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루 끝 햇살 Apr 24. 2020

1-6. 왕따가 맞긴 한걸까?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어요.”라는 어머니의 말을 잘 들어보면 그런 걸 왕따라고 불러야 할지 고민될 때가 있다. 왕따라기보다 그저 몇몇 아이들이 놀아주지 않는 수준인 경우도 많다.      


왕따인가, 안 끼워주는 건가

 몇몇 아이들이 자기들끼리만 놀고 안 끼워주면 괴롭고 마음이 불편하겠지만, 그걸 왕따라고 말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도 없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으면 하는 바람은 비현실적이다.

 만일 자녀가 몇몇 아이들이 모임에 초대해주지 않고, 수군거린 것을 가지고 집에 와서 세상이 끝난듯 고통스러워한다면 해법은 한 가지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도 없으며, 어딜 가나 나를 싫어라 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지만 그걸 왕따라고 부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친구관계 때문에 힘들어하는 자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건 소용이 없다.


 “모든 애들이 다 그러는 것도 아니잖아.”

 “널 좋아하고 널 위로해 주는 친구들도 있는데 뭘 그렇게까지 우울해하니?”

 “그건 왕따라고 말할 수 없는 거 아니니?”


 오히려 자녀와 사이만 벌어지게 된다.

 그저 자녀가 사태 파악을 하고, 홀로 일어서고, 수군거리는 아이들 말고 다른 아이들의 존재가 본인의 눈에 들어올 때까지 그저 부모로서 토닥여주고, 받아들여 주는 일을 해야 한다. 토닥여주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런 방식으로 아이를 돌본 적이 없는 엄마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우울해하고, 눈물 흘리고, 삐쳐있고, 심통 부리고, 뭔가를 시위하는 것 같은 아이를 그저 수용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어찌 보면 쉬운 일이기도 하다. 엄마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상념을 내려놓고 그저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주기만 하면 되니까.      


놀아주지 않는 것과 왕따 사이

 언니나 형이 있는 가정의 작은 아이는 언니나 형의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 소외되기 십상이다. 언니나 형은 친구만 오면 동생을 떼어놓고 친구들과 함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콩' 하고 닫아버린다. 이때 엄마가 언니나 형을 불러내 마치 동생과 놀아주어야 하는 것이 그들의 당연한 의무인양 작은 아이를 떠넘기면 안 된다. 동생을 놀아주는 일은 언니나 형의 의무가 아니고, 동생과 놀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만 놀아줄 수 있다는 것을 동생이 알도록 해야 한다.

 이 말에 부모들은 이렇게 묻는다.


 “그렇게 이기적으로 아이들을 키우면 형제간에 우애가 사라지지 않을까요?”


 형이나 언니가 나에게 뭔가를 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가족에게서 우애는 있을 수 없다. 가족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부탁하거나 요청해야 하고, 만일 거절한다면 그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야 건강하고 돈독하게 지낼 수 있다. 이런 분위기가 아니고는 가족 내에서 우애는 꽃피우기 어렵다. 돈 많고 잘 사는 형이, 혹은 여유가 있는 동생이 어려운 처지의 나를 위해 돈도 쓰고 시간도 쓰고 애써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가족 분위기에서 우애는 길을 잃는다. 머지않아 막 내릴 의무만이 있을 뿐이다. 드라마에서 막장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을 보면 가족이나 친구 관계에서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당연한 의무라고 내세울 때 시작된다.      


놀아주는 것은 의무사항이 아니다

 아이가 어릴 때 언니나 형이 동생과 놀아주는 것을 당연한 의무인 것처럼 인식시켜서는 안 된다. 언니나 형은 나와 놀아줄 수도 있고, 안 놀아줄 수도 있다. 그건 오로지 언니나 형의 선택이다. 언니가 나와 놀아주지 않는 것이 동생인 나를 싫어해서가 아니고, 언니나 형이 나의 어떤 부분을 싫어한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를 통해 나중에 커서 반 아이 중에 나를 싫어하는 아이가 있더라도, 혹은 회사에서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더라도,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씩씩하게 잘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내가 어디에 있든 그곳이 어디든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누군가 나를 싫어하는 것이 인생의 파국도 아니고,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인생의 장애물도 아니며, 세상에는 나를 좋아하는 일정 퍼센트의 사람들과 나를 싫어하는 일정 퍼센트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미움받는 현실 받아들이기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을 미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삐치고 울고 하소연한다. 미움받는 상황이 슬퍼서 혹은 나를 슬프게 한 상대가 죄책감을 느끼도록, 아니면 제삼자를 통해 당사자에게 압력을 넣으려는 의도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미워하는 현실이 반드시 녹아야 할 얼음덩어리가 아닌 것처럼 내가 삐치고 울고 슬픈 척을 해도 다른 사람의 나에 대한 감정이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 또한 알아야 한다.

 누군가 나를 미워하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타인의 감정이나 태도를 조종하려는 시도를 내려놓는 것. 이것이 자녀에게 닥친 왕따 상황을 극복하고, 자녀에게 닥친 왕따 문제의 해결을 도와줄 수 있는 열쇠다.      

매거진의 이전글 1-5. 거짓말을 하다가 왕따 당하면 어쩌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