이상 미적 기준에 달하는 예쁜 몸이 아니다. (물론 아주 0이라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겠지만.) 내가 내 힘으로 온전히 컨트롤할 수 있는 건강한 몸을 갖기 위해서다. 그리고 무기력해지는 시기가 와도 체력 핑계는 대지 말자고 다짐한다. 그렇게 댈 수 있을 만한 핑계들을 하나씩 제거해나가다 보면 핑계가 필요한 일도 줄어들지 않을까. 우울의 구렁텅이를 아주 빠져나가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지금은 뭔가를 할 수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비로소 든다. 


언젠가 이때를 돌아보며 씁쓸해할 날도 오겠지만(사실 지금도 적잖이 씁쓸해하고 있다), 그럼에도 어떤 불온(?)한 목적이었을 지라도 어쨌든 다시 살아보려고 애쓰는 나 자신에게 감사하기로 한다. 미국 작가 멀리사 브로더의 말처럼, '살고 싶어 했던 나 자신 덕분에' 내가 지금 살아 있으니까. 아주 잠깐이나마, 조금의 씁쓸함도 없이 온전히 칭찬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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