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왕따 당할까 봐 걱정이에요
가정에도 가끔 왕따가 생긴다. 아이가 둘 이상일 때 아이 중의 하나가 왕따를 당하곤 한다. 아이 하나는 부모에게 붙어서 친밀감을 과시하고, 아이 하나는 온 가족의 비아냥과 무시를 견디며 살아간다. 두 아이가 싸우면 부모는 언제나 한 아이 편을 들고 다른 아이는 문제덩어리 취급을 받는다.
중2 여학생 아이가 의뢰되어 온 적이 있는데 전형적인 가정 내 왕따였다. 엄마가 아이를 의뢰한 사연은 이랬다.
‘아토피인데 처방받은 연고 안 바르기, 아토피인데 과자 숨겨 놓고 먹기, 아토피인데 화장하기, 서클렌즈 끼기, 공부 안 하기, 담배 피우기, 상점에서 물건 훔치기.’
이 중에서 엄마가 가장 힘들어하고 가장 많이 부딪치는 문제는 담배 피우기나 물건 훔치기가 아니라 오히려 과자 먹기(아토피를 일으키기 때문)나 아토피 연고 안 바르기 등이었다. 상담자가 보기에는 가정 내 분노와 불안 수치가 올라갈 때 문젯거리도 아닌 과자를 먹는다거나 서클렌즈를 끼는 것 등을 문제 삼아 이 아이를 야단치고 때리면서 가정 분위기의 압박 수위를 조절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아이가 자고 있을 때 아빠가 귀가해서 아이 방문을 열쇠로 따고 들어와서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눈깔에 있는 거 빼!”
아이가 자다 일어나 눈에서 서클렌즈를 빼면 아빠가 이것을 방바닥에 팽개쳐서 밟고 비비고 화를 돋운 다음, 구석에 세워져 있는 죽도로 아이 배를 쿡쿡 찌르거나 멍이 들도록 때리기도 한다. 실제로 상담실에 올 때 멍이 든 채로 올 때도 많았다. 그런데 아빠가 술이 깨고 기분이 좋아지면 어제 밟은 서클렌즈를 다시 사주기도 한다니 과연 서클렌즈가 문제의 발단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아이 오빠 또한 화나는 일이 있으면 아이 방에 들어와 방안에 있는 모든 물건을 방바닥에 던져 놓고 나가는데, 부모는 이에 대해 '네가 평소에 잘했으면 오빠가 그러겠니'라고 대응했다. 엄마, 아빠와 아들은 똘똘 뭉쳐 한 편이 되고 이 아이는 가정에서 분노의 쓰레기통 역할로 살아가면서 왕따와 폭력과 학대의 대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 가정은 극단적인 경우지만,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많은 가정에서 가족 구성원 중 하나가 가족의 공공연한 왕따로 지낸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가 늘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받아오는 성적 여하에 따라 왕따가 큰 아이에서 작은 아이로 옮겨 가기도 한다.
가정의 왕따는 아이 몫만은 아니다. 아빠인 경우도 많다. 아빠의 어떤 부분을 맘에 안 들어하는 엄마가 아이에게 편 가르기를 시키고 부자 혹은 부녀간의 정서 교류를 방해하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아이는 아빠로부터 멀어진다. 그렇다고 왕따 당한 한쪽만 소외되고 둘이 연합한 쪽은 건강하게 잘 사느냐? 그게 그렇게 되지 않는다. 소외의 문제는 결국 쌍방이 소외에 처하게 되는 혹독한 결과를 낳는다.
엄마가 아들을 심정적인 남편으로 대하고 있는 가정도 많다. 아들에게 하소연하고 위로받고 기대면서 엄마의 공허함을 아들에게 떠넘기곤 한다. 하지만 이 공허함은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어릴 때는 어려서 미흡하고, 자라서는 오히려 독립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충족되지 않는다. 남편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아들이 채워주기 바라지만 공허함은 시간이 지나도 커지기만 한다. 결국 아이는 엄마의 비현실적인 욕구를 채워주려 애쓰다가 결국 나가떨어진다. 공허하고 헛헛한 엄마의 삶에서 아들은 반드시 배신자가 되어 결국 엄마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다.
도박중독자의 가정에서 도박중독에 빠지는 아들에 대해 부모들은 이렇게 말한다.
“어릴 때는 말도 잘 듣고 얼마나 착했는지 몰라요. 돈도 잘 안 쓰고 돈 모아서 엄마 갖다 주고 엄마 마음 잘 헤아려서 엄마한테 선물도 많이 해줬어요. 오히려 제 형(동생)은 수중에 돈 들어갔다 하면 나오지 않고 엄마 어렵고 힘든 거 살펴주지 않고 얌체 같았죠. 지금 오히려 큰아이(작은 아이)는 제 힘으로 학비도 벌고 제 용돈 부모에게 손 안 벌리고 제 앞길 잘 가고 있어요. 어릴 때는 큰(작은) 아이가 왕따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저 아이가 집안에서 왕따가 되었죠.”
집안에 왕따가 존재하는지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저 작은 아이가 실수를 많이 한다고, 말썽을 피운다고 생각하면서 지나치기도 한다. 모를 땐 물어보면 된다. 혹시 집에서 왕따가 된 것처럼 느낀 적이 있니?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