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무 Jul 24. 2020

선생님 저는 우울증일까요?


심리상담도 받고 약물치료도 하고 있지만 아무도 저에게 '아무 씨는 우울증이에요' 라고 말해주지 않으니 감히 우울증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저는 그냥 게으른 사람, 무능한 사람, 나약한 사람이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우울증은 뭐랄까, 우울할 이유가 없는데도 우울해야 정당한(!) 우울증처럼 느껴지거든요. 저는 그냥 우울할 만한 처지를 비관하는 사람일 뿐인 게 아닐까요? 


어떤 날은 제가 너무 오래오래 우울해서, 그러니까 저는 열 살 때부터 밤마다 울면서 살고 싶지 않다는 일기를 써내려가던 아이였는데, 그래서 정상적인 상태를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 또 어떤 날은 사실 우울증이 아니고 그냥 천성이 게으르고 겁이 많고 나약할 뿐, 근데 성장하면서 그걸 극복해내지 못해서 주저 앉은 못난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마음 한 켠에선 전자 쪽을 믿고 싶다가도 늘 후자 쪽의 목소리가 훨씬 더 크고 강한 어조로 치고 나와 이겨버리긴 하지만요.


심리상담센터를, 정신의학과를 찾아가기 망설였던 이유 중 하나는 역시 '우울증이 아니라 그냥 내가 겁쟁이, 게으름뱅이, 혹은 씹쌔끼인 거면 어떡하지'와 '우울증을 고치고 나면 그냥 우울하지 않은 겁쟁이, 게으름뱅이, 혹은 씹쌔끼일 뿐인 게 아닐까' 하는 고민이었어요. 어쨌든 항우울제를 처방 받아 먹기 시작했으니 우울증이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요? 치료가 얼마나 걸리는지, 어떻게 얼마나 괜찮아질지 저는 아직 모르지만 뭔가가 나아지겠죠. 나아지면 저는 겁이 덜 많고, 덜 게으르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그저 제가 겁이 많고 게으르고 씹쌔끼라는 사실에 대해 우울해하지 않게 되는 걸까요? 가끔은 아주 짧지만 절실하게, 그렇게라도 죄책감과 자괴감 없이 살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역시 그러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 우울을 고치기 더 어려운 지도 모르죠.


분명히 나아지고는 싶은데, 과거와 현재의 저를 비난하고 비관하지 않으면서 더 나은 나를 꿈꾸며 나아가는 방법을 모르겠어요. 전혀 모르겠어요. 선생님은 늘 자신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해해줘야 한다고 말씀 하시지만, 저는 그게 어떤 느낌인지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어요. 비난이 아니면 못해도 겨우 동정인데요. 


선생님 저는 우울증일까요?

그건 언제부터였을까요?

제가 우울증이라면, 우울증을 고칠 수 있다면, 저에게서 우울을 빼고 난 뒤엔 대체 뭐가 남을까요?

뭐가 남긴 할까요

작가의 이전글 나를 살린 팔 할은 코르셋?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