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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끝 햇살 May 18. 2020

3-1. 자녀 책임감 키우기 교육1

지각하거나 숙제 안 하는 아이

   

  ‘행복하지 않은 아이는 건강한 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라. 부모인 당신이 할 일은 당신의 아이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역할은 아이가 생산적이고, 책임감 있고, 다른 사회 구성원들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양육하는 것이다.’ (자녀교육, 심리학에게 묻다. 케빈 리먼 박사 지음) 여기서 케빈 리먼 박사가 한 말은 아이를 불행하게 키우라는 말이 아니라 아이를 지금 당장 행복하게 만들어 주려고 책임감이나 존중을 외면하지 말라는 말일 것이다. 


자기 자신의 책임을 지도록

 책임감 있는 아이로 키우고자 하는 부모의 노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르지 않다. 하지만 부모가 말하는 책임감의 범위는 부모의 숫자만큼 다르다. 어떤 부모는 학교를 보내고 등록금을 대주니 1등 정도는 해주는 것이 자식 된 도리라고 하고, 혹자는 아무리 그래도 중간은 가야 그 책임을 다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부모는 성적은 어찌 되었든 학교에나 빠지지 않고 가줬으면 하고 바라고 어떤 가정에서는 학교는 둘째치고 가출이나 안 했으면 하고 바란다. 드물게는 부모가 낳아줬으니 자살시도는 그만 하고 생명을 지켜주기만이라도 했으면 하고 바란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식에게 가르쳐야 할 책임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아이의 발달상황에 맞게 자기 자신을 책임지는 일이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가 져야 할 책임을 대신 짊어진다. 이런 가정에서는 아이를 깨워서 학교에 보내는 일, 숙제하는 일, 준비물 챙기는 일, 잠자리에 드는 일 그 모든 게 부모의 책임 선 상에 있다. 

 책임감 있는 아이로 키우는 방법은 부모가 아이의 책임을 대신 져주지 않고 아이로 하여금 자신의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다. 나이에 맞는 자기 책임이 따로 있다. 

 아이가 학교에 가면 학교에서 일어나는 전반적인 일의 책임은 아이의 몫이다. 예를 들면 숙제하기는 아이 몫이다. 부모나 형이 숙제하는 것을 도와줄 수는 있지만 전반적인 책임은 아이에게 있어야 한다.     

 

숙제의 책임은 누구의 것?

 예를 들어보자. 아이가 엄마한테 “엄마, 숙제가 있는데 어려워요. 숙제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어요?”라고 말하면 숙제에 대한 책임은 아이에게 있다. 

 만일 엄마가 아이 책가방에 있는 알림장을 꺼내 숙제를 확인하고서 아이에게 숙제를 언제 해라, 어떻게 해라 하고 구조화시킨다면 여기서 숙제에 대한 책임은 엄마에게 있다고 할 것이다. 물론 아이가 숙제하는 법을 모르는 취학 초기에는 부모가 도와줘야 하지만 그 목표는 숙제하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서고 숙제로부터 엄마가 손을 떼기 위해서다. 그럼 아이가 숙제를 안 하는데 어떻게 하냐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뻔하다. “숙제에 관한 모든 책임을 아이에게 맡기세요.”

 숙제를 안 해서 아이가 선생님한테 야단맞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라면 그게 바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말해주는 바로미터다. 숙제를 안 해가면 야단맞는다는 것, 그걸 알게 해주는 것이 바로 책임감 교육이다. 숙제를 안 하고도 야단맞지 않는 꼼수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책임감과는 정 반대방향의 교육이다. 


 숙제에 딸린 옵션은 두 가지이다.     

 ‘숙제를 해 가는 것, 그리고 숙제를 안 하고 야단맞는 것.’     

 이것 말고 다른 옵션은 다 꼼수다. 

 매일 숙제를 안 해가서 매일 야단을 맞으면 어떻게 하냐고 엄마들은 묻는다. 묻는 다기보다는 그런 핑계를 대면서 숙제를 대신해준다. 숙제를 매일 안 해가면 야단 또한 매일 맞는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책임감 교육이다.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여전히 두 개다.      

‘숙제를 해가거나 아니면 숙제를 안 해가고 야단을 맞거나.’      

 매일 야단맞는 것이 두려워 엄마가 숙제를 대신해준다면 아이는 다음과 같은 삶의 법칙을 습득한다. ‘나에게 뭔가 나쁜 일이 발생하면 반드시 엄마가 대신 책임지고 해결해준다.’ 이런 아이는 커서 야단맞아야만 하는 일이 발생할 때마다 잠수를 타거나 배 째라 드러눕는다. 책임지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 야단맞는 당사자보다 엄마가 더 야단맞는 일을 두려워한다면 아이에게 책임감을 심어줄 수 없다.

 아이가 매일 야단을 맞는 일에 적응이 되어서 매일 숙제를 안 해가고 야단맞는 일로 때우면 어떻게 하냐고? 그것 또한 아이의 선택이자 책임이다. 

사실 야단맞는 일보다 숙제하는 일이 더 쉽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엄마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생각은 꼭 그렇지는 않다. 야단맞는 것으로 때우는 일이 숙제해가는 번거로움보다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숙제를 매일 안 해가는 것이다. 아이 생각이 그렇다면 존중해 줘야 한다. 그게 바로 책임감이므로. 

 숙제 매일 해가는 아이보다 오히려 야단맞는 것으로 숙제를 때우겠다고 작정한 아이가 더 크리에이티브한 것이 아닐까? 야단 무서워 숙제 꼬박꼬박 하는 범생이 보다야 야단맞는 스트레스를 너끈히 이겨내는 아이야 말로 요즘 시대의 핫한 캐릭터는 아닐까?


숙제를 책임진다는 것

 그럼 아이가 숙제를 안 하는 데 어떻게 하나요? 안 해 보낼 수는 없는 거 아닌가요? 여기에 숙제와 준비물 챙기기를 부모에게 책임 지우는 선생님까지 합세하면 무책임한 아이 시리즈가 완성된다. 이제부터는 선생님과 부모의 공방이 시작된다. 숙제를 안 하면 부모한테 항의하고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다그치는데 만일 그래도 아이가 숙제를 안 하면 부모가 대신해준다. 숙제 대신해주는 부모, 생각보다 많다. 

 오죽하면 한근태 작가가 <말은 임팩트다>라는 책에서 ‘아이 숙제를 대신해주는 것은 다른 사람이 운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날씬해질 수 있다고 믿는 것과 같다.’라고 했을까?

 부모가 숙제를 대신해주는 것은 내 책임을 안 져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고, 내가 해야 할 일을 남에게 시키고도 학교에서는 내가 한 척 거짓으로 생활하게 가르치는 것이다. 


 전에 살던 동네에 미대를 나온 엄마가 있었다. 그 엄마는 아이 미술 숙제를 도맡아 해주곤 했다. 처음에는 아이가 그리는 그림이 너무 허접해서 대신 그려줬다는데 엄마의 미술 실력 때문에 의기양양해진 아이가 나중에는 자신의 실력이 들통날 것이 두려워 스스로 숙제하길 거부하고 울고불고하는 바람에 고학년이 될 때까지 그려주었다. 이웃들은 사태가 심각하다고 느꼈지만 정작 모자는 별로 수긍하는 분위는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아이가 갈 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엄마가 가야 할 길은 딱 한 가지뿐이다. 더 이상 숙제를 대신해주지 않는 것. 여기까지 온 데에는 엄마의 책임도 있으므로 엄마의 실책과 무지를 반성하고 이제부터라도 험한 산을 오르기로 선언하는 것. 그뿐이다. 엄마의 미술 실력을 아이의 실력인 척 속인 엄마의 진실하지 못함을 반성하고 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것임을 선언하는 것. 그것이 출발이다. 여기서 왜 합의가 아니라 선언일까? 아이의 동의와 상관없이 진행되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설득이나 합의가 아니라 엄마의 선언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선언이 기정사실화 되면 그때 이 난관을 어찌 풀어갈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만일 아이가 배 째라 하면서 숙제를 안 해간다면? 그것도 아이 책임이다.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지만 야단을 맞는다면 그것도 아이의 경계선 안에 있는 일이다. 아이가 숙제를 안 한다면 이유는 두 가지이다. 숙제를 안 해가고 야단을 맞겠다는 책임감의 발로일 수도 있고, 내가 숙제를 안 하면 엄마가 먼저 백기를 들 것이라는 무의식적 계산의 결과일 수도 있다. 아이의 의도가 어찌 되었든 이 방법의 성공 여부는 아이가 야단맞는 일을 엄마가 견딜 수 있느냐에 있다.      


지각할 때 책임감 배우기

 아이가 늦잠을 자다가 학교에 지각을 했다면 학교규칙에 따라 혼나야 마땅하다. 점수가 깎이거나 야단맞을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엄마가 전화로 이런저런 핑계를 대주고 규칙을 살랑살랑 넘나들게 해 주면 이것 또한 아이의 책임감을 갉아먹는 교육이다. 자신의 행위에 따른 책임을 방기 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고 믿게 만드는 무책임감 교육이다.

 매일 지각을 하면 어떻게 하냐고 묻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매일 점수가 깎이고 야단을 맞게 하라고. 그러다가 학교에 흥미를 잃고 그만두면 어떻게 하냐고 물을 것이다. 아이가 학교에 흥미를 잃었다면 다른 방식으로 개입을 해야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무책임과 거짓말을 가르쳐서는 학교가 아니라 인생을 잃어버리게 된다.     


학교에 흥미를 잃을까 봐

 그렇게 지각하다가 학교에 갈 흥미를 잃으면 어떻게 하냐고? 그럴 수도 있지만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지각을 지각으로만 받아들이면 아이는 학교 생활을 유지한다. 오히려 지각 때문에 엄마와 매일 아침마다 한판 전쟁을 치를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지각은 지각일 뿐이다. 학교에 지각하면 거기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르면 된다. 엄마가 끼어들지 않아도 학교에는 나름의 메뉴얼이 있다. 

 (아이가 아침에 못 일어나는 까닭은 크게 두 가지다. 게임하느라 늦게 자거나, 호르몬이 시키거나. 호르몬은 시간이 지나 안정되면 해결된다. 만일 게임하는 자녀라면 지각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게임 문제는 링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 이 부분은 뒤에서 다루겠다.)

아이가 만일 엄마와 거래를 하려 들면 들어보고 결정을 하면 된다. 아침에 한 번만 깨워 달라고 하거나 알람시계를 여러 개 사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들어봐서 부모가 결정할 일이다. 참고로 조언을 하자면 부모 스스로 기꺼이 할 수 있는 부탁만 들어줘야 한다. 짜증 나거나 억지로 생색낼만한 일을 해주겠다고 덥석 물면 나중에 곪아 터진다. 왜냐하면 아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잠 자는 버릇이 단번에 고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가 일어나던 일어나지 않던 그저 알람이 울리듯 무심하게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고지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으면 이 싸움은 결국 다시 처음 그 자리로 돌아간다. 

 그래서 결국 학교를 안 가면 어떻게 하겠냐고? 엄마가 안 깨운다고 학교에 계속 가지 않는 아이는 엄마가 깨워도 일찍 일어나지 못한다. 이런 아이가 엄마의 등쌀에 학교에 잘 다니는 경우를 나는 보지 못했다. 오히려 학교에 갈 수 있는 아이를 달달 볶다가 결국 학교도 마치지 못한 사례가 더 흔하다.  

 만일 아이가 학교에 갈 생각이 전혀 없다면? 만에 하나 정말 그렇다면 아이와 학교 가는 문제로 실랑이 벌이지 말고 다른 대안을 찾아봐야 한다. 대안학교를 알아보거나 아니면 아이가 쉬는 게 필요할 수도 있다. 오히려 문제를 일찍 파악하게 된 것에 감사해야 한다. 답도 아이가 가지고 있고 책임도 아이에게 있다.      


지각하다 왕따 당할까 봐

“지각 자주 해서 왕따 당할까 봐 그러죠.”
 아침마다 아이를 왜 그리 혹독하게 깨우고 고성을 지르는지 물어볼 때 부모님이 하는 대답이다. 지각을 하면 왕따를 당한다? 진실일까요?

진실과 거리가 있는 말이다. 학생들은 지각한다는 이유로 왕따를 시키지 않는다. 

 매일 지각을 하면서 늦게 학교에 온다면, 한결같은 그 모습에 엄지 척을 해줄 것이다.

 그리 지각을 하면서도 야단치는 선생님 앞에서 기죽지 않고 생활을 잘해나간다면 그런 당당한 모습에 아이들은 감동과 존경의 눈빛을 보낼 것이다.     

“지각을 하면 수업 분위기 흐려지고 그래서 아이들의 성적관리에 피해를 주니 미워하고 왕따를 시킬 것 같아요.”

만만의 콩떡이다. 성적관리에 신경 쓰는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학생이야말로 인원수를 채워주면서 지각 등으로 자기 성적 깎아 먹는 친구들이다. 당신이 우려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아까도 말했지만 아이가 아침에 못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두 가지다. 밤새워하는 게임 때문이거나, 호르몬 때문이거나.    


호르몬과 책임감

 유난히 호르몬의 영향을 심하게 겪는 아이가 있다. 호르몬 때문이라면 시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이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지겠지만 지나고 보면 안다. 그리 길지 않다. 기다려주면 된다. 그 시간만 지나고 나면 아이는 눈빛도 선해지고 예전의 사랑스러운 자녀로 다시 태어난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아이 눈빛이 달라졌어요. 이제 착한 아들이 되었어요. 믿어지지 않아요.”      

이 시간을 겪은 경험자 부모들이 하는 말이다.     

그럼 호르몬의 타격을 받는 시절에는 무조건 지각이 필수라는 말이냐고 항의하고 싶을 것이다. 맞다. 호르몬의 습격을 받은 아이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지각도 하고 반항도 하고 소리도 지르고 벽을 주먹으로 때린다. 그러니 기다려줘야 한다. 

 그나마 호르몬의 지배력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책임감이다. 누구나 청소년 시절에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혼란을 겪는다는 것을 공감해주고, 수용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격려하지만, 지각으로 인해 일어나는 사태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을 잔잔한 미소로 알게 해주기만 하면 된다. 

호르몬과의 전쟁에 덧붙여 지각에 대한 부모와의 3차 대전에 휘말리지만 않는다면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라도 일어날 힘이 생긴다. 두 시간 지각을 한 시간으로 앞당길 수 있고, 결석을 지각으로 메꿀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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