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선 전철
4호선 전철을 타고 출퇴근한 지 7년이 넘었다.
환승하는 시간을 빼고도 4호선 타는 시간만 1시간이 넘는 통근 길이다. 세월에 따라 출퇴근 전철 안 모습도 변했다. 우선 쩍벌남이 사라졌다. 다른 시간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출퇴근 시간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실 1~2년 전만 하더라도 쩍벌남들이 가끔 출현했다. 멸종 직전의 쩍벌남들은 잠이 들어 다리가 벌어졌더라도 내쪽에서 살짝 움츠리면 바로 다리를 오므리곤 했다. 이젠 모두 멸종되어 그런 실수도 찾아보기 어렵다.(그 대신 팔벌족들이 출현한 이야기는 다음에 소개하겠다.)
마지막으로 몰상식 쩍벌남을 만난 게 약 1년쯤이다. 퇴근 시간이었는데, 옆자리에 앉아 다리를 벌리고 앉은 뒤 내가 움츠러들 때마다 그 영역을 침범해 들어왔다. 혼자서는 다리를 좌석에 붙일 힘이 없거나, 살면서 한 번도 타인의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여보지 않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다리를 움츠러 비키는데도 그는 내 좌석의 거의 1/3을 침범해 들어왔다. 그는 자리를 침범하면서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그 통화 내용 역시 남의 좌석을 침범하는 내용이었다.
사실 나는 오랜 전철 생활로 쩍벌남들을 대처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가지고 있다.(나중에 소개하겠다. 근데 쩍벌남이 사라져 이제 그 방법이 별 쓸모가 없게 되었으니.... 아쉽다고 해야 할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소극적 방법부터 적극적 방법까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날은 쩍벌다리를 피해 한쪽으로 오므리는 기초 중의 상 기초 기술 이외에는 쓰지 않았다. 계속 일이 많아 피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화를 마친 그 쩍벌남이 일어나면서 갑자기 나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닌가?
'내가 뭘 어쨌다고 깜짝깜짝 놀라면서 옆으로 가는 거냐?'고 하면서, 아무 말 않고 앉아있는 내게 거의 1분 동안이나 고성을 쏟아냈다.(그 1분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창피하기도 하고 화도 났지만 이쯤에서 그냥 내려주기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 막말이 선을 넘으면 나도 대꾸를 시작해 법에 호소해보겠다는 생각, 내 시간과 정신과 노력과 감정을 더 이상 쓰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 등등.) 나는 아무 말 않고 손가락을 가지런히 모아 내가 앉은 좌석을 가리켰다. 1/3이 비어있는 내 좌석의 실상을. 쩍벌남은 그게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는 것 같았지만 고성을 듣고 사실관계를 궁금해하는 승객들이 사태 파악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쩍벌남이 내리고 나서 나는 창피하기도 했고 그를 피해 움츠리느라 피곤하기도 해서 바로 눈을 감았다. '창피해서 두근거린 게 바로 몇 분 전인데 이렇게나 빨리 심장박동이 가라앉다니… 이게 바로 그 쩍벌남에 대한 진정한 복수일 거라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