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게임을 덜하기를......
도박이나 게임은 인류와 함께 태어나 인류와 함께 성장해왔다. 인간 휴먼이 어디에 몰입되고 마음을 빼앗기는지 방대한 노하우가 쌓인 데다 최근에는 심리과학적 연구까지 덧붙여져 인간의 마음을 교묘하게 잡아챈다.
자녀의 도박으로 상담실까지 오는 부모는 대부분 자식에게 털릴 대로 털린 뒤에 온다.
게임이 너무 재미있어서 손을 댈 수는 있다. 도박이 눈 앞에 아른거리고 돈이 벌릴 것 같은 비합리적인 생각이 들어 발 한쪽을 담가볼 수는 있다. 하지만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경계를 넘게 되면 그 순간 더 이상 갈 곳이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게 책임감이다. 가족과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 하지만 도박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그리 하지 않는다.
도박에 손을 대고 발도 넣고 온몸이 푹 잠길 때까지 아무런 통찰이 없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고 진창에 엎어지고, 깊은 수렁에 목까지 빠져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가는 길엔 끝이 없다. 부모는 자식을 도박에서 건지려고 혼내고 어르고 빚 갚아주고 이리 뛰고 저리 뛴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 한 발을 떼어 더 이상 발 디딜 곳이 없을 때 귀신 같이 부모가 나타나 징검다리 하나를 발밑에 대준다. 그래서 또 한 걸음 나아간다.
이렇게 말하면 도박중독의 부모를 두 번 울게 하는 것이지만 자녀의 도박중독으로 상담하러 온 부모 중 일부는 자식의 도박중독에 일조한다. 도박을 해서 빚을 지면 갚아주고, 또 도박을 하면 또 갚아준다. 아들이 엄마 명의의 카드를 들고나가 도박자금으로 쓰면 엄마는 이 사실을 아버지가 알게 될까 봐 쉬쉬한다. 부모가 원조를 끊으면 알바하는 곳의 금전출납기에 손을 대고 중고사이트에 사기로 물건을 팔아 고발당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아들 이름에 빨간 줄이 갈까 봐 부모가 또 갚아주고 합의 본다. 나중에는 엄마 패물에 손을 대고 집에 있는 동생 노트북을 전당포에 잡혀서 도박자금으로 쓴다.
“아이가 일주일 용돈을 하루 만에 다 쓰고 친구랑 떡볶이 먹으러 갈 때 돈이 없어 따라가지 못할까 봐 걱정되시죠?”
“그러니까 돈을 아껴서 규모 있게 써야지... 하고 혼내면서 떡볶이 먹을 돈을 따로 주죠. 돈 몇 푼 때문에 친구랑 못 놀아서 왕따 되면 어떻게 해요”
“대학생인 아이가 일주일치 점심 값을 하룻저녁에 술값으로 날려버리고 다음날 점심부터 굶게 생겼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용돈이 모자라지 않게 잘 나누어 쓰고 한방에 쓰지 않도록 잘 교육하고선 점심 값은 줘야지요. 젊은 애가 밥을 굶을 수는 없잖아요.”
“다음번 용돈도 또 하룻저녁에 날려버리면 어떻게 하나요?”
“그러니까요. 그러지 말라고 아무리 해도 매번 그러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늘 그래 왔어요. 제 형 하고는 어쩜 그리 다른지.”
자기가 쓸 수 있는 만큼의 액수를 상회하는 돈을 소비했으면 다음 주기가 시작될 때까지 돈을 쓸 수 없다. 굶던지 도시락을 싸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책임이고 돈 관리다. 돈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급할 때를 위해 돈을 모아두는 것이 아니라 모아둔 돈이 없으면 아무리 중요한 일이 발생해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 일이다. 거기서 배운다. 내가 돈을 다 쓰면 돈이 생길 때까지 굶어야 한다는 것을. 그러니 그런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도박으로 돈을 탕진하고 또 탕진하고 남의 돈을 훔쳐서 탕진하고 사기 쳐서 탕진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도박하는 자녀의 부모들은 아이가 돈에 쪼들려서 나쁜 길로 갈까 봐 뒷돈을 대줬다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쪼들려 볼 기회를 박탈당했기 때문에 쪼들리는 걸 두려워 한다. 돈이 없으면 쪼들리는 게 당연한 일인데 쪼들리는 것을 무슨 마마호환보다 더 무섭다고 생각한다. 돈이 없으면 친구를 사귈 수 없고, 무시 당하며, 사뢰적 존재로 인정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쪼들리기 전에 무슨 수라도 쓰는 것이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애절한 마음을 '쪼들리는 것을 피할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감수해도 된다'라는 가르침으로 이해한다.
명절에 세뱃돈을 많이 받은 아이들이 가끔 어른들이 하는 고스톱 판에 끼어드는 수가 있다. 가족과 친지 어른이 모인 판에 재미 삼아 어른들이 끼워주기도 한다. 문제는 게임판에 아이를 끼워주는 데서 시작하지 않는다. 심각한 문제는 고스톱 판에서 돈을 잃은 아이가 시무룩해져 있을 때 어른들이 “그러니 다시는 이런 판에 끼어들지 마라.”하는 준엄한 교육적 덕담과 함께 아이의 잃은 돈을 복구시켜주는 데서 발생한다.
아이는 게임과 손실을 통해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이런 판에 끼어들면 안 되는구나.’
‘어느 정도 잃었을 때 손을 털고 멈추었어야 하는구나.’
‘오늘의 행동은 뼈아픈 결과를 남겼구나.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지’
하지만 어른들이 아이의 잃은 돈을 복구시켜 줌으로써 아이는 교훈을 얻을 기회를 상실한다.
혹자는 이렇게 묻는다.
“아이가 돈을 잃었을 때 아이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후회를 했을 것이고, 돈을 복구시켜 줌으로써 아이가 소중한 돈을 다시 가지게 되었으니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교훈을 얻지 않았을까요?”
“오히려 돈을 잃고 속이 너무 상해서 어디 될 대로 되어봐라 하면서 막 나가든지 혹은 잃은 돈을 되찾기 위해 게임으로 더욱 빠지는 결과를 낳게 되지는 않을까요?”
돈 조금 잃은 것 때문에 '될 대로 돼라' 하고 더 엇길로 나가려는 아이라면 그걸 갚아준다고 책임감 있는 아이로 자라지 않는다. 오직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게 하는 방식만이 아이를 미래의 도박중독에서 구해내고, 자신이 잃은 금전적 손해를 자신의 통제 안에서 견뎌내는 경험만이 책임을 교육할 수 있다.
한 어머니가 상담 시간에 한 말이다.
“선생님 말씀대로 아이에게 책임을 지도록 했는데도 나아지는 기색이 없네요. 아이 스타킹을 아이에게 빨라고 책임을 줬는데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아요. 자기 전에 스타킹을 빨고 자라고 했는데 책임을 다하지 않아요.”
“아이에게 스타킹을 빨라고 책임을 준 건 스타킹을 빨 책임뿐 아니라 스타킹을 빨지 않을 책임도 함께 준 겁니다. 빨지 안 빨지 선택하는 것도 아이 영역으로 넘어 간 거예요.”
“그럼 스타킹을 안 빨 텐데 어떻게 하나요?”
“빨지 않은 스타킹을 다시 신고 가던지 알아서 하게 놔두세요.”
“스타킹에서 냄새난다고 친구들이 싫어하면 어떻게 해요? 지금도 힘든데 더욱 따돌림당하면 어떻게 하나요?”
“스타킹에서 냄새난다고 친구들이 따돌리면 그땐 스타킹을 빨아 신겠지요. 아니면 용돈을 쪼개서 새 스타킹을 사 신겠지요. 그것도 아이 책임이고요.”
숙제도 스타킹도 아이 책임의 영역으로 넘기면 집안에 햇살이 비친다. 공부에 관해서까지 아이의 책임 영역임을 분명히 한 가정에는 평화가 오신다. 책임감 있는 아이란 공부도 잘하고, 밤에 일찍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집안일도 잘 도와주고, 숙제를 성실하게 해가는 아이가 아니라 자기가 그런 일을 안 했을 때 받는 결과물을 고스란히 자기 것으로 하는 아이를 말한다.
아이와 아침마다 일어나는 문제로 매일 씨름을 한다면 엄마가 이렇게 말한다.
“이제 너를 깨우는 데 지쳤다. 이제 더 이상 깨우지 않을 테니 네가 알아서 해라. 필요하다면 아침 7시에 딱 한 번 깨워줄 수는 있다.”
“아침 너를 깨우면서 다투는 일이 너무 힘들구나. 이제 알람을 맞추던지 해서 아침에 일어나는 건 네가 알아서 해라.”
알람을 엄마가 아이 대신 맞춰줄 필요는 없다. 다음 날 아침에 아이는 분명히 안 일어난다. 그래도 엄마가 어제 선언한 것처럼 깨우지 않아야 한다. 아니, 깨우고 싶으면 깨워도 된다. 그러면 그 날은 어찌어찌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지만 다음 날은 또다시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문제 해결 날짜가 하루 연기될 뿐이다. 시간이 촉박해질수록 초조해지는 건 쿨쿨 자는 아이가 아니라 5초마다 시계를 확인하는 엄마 쪽이다. 초조함을 견디기 어려우면 차라리 자는 아이를 두고 외출을 하는 것이 낫다.
아이가 뒤늦게 잠에서 깨어 후닥닥 엄마를 원망하면서 학교에 가주거나 지각의 사유를 엄마에게 대신 말해달라고 아우성을 치면 일단 성공이다. 이 아이는 지각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게임과 도박은 유구한 인류 역사와 함께 해온 놀이다. 인간은 100세를 못 살고 세대가 바뀌지만, 게임은 역사적 노하우가 그대로 축적되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왔다. 인류의 관심과 흥미와 시간과 돈을 빼앗는 목적 하나로 심리학과 철학에 두뇌과학까지 버무려 발전시킨 것이 게임산업이다. 인간은 거기에 상대가 안 된다. 아무리 옆에서 하지 마라, 절제해라 해도 그쪽으로 돌아가는 눈길은 말릴 수 없다. 게다가 특별히 게임이나 도박에 더 흥미를 많이 느끼는 타입이 있다.
당뇨가 역치를 넘어서는 순간 제자리로 돌아오기 힘들 듯이 게임도 어떤 수준을 넘어서는 순간, 너무 멀리 가버린다. 일상 유지의 선을 넘어서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 수 있는 힘이 책임감이다. 게임을 하더라도 일상을 유지하는 힘을 기르는 것. 게임의 홍수에서 커보지 않은 부모들이 유지해야 할 자세다. 그걸 이해하지 않고서 게임은 나쁘다, 발도 들여놓지 마라, 손도 대지 마라, 절대 하지 마라고 한다면 아이들이 게임과 부모를 양손으로 잡고 있다가 부모 손을 놓을 가능성이 있다.
게임에 빠지는 유형은 두 가지다.
게임이 너무 재미나고 좋아서 게임에 빠지는 형과, 현실이 싫어서 게임으로 도피하는 형.
이 중 현실이 싫어서 도피하는 경우는 중독에서 회복이 어렵다. 자녀가 게임에 빠졌을 때 아이를 야단치고 다그쳐서 현실을 도피하도록 만들면 답이 안 나온다. 게임도 재미있지만 가정에서 부모가 주는 위안이 그 못지않을 때 아이들은 게임을 하더라도 정신을 잃지 않는다. 게임하다가 아침에 못 일어나 학교에 지각하더라도, 낯선 곳에 가있는 시곗바늘을 보고 ‘내가 이게 뭐하는 짓인가?’하는 통찰과 함께 돌아온다.
그게 책임감이다. 자기 인생에 대한 책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