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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끝 햇살 May 01. 2020

2-2. 아이가 맞고 왔어요 2

우선 감정을 가라앉히자

 아이가 맞고서 씩씩거리거나 울거나 할 때 우선해야 할 일은 아이의 감정을 가라앉히는 일이다.

 아이 감정을 가라앉히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감정을 가라앉히라고 주문하고 재촉해봐야 감정은 가라앉지 않는다. 감정은 제가 가라앉고 싶을 때 가라앉는다. 어떤 수를 써도 감정을 빨리 가라앉힐 수는 없다. 다만 감정을 가라앉지 못하게 만들 수는 있다. 감정을 빨리 가라앉히라고 요구하고 다그치면 감정은 가라앉지 않고 더 요동친다. 부모 무서워서 감정이 가라앉았다고 거짓으로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걸 믿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아이의 감정이 고조된 상태에서는 우리가 바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의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 그것은 고도의 내공이 필요하다.


 한 대 맞고 온 녀석이 뭐 잘했다고 울기는 왜 그리 오래 우는지.

 때리지도 못한 녀석이 엄마한테 짜증은 왜 그리 벅벅 내는지.

 원래 그런 줄은 알았지만 왜 그리 찌질해 보이는지.


 한숨만 나오는 지경이 되어도 암말 말고 기다려야 한다. 그게 첫 단추다. 여기서 참지 못하고 아이한테 오래 걸리네, 뚝 그치지 못해 하고 소리쳤다간 도루묵이다. 그다음 절차는 안 봐도 비디오, 도루 아미타불이다. 그러니 젖 먹던 내공을 발휘해서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게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다리는 과정이 부모에겐 선물이자 축복일 수 있다. 기다리는 일에 한 번 성공하고 나면 책이나 신문 칼럼에 쓰여 있는 ‘기다림’이라는 화두가 남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진정한 기다림, 그것은 부모에게도 축복이자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다.     


아이에게 묻는다

 기다리고 기다려서 아이 감정이 가라앉으면 아이에게 묻는다.

 그때의 상황에 대해서.

 이 말을 묻는 이유는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이가 사태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관찰자마다 사건을 다르게 내레이션 한다. 장소에 따른 시각 차이도 있고, 선입견에 따른 시각 차이도 있다. 사건 관련자 모두 자신의 시각으로 사건을 해석한다. 그래서 아이의 시각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이가 내레이션을 할 때 간섭하면 안 된다. 거기서 그러면 안 되지 라든가, 그걸 왜 가만 놔뒀냐 든 지,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든 지, 꼴좋다 든 지. 그런 말로 아이의 내레이션을 방해하면 안 된다. 아이가 내레이션을 끝까지 할 수 없게 되고, 말하다 말고 부모의 의도를 간파하고는 부모 입맛에 맞게 기억을 재구성한다. 거짓말을 하려는 의도라기보다는 부모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기 위해. 그러니 내레이션을 할 때 개입하면 안 된다.

 개입이란 말과 표정을 포함하는 말이다. 표정으로 쯧쯧 찬다든지, 표정으로 한쪽 뺨을 실룩거린다든지 하는 것도 명백한 개입이다. 참느라 애쓰면서 주먹을 불끈 쥐는 것도 개입이다. 부모가 이런 표정을 지으면 아이는 자신의 내레이션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간파하고 부모의 입맛을 찾기 위해 기억을 이리저리 재구성하면서 퍼즐 맞추기를 한다. 나중에는 진짜 기억을 잃어버리고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모르는 사태가 온다. 아이의 경험을 아이의 시각에서 온전히 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또 묻는다

 내레이션을 마친 뒤, 아이의 심정과 아이의 이해도에 다가가기 위한 질문을 한다.


 왜 그렇게 생각했니?

 그게 왜 그런 뜻이라고 느꼈니?


 아이가 그런 생각과 느낌에 다가갔던 경로를 부모도 함께 탐색해야 한다. 사건에 대한 아이의 이해와 심정에 합치될 때까지.

 물론 당연히 형사가 취조하는 것처럼 군다든가, 무언가 조지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면 안 된다. 좀 더 이해하고 싶다는 뜻과 의도로 다가가야 한다. 만일 아이가 취조하거나 다그친다고 느낀다면 100% 부모 잘못이다. 만일 아이가 부모의 질문 태도에 불만을 표하거나 힘들어하거든 미안하다고 말하고, 질문 공세를 멈출지 아니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봐서 아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부모가 자신을 도우려고 한다는 마음이 충분히 전달되면 아이는 상황이 아무리 피곤해도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가 말을 들으면서 한숨을 쉬거나, 그게 말이 되느냐고 화를 내거나 하면 아이는 부모에게 그런 대접을 받느니 차라리 사건을 덮어버리고 지나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걸로 끝이다. 더 이상 도움을 줄 수 없다. 상황 끝.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지 묻는다

 아이의 심정과 사건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공유되면 이제 부모가 어떻게 도와주었으면 좋겠는지 물어볼 차례다. 오래 인내하셨다. 거의 다 왔다.

 아이가 원하는 건 부모의 해결 방식과 180도 다르다. 정말 다르다. 그러니 물어봐야 한다.

 부모들은 단편적으로 주로 찾아가서 사과를 받고 다시는 안 그럴 거라고 다짐을 받고 악수를 하면서 사이좋게 지내자 라는 말을 하면 그게 상황 정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단순하지도 단편적이지도 않다. 엄마가 전화해서 어필해주기를 바라기도 하고, 친구의 사과를 직접 받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니면 그냥 덮어두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원하는 해결 방식으로 해결해 주어야 한다.    

  

원하는 대로 해 준다

 친구의 사과를 받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사과받고 싶은지 묻고, 그걸 어떻게 전달하면 좋겠는지도 물어본다. 그 아이 부모에게 전화를 해서 사과를 받고 싶다고 말할지, 아니면 친구에게 직접 말을 할지, 아니면 부모가 대신 그 아이에게 말을 전할지, 구체적으로 물어봐야 한다. 부모가 자기 의사를 대신 전해 주기를 원하면 부모는 그렇게 하면 된다.

 ‘아이가 사과를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받고 싶어 한다.’

 상대방에게 아이가 원하는 대로 이렇게 말을 전하면 부모의 역할은 끝난다. 그렇더라도 그 아이로부터 사과를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사과를 할지 말지는 그 상대 아이의 몫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그 아이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겁을 주거나 훈계를 하거나 할 필요는 없다. 아이의 의사를 전달하는 것으로 부모의 역할은 끝난다.

 만일 사과가 미진하다고 여기거나, 그쪽에서 사과를 안 하는 경우 아이에게 다시 물어보면 된다.


 "사과를 안 하겠다는데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니?"


 아이가 이에 대해 의견이 있으면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지 물어봐서 해주면 되고, 아이가 생각이 안 난다고 하면 생각이 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기다리다가 흐지부지 되어버려 아이가 더 이상 해결의 의지를 잃어버린다면 그것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놔둬야 한다. 이것도 해결의 방식이다. 아이가 선택한 아이 나름의 해결 방식.


아이의 싸움, 아이의 일상, 아이의 판단

 아이의 싸움이고, 아이의 일상이고, 아이의 판단인데 부모가 대신 판단을 내려주거나 자신의 방식으로 코치할 필요는 없다. 물론 부모의 의견을 살짝 낼 수는 있지만 대부분 자녀로부터 개무시당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상담자는 부모가 자녀에게 조언하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 부모에게 6.25 때 보릿고개 넘던 이야기 또 하시네 했던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우리의 소중한 경험과 의견을 고리타분하게 생각한다.


 그럼 우리의 의견과 교육은 언제 말해야 할까? 가정교육은 부모의 몫인데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 아이들에게 부모의 철학을 말해야 하는 걸까?

 그때를 아는 건 쉽다.

 애들이 물어볼 때만 말하면 된다.

 "엄마 혹은 아빠의 생각은 어때요?"라고 물을 때만 대답하면 된다. 묻지도 않는 데 의견을 말하거나 조언을 주거나 정보 제공을 하면 아이들이 뺨을 실룩거리면서 비웃는다. 그때 그들의 귀는 닫혀있다. 그러니 괜히 헛일할 것 없다.      

 

그러다 해결 시점을 놓치는 것 아닐까요?

 사태는 급박하게 돌아가는데 아이 말 듣고, 아이 감정 가라앉히고, 아이의 의사 물어보고 했다가 사건의 해결할 시점을 놓치는 것이 아닌지 걱정될 것이다. 아이의 의견을 묻는 일은 언제라도 괜찮지만 사건이란 해결할 타이밍이 있게 마련이니 부모가 먼저 나서서 해결방안을 마련한 뒤에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시일이 많이 지난 뒤 일이 꼬일 대로 꼬여서 상담실에 찾아왔을 때 상담사가 하는 일이 바로 이 일이다. 아이의 의견을 묻고, 아이의 조망권을 찾아주고, 아이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함께 찾아보는 일이 상담사의 역할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는 치유되고 회복하고 다시 제 발로 선다. 그러니 사건이 급박하게 돌아갈 때 반드시 부모의 뜻대로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모의 잘못된 개입이 아이를 위축되게 만든다.

 부모들은 상담사가 제안하는 해결 방식에 대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개되는데 아이에게 집중하고 질문하느라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사건이 아이와 관련 없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리라는 걱정과 두려움을 호소하곤 한다. 하지만 아이의 시각에서 벗어난 사태 해결은 아이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 이 길은 아이의 발로 걸어서 가야지 낙하산으로 붕 실어 나르면 아이가 폭력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부모들은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부모의 숙제

 아이가 맞고 왔을 때 이미 지나간 일을 되돌리려고 애쓰기보다는 아이가 맞는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는지에 초점을 두고 잘 살펴봐야 한다. 아이가 때린 아이의 행위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알아야 한다. 친구의 치기 어린 실수로 보는 건지, 아니면 이미 힘의 권력관계가 때리고 맞는 관계로 형성이 된 것인지, 상대방의 잘못된 습관으로 여기는 것인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치기 어린 실수라면 사과받는 것으로 마무리가 될 것이고, 잘못된 습관 탓이라면 함께 하는 시간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부모들이 가장 못 견뎌하는 것은 아이가 상대에게 이미 권력관계에서 맞는 쪽으로 귀착이 된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다. 자세히 알지도 못 하면서 한 번의 실수나 상대방의 습관으로 인해 벌어진 사건에 대해 자식을 맞고 다니는 찌질한 놈으로 규정한 뒤 “너도 치받아라!”라고 주문하면 안 된다.

  만일 권력관계에서 이미 힘센 놈에게 맞는 놈으로 규정된 상태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가 세상에는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있고 자신이 어쩌다 보니 피지배자의 위치에 자리 잡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수 있다. 만일 그런 판단이 든다면 더더욱 야단치거나 일장연설을 하거나 다그치면 안 된다. 그런 권력관계의 원형은 가정에서 치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부부관계, 부모와 자식 관계 그리고 형제관계에서 그런 싹을 녹여줘야 아이가 인간관계에서 주눅 들지 않게 된다.      


 “나는 어디 가서 사람을 휘두르면 휘둘렀지 당하는 편은 아닙니다. 나를 보고 배웠으면 저렇게 당하고 살지는 않겠지요. 누굴 닮아 약하게 당하고 사는지, 원.”


 권력관계에는 남극과 북극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휘두른다는 말은 휘둘리는 사람이 바로 곁에 있다는 말이다. 그 역할은 말할 것도 없이 아내와 자식이 떠안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아이에게 지배자로 군림한 적이 없어요. 민주적으로 대하고 있죠. 다만 제 형이 아이를 좀 잡는 편이에요.”


 이 말은 부모가 가진 위아래 권력구조의 신념을 큰 아이에게 위임했다는 뜻이다.     

 

 아이가 존중받는 가정에서 자랐다면 다른 아이에게 맞았을 때 때린 아이에게 이렇게 대응할 것이다.


 “때린 일에 대해 사과해라. 그리고 앞으로 절대로 나를 때려서는 안 된다. 만일 한 번 더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나는 모든 힘을 다해 대응할 것이다.”


 만일 아이가 이런 태도를 보이지 않고 힘에 눌려 전전긍긍한다면 가정의 역관계를 다시 돌아볼 기회다. 힘이 센 인간이 행사하는 폭력에 익숙한 아이가 아니라면, 다른 아이에게 맞고 나서 해결 방안을 찾아보자는 제안에 ‘그래 봐야 소용없어요,’ ‘더 큰 보복을 하면 어떻게 하나요?’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물론 세상이 전 같지 않다. 하지만 폭력에 휘둘리지 않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폭력을 무시로 휘두르는 가해자의 먹이가 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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