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루 끝 햇살 Jun 12. 2020

내가 꼴찌 엄마라니....

육아에세이

31/33

중학생이 된 작은 아이가 받아온 성적표에 이런 숫자가 쓰여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못하는 줄은 알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나는 조금 놀랐고(아니, 좀 많이), 이런 성적표에 대해 뭐라고 피드백을 해줘야 하는지 몰라 한참 동안 성적표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내가 받아온 성적표가 싫어?”


이 성적표가 싫은가? 생각해보니 싫은 것은 아니었다.


 “아니, 엄마가 공부하라는 엄마가 아니라서 이 성적이 싫은 것은 아닌데, 이런 성적표를 난생 처음 봐서..... 뭐라고 해야 할지.... 좀 얼떨떨하기는 해.”

 “그래? 이히히. 근데 엄마 참 이상한 일이야. 나는 내가 우리 반에서 32등인 줄 알았거든. 33등은 누군지 알아. 그 애가 33등인 줄은 알았는데 그 애 다음이 나인 줄 알았거든? 근데 내가 아니네? 누가 32등을 했을까? 나 말고 또 누가 공부를 못할까? 궁금해 죽겠네.”


거의 꼴찌를 하고도 이토록 해맑고 명랑할 수 있다니.. 놀랍기 짝이 없다. 나는 어릴 때 공부를 잘하는 축에 들었다. 시험 때 특별히 공부를 하지 않아도 성적은 그만그만하게 나왔다. 그런 내 아이가 꼴찌라니.. 아무리 공부를 안 해도 꼴찌를 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이해가 안 갔다. 어쩜 그럴 수가 있을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참 감사한 일이다. 아이가 꼴찌를 해도 아이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볼 수 있어서.

나는 상담사로서 엄마들에게 항상 이런 말을 한다.


“아이가 공부를 못해도 사랑해주세요.”


이런 말을 하는 상담사에게 가장 걸맞고 어울리는 아이를 보내주셨다. 제 자식은 서울대에 보내고 다른 엄마들에게 “자식이 공부를 안 해도 사랑해주세요.”라고 말한다면 이 얼마나 잠재적 이중성인가? 하하.


아이 성적표의 ‘가정에서 학교로’ 란에 나는 이렇게 썼다.


아이가 이런 성적표를 받아와도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울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공부 못하는 아이 덕분에 이렇게 훌륭한 엄마가 되었으니 아이의 낮은 성적이 제게는 선물입니다.” 


기회는 많다. 극소수의 공부 잘하는 몇몇 엄마들을 제외하고는 이런 아름다운 엄마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천지사방에 널렸다.


31/34

그다음 학기에는 31/34라고 적힌 성적표를 받아왔다.


“우와 이젠 그린이 뒤에 3명이나 더 있네? 어떻게 된 거야?”

“응 한 명이 전학 왔어.”


“다행히 그린이 보다 공부 못하는 애가 전학온 바람에 그린이 성적이 올라갔구나?”

“아니야, 전학 온 걔는 완전 상위권이야.”


“오! 그럼 그린이가 그동안 한 명을 따라잡은 거네? 천재 아니야?”

“내가 쫌 그렇지?”


아이는 성적 이야기에 꼴찌라는 이야기만 나오면 ‘엄마, 나 꼴찌 아니야!’라고 항변한다. 꼴찌란 꼭 마지막 등수가 아니라 마지막 등수에 근접한 성적을 통칭한다고 말해도 아이는 머리를 흔들며 단호하게 말한다.


"꼴찌가 그렇게 좋으면 엄마나 꼴찌해~~. 꼴찌 엄마."

매거진의 이전글 공부할 게 없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