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숙명- 근본적인 공포
융학파의 일원인 제임스 홀리스는 그의 저서 '남자로 산다는 것'에서 이렇게 말했다.
남자의 비밀 중 하나가 "남성의 삶이 근본적으로 공포의 지배를 받는 것"이라고.
'가족을 부양하는 것 외에도, 크면 군인이 되어 어딘가 낯선 나라에서 적군을 죽이거나 내가 죽거나, 아니면 고문 당해 불구의 몸으로 고향에 돌아오는게 내 운명이라고 굳게 믿었고, 무서운 운명과 마주칠 모습을 상상하며 긴긴밤을 지새우곤 했다. 대공황을 경험한 어른들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불안감에 빠진 것처럼, 세계대전 시절을 떠올리는 이라면 당시의 무섭고 불안한 기억을 되새기며 공포에 몸서리칠 수밖에 없다. 내가 살던 곳은 전쟁의 참화와는 동떨어진 미국 중서부였지만, 사방은 여전히 전투지역 투성이였고 모두가 두려움에 떨었다.'
마치 2차 세계대전 시절의 이야기 같지만, 이 책은 1994년에 발행되었다. 세계대전이 지난 지 50년이 지났고, 세상은 전례없이 평화를 누리던 때였지만, 남성들은 평화로운 상황에서조차 전쟁에 버금가는 공포를 느끼는 것 같다.
비교적 안정적인 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 사립대의 종신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친구가 "나는 나를 둘러싼 상황이 늘 전쟁통이라는 느낌으로 살고 있다.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 항상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고, 매일 매일 벌어지는 전투를 수행해야만 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절친인 20년지기 동료교수와의 관계조차 전쟁과 전투로 점철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남성은 공포에 지배 당하며, 자신이 쥐고 있는 것들을 놓쳐버릴까봐 자신에게마저 이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걸로도 모자라 비웃음을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다른 남성들과도 이를 공유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이를 보상해야 한다. 남자가 대형차를, 넓은 집을, 또는 높은 지위를 자랑한다면, 자신이 왜소한 존재라고 느끼는데 대한 보상심리에서 나오는 행동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값비싼 점심식사를 즐기거나 타인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거대지향 콤플렉스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실은 진정한 힘이 있어야 할 자리를 유치한 방법으로 메꿀 뿐이다."
이책을 읽기 전까지 '숙명'이라는 표현은 여성의 전매특허라고 생각했다. 여자의 숙명 이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남자의 숙명이라거나, 남성의 운명이라는 말은 어쩐지 낯설었다. 하지만 공중파 방송국의 임원인 동창에게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남성의 숙명에 대해 달리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았다는 장모님의 전화를 받고서, 직장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와이프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향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기쁨보다는 이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그대로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수십년 우정을 나눈 사이가 아니라면, '뭐 이런 무책임한 XX가 다있어?'라고 밀쳤겠지만 나는 이 친구의 고백을 소중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이어 말했다.
"이세상을 살아가는데에 남성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 뼈저리게 느껴. 일상생활을 할 때나 부부싸움을 할 때, 여성의 뿌리 깊은 안정성을 보고있노라면 부럽다 못해 참담하기까지 해."
영화계를 주름잡으며 여러번 혼인을 했던 영화배우 김지미가 심장병의 세계적 권위자인 이종구박사와 헤어진 뒤,
“나이 많은 남자, 어린 남자, 능력있는 남자, 다 살아봤지만…… 남자는 다 어린애고 부족하고 불안한 존재더라”라고 했다는 말을 들은 내 주변의 남성들은 하나같이 박수를 치면서 동의했다.
이러한 남성의 근원적인 불안에 대해서는 미국 정신치료계를 이끌고 있는 어빙 얄롬 박사도 한마디 거들고 있다.
"편안함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정서가 나의 젊은 시절을 괴롭혀왔다. 객관적으로 보면 나는 훌륭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을 했고, 의과대학에 합격했고, 모든 면에서 잘 해내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속 깊게는 조금도 편안하지 않았다. 한번도 자신감을 가지지 못했고, 나의 불안의 근원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다."(어빙 얄롬, 비커밍 마이셀프)
내가 존경해마지 않는 얄롬박사마저 불안함이 평생의 화두였다는 고백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불안한 것인지, 아니면 어떤 매카니즘의 영향으로 불안이 아닌 것을 불안으로 느끼도록 되어 있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천성적으로 불안을 잘 느끼지 않는 나로서는 인생의 전반을 불안속에 살았다고 하는 남자들의 고백은 놀랍고도 짠하다.
많은 심리학 권위자들이 이 불안의 근원을 파악하려고 애썼으나 별 소득은 없었다. 프로이드도 이에 대해 성적 욕구 혹은 무의식의 추동으로 해석하려했으나 일관된 결론을 얻지는 못했다.
얄롬조차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그 불안을 참는 법을 배웠다."
결론은 없다. 다만, 불안(특히 남성의 불안)을 파헤치는 자가 정신치료계의 일가를 이루리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