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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끝 햇살 Apr 14. 2020

1-2. 가난해서 왕따 되면 어쩌나?

아이가 왕따 당할까 봐 걱정이에요

 가난하면 왕따 된다? 

 가난하면 친구들과 놀러 갈 수도 없고 친구들의 소비 수준에 맞추다 보면 허덕거리게 된다? 

 잘 사는 친구들 사이에서 가난한 아이는 소외될 수밖에 없고 결국 왕따가 된다? 


 그렇다. 왕따에서 가난의 이슈는 웬만해선 풀기 어렵다. 공부 못해서 왕따 된다고 하는 겁박은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그게 아니라는 통찰에 이르기도 하지만, 가난의 이슈는 엄마와 아이가 동시에 서로를 협박하고 힘들게 하면서 진흙탕 싸움으로 가는 주재료가 된다. 


“가난한데 애들이랑 어떻게 놀아!”

“남들은 스키 타러 가는데 난 못 가잖아!”

“내가 왕따 당하는 건 다 엄마 때문이야!”

“돈이 있어야 애들이랑 어울릴 거 아냐!”

“이런 옷 입고 다니는 애는 나밖에 없어.” 

    

 이런 말은 엄마에겐 거의 쥐약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악다구니를 쓰는 아이 앞에서 엄마는 속수무책이 된다.          


다른 엄마들은 개념이 없어요

 아이와 의복 문제로 다툰 후 상담실에 찾아온 엄마의 하소연이다. 


 “반 애 중에 브랜드 옷을 많이 입고 오는 애가 있었나 봐요. 그 애처럼 똑같은 옷을 사달라고 조르더라고요. 처음에는 좀 사줬는데 계속 사달라고 해서 당해낼 수가 없더라고요. 선생님한테 도와 달라고 이야기를 해도 소용이 없어요. 다른 애들 생각해서 그런 옷은 학교에 입혀 보내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도대체 엄마들이 개념도 없고 상식도 없는 것 같아요.”


 또 다른 엄마의 하소연을 들어보자.


 “같은 반 아이들 몇몇이 방학 동안 스키캠프에 가기로 했더라고요. 엄마들이 알아보고 돈도 걷어서 아이들을 보내기로 했대요. 거기에 가는 아이들은 신이 나서 무리 지어 몰려다니고, 그걸 보고 우리 애가 자기도 스키캠프 보내달라고 아우성을 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캠프 비용이 생각보다 비싼 데다가 작은 애까지 보내려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인데 해결 방법이 없네요. 그렇게 대놓고 비싼 스키캠프에 보내는 건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제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누구의 문제인가?

 옆에 더 잘 사는 아이가 있으면 당연히 위축된다는 신념을 가진 부모 때문에 아이는 위축된다. 반에 좋은 옷 입는 아이가 있으면 꼭 똑같은 옷을 입고 싶어 하고 그걸 못 입으면 우울해져서 삶의 기쁨을 잃는 게 인지상정이라는 생각을 가진 부모 때문에 아이는 열등감을 가진다. 큰 집에 사는 친구네 집을 다녀온 뒤 충격에 빠진 아이를 보고 더 큰 충격에 빠져 어쩔 줄 몰라하는 부모 때문에 아이는 작은 집에 사는 것을 창피하게 여긴다.      

 아이의 문제는 부모의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바로 해결된다. 부모가 지금 현재 내가 가진 경제 수준으로 살아가는 데에 아무런 불만도 분노도 없을 때 아이가 다른 집과의 경제적 격차를 보는 눈이 여유로워진다. 가난에 대해 분노도 불만도 없이 살라는 말이 평생 이런 수준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부모가 자신이 지금 현재 가진 만큼에 감사해야 아이도 그런 부모에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잘 사는 게 뭐가 부러워? 뭐가 부럽다고 이 난리를 치는데? 아래를 보고 살아야지 어떻게 위만 보고 살아.”

 “그러니까 딴짓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 보란 듯이 성공해서 너도 좋은 집에 살면 되잖아.”

  

 여기에는 가난한 엄마를 윽박지르는 아이의 문제뿐 아니라 가난하면 위축된다고 하는 엄마의 뿌리 깊은 철학 또한 똬리 틀고 있다. 가난하면 위축되는 게 당연한데, 내 가정은 가난하기 때문에 왕따 문제에 걸려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난이 야기하는 문제는 거의 대부분 상대적이다. 가난 때문에 아이가 왕따가 되었다고 하소연하는 부모조차 자신의 가난이 상대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상대적인 기준이 자신의 행복에 유리한 방식으로 적용되기를 바란다. 즉, 상대적인 기준은 나보다 생활수준이 낮은 쪽을 바라볼 때 발휘되면 좋겠다. 행복은 불행을 만들지 않는 길로 가는 게 더 쉬운 법이니.


가난에 대한 두려움

 가난과 왕따는 패키지가 아니다. 가난해서 왕따 당한다고 생각하는 문제는 가난을 바라보는 태도가 바뀌면 해결된다.


 가난해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는 없는 걸까?

 가난하지만 아이들이 가난에 대해 지금과는 다른 태도를 가질 수는 없는 걸까?


 하지만 상담실에 오는 부모들은 가난해도 충분히 당당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하는 상담사의 말에 ‘가난함을 받아들여 당당하게 살다가 노숙자가 되는 것 아니냐?’며 반문을 하기도 하고 한다. 이들은 ‘가난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지 않으면 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느낀다. 

 가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내 아이가 왕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신념은 과연 옳은 걸까? 가난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고 행복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는 신념으로 바꿀 수는 없는 걸까?


 가난 때문에 아이가 따돌림을 당할 거라고 걱정하는 부모는 가난에 대해 본인이 아직 해결하지 못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본인이 어릴 때 따돌림당한 기억을 가난의 문제로 결론 냈거나.

 가난 때문에 이루지 못한 욕구불만이 있거나.

 어릴 때 잘 살다가 몰락해서 가난하게 된 뒤 인간관계에서 좌절을 겪었거나.

 가난을 기화로 친했던 사람들과 결별을 했던가.

  '가난하면 사람 노릇 못하고 왕따 당한다'는 부모의 잔소리를 들으며 자랐거나. 


현실에 감사하기

 어릴 때 겪는 가난은 부모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압도적인 고통이 아니다. 스키캠프에 보내주는 부모보다 나를 지지해주고 나의 실망감을 충분히 공감해주는 부모가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행복하다. 오히려 스키캠프에 가는 아이들보다 더 부모를 잘 만났다는 고백을 들을 수 있다. 등골 뺀다는 브랜드의 옷을 사주지 못하더라도, 아이패드와 맥북 그리고 닌텐도와 플레이 스테이션 등 온갖 최첨단 기기를 더 사주는 부모보다 훨씬 나은 부모를 만났다는 통찰은 가난에 대한 부모의 태도에 달려있다. 아이들은 사랑해주는 부모와 작은 공간과 안정적인 분위기만 있으면 건강하게 자라는 데에 문제가 없다. 


 가난한데 안정적일 수 있냐고? 

 그렇다. 가난 때문에 안정적일 수 없다고 믿는 부모의 문제다. 


 작은 공간에서 어떻게 건강한 아이로 자라겠냐고?

 작은 공간을 답답해하는 부모의 진저리가 문제다. 성채만큼 큰 집에서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부모와 사는 아이가 더 공허하게 자란다.  


 아이 뒷받침도 못해주는 게 어디 사랑이냐고? 

 아이에게 물어보면 안다. 아이가 부모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아이의 성공을 위해 금전적인 뒷받침을 해줘야 사랑이라고 믿는 것은 아이가 원하는 사랑이 뭔지 모르는 부모의 넋두리일 뿐이다. 

부모가 현실에 감사할 줄 알게 되면, 자녀와 관계가 좋아지고, 자녀로부터 존경받는 부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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