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세이
중학생이 된 작은 아이가 받아온 성적표에 이런 숫자가 쓰여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못하는 줄은 알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나는 조금 놀랐고(아니, 좀 많이), 이런 성적표에 대해 뭐라고 피드백을 해줘야 하는지 몰라 한참 동안 성적표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내가 받아온 성적표가 싫어?”
이 성적표가 싫은가? 생각해보니 싫은 것은 아니었다.
“아니, 엄마가 공부하라는 엄마가 아니라서 이 성적이 싫은 것은 아닌데, 이런 성적표를 난생 처음 봐서..... 뭐라고 해야 할지.... 좀 얼떨떨하기는 해.”
“그래? 이히히. 근데 엄마 참 이상한 일이야. 나는 내가 우리 반에서 32등인 줄 알았거든. 33등은 누군지 알아. 그 애가 33등인 줄은 알았는데 그 애 다음이 나인 줄 알았거든? 근데 내가 아니네? 누가 32등을 했을까? 나 말고 또 누가 공부를 못할까? 궁금해 죽겠네.”
거의 꼴찌를 하고도 이토록 해맑고 명랑할 수 있다니.. 놀랍기 짝이 없다. 나는 어릴 때 공부를 잘하는 축에 들었다. 시험 때 특별히 공부를 하지 않아도 성적은 그만그만하게 나왔다. 그런 내 아이가 꼴찌라니.. 아무리 공부를 안 해도 꼴찌를 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이해가 안 갔다. 어쩜 그럴 수가 있을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참 감사한 일이다. 아이가 꼴찌를 해도 아이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볼 수 있어서.
나는 상담사로서 엄마들에게 항상 이런 말을 한다.
“아이가 공부를 못해도 사랑해주세요.”
이런 말을 하는 상담사에게 가장 걸맞고 어울리는 아이를 보내주셨다. 제 자식은 서울대에 보내고 다른 엄마들에게 “자식이 공부를 안 해도 사랑해주세요.”라고 말한다면 이 얼마나 잠재적 이중성인가? 하하.
아이 성적표의 ‘가정에서 학교로’ 란에 나는 이렇게 썼다.
“아이가 이런 성적표를 받아와도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공부 못하는 아이 덕분에 이렇게 훌륭한 엄마가 되었으니 아이의 낮은 성적이 제게는 선물입니다.”
기회는 많다. 극소수의 공부 잘하는 몇몇 엄마들을 제외하고는 이런 아름다운 엄마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천지사방에 널렸다.
그다음 학기에는 31/34라고 적힌 성적표를 받아왔다.
“우와 이젠 그린이 뒤에 3명이나 더 있네? 어떻게 된 거야?”
“응 한 명이 전학 왔어.”
“다행히 그린이 보다 공부 못하는 애가 전학온 바람에 그린이 성적이 올라갔구나?”
“아니야, 전학 온 걔는 완전 상위권이야.”
“오! 그럼 그린이가 그동안 한 명을 따라잡은 거네? 천재 아니야?”
“내가 쫌 그렇지?”
아이는 성적 이야기에 꼴찌라는 이야기만 나오면 ‘엄마, 나 꼴찌 아니야!’라고 항변한다. 꼴찌란 꼭 마지막 등수가 아니라 마지막 등수에 근접한 성적을 통칭한다고 말해도 아이는 머리를 흔들며 단호하게 말한다.
"꼴찌가 그렇게 좋으면 엄마나 꼴찌해~~. 꼴찌 엄마."